발레리나에게 출산은 은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출산 후에 몸의 뼈들이 틀어지고 근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 발레리나’는 존재한다. 국립발레단 한나래 발레리나(무용·13년졸)는 2019년 출산 이후 2020년에 발레단으로 복귀해 발레 경력을 이어오고 있다. 본지는 한나래 발레리나를 8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곧 올라가는 공연 ‘지젤’ 준비로 바쁜 와중에 연습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누가 봐도 천상 발레리나였다. 인터뷰 내내 한나래 발레리나의 눈은 춤에 대한 애정으로 빛났다.

 

워킹맘 발레리나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립발레단 소속 한나래 발레리나.  제공=국립발레단
워킹맘 발레리나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립발레단 소속 한나래 발레리나.  제공=국립발레단

 

무대에 다시 오르기 위해서

한씨가 처음 발레를 시작한 건 12살. “발레 선생님의 추천에 홀린 듯이 시작하게 됐어요.” 발레는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전공을 목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한씨는 평균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다. 그만큼 남들보다 배로 노력했던 것이 한씨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예고를 거쳐 본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밤낮으로 연습했다. 유니버설발레단과 각종 콩쿠르를 거쳐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기까지, 그의 발레 인생은 ‘노력’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입단한 지 7년째 되던 해의 어느 날, 그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수많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 이후에 복직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경우 직업 특성상 작은 신체적 변화에도 예민하기에 이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다. 한씨도 “결혼과 출산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며 “출산은 발레리나로서 큰 시련이었다”고 말했다. 임신 기간의 공백과 출산 이후 신체의 변화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한씨는 임신 기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를 가진 동안 국민대 대학원에서 무용학을 배웠다. 출산 이후에는 무대로 복귀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운동이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그는 “이게 정말 내 몸인가, 할 정도로 내 몸이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피트니스, 필라테스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한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발레였다. 한씨는 발레 기본기로 몸을 다지며 계속해서 복귀 준비를 했다. 발레단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사람들은 제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해야 해요.”

임신과 출산은 힘들었지만, 인생에서 잊지 못하는 경험이 됐다. 그는 “마음에 사랑이 가득 채워져 있다”며 “그게 발레로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맡은 배역에 애착이 갖고 전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발레단에 와 있는 순간순간이 소중해서다. 그는 출산 후 신체의 한계에 부딪히고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한층 성장했다. “말로 다 형용할 수는 없지만,  내면의 무언가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많은 걸 배웠고 특히 엄마가 강한 존재라는 걸 이번에 느꼈죠.”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연습에 열중하는 한나래 발레리나.   제공=국립발레단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연습에 열중하는 한나래 발레리나.   제공=국립발레단

 

삶의 동반자인 발레

한씨가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가 춤을 출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역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기술이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배역을 맡았을 때 저만의 이해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배역이어도 무용수의 해석에 따라 공연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씨는 지금까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해적’, ‘지젤’ 등 수많은 작품을 거쳐왔다. 그는 “맡았던 배역 모두에 애착이 있지만,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라일락 요정’을  관객분들이 특히 좋아해  주신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씨는 ‘라일락 요정’을 연기할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아이 태명도 ‘일락’이라고 지었다. 그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배역이었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그는 “발레를 오래 했는데, 새로운 도전도 더 해보고 싶어서 안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7월에는 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 시리즈’에서 직접 만든 안무를 올리기도 했다. 그의 첫 안무작인 ‘The Way to Me’(2022)에서는 삶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여러 복잡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죠.”

그에게 발레란 ‘평생 걸어온 길’이자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오랜 시간 해왔지만, 발레의 매력에는 끝이 없다”며 “무대에 서는 순간이 너무 황홀하고 소중하다”고 말했다. 

"발레리나라는 직업은 고되고 힘들지만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오래 서고 싶어요." 

누구보다 강한 엄마이자 아름다운 발레리나인 한나래씨의 춤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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