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50년 이상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평균수명이 짧은 직업군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다. 발레리나는 흔히 30~40대에 은퇴한다. 토슈즈를 신고 하는 발레 특성상 온몸의 무게를 발끝만으로 지탱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무용 분야보다도 활동 기간이 짧다. 그러나 6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오르는 이가 있다. 조윤라 발레리나(무용·77년졸)는 본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충남대 교수직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제공=조윤라 발레리나
제공=조윤라 발레리나

 

비결은 365일 쉼 없는 꾸준함

긴 시간 동안 발레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한 연습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이후 꾸준히 연습했고, 또 30대 초반부터 거의 15년 동안은 정말 365일 연습했어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숙제 안 한 학생이 된 기분이 들어서 밤 12시에 한 적도 있고 여행을 가도 하고 누가 자고 있으면 화장실 들어가서도 했죠.”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시작한 아침 연습이었지만, 점차 스스로도 과정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게 됐다. “힘들다는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한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연습하며 땀을 흘리고 샤워할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어느 날은 ‘무아지경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연습을 해낸 후에 오는 상쾌한 기쁨은 다음날의 발레 연습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은퇴할 시기를 정해둔 것도 아니었다. “저는 발레가 좋아서 한 건데 사람들이 인정해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보여줄 수 있는 것

나이가 들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가 이제 내년이면 한국 나이 70이거든요. 그러니까 점점 근육이 감소하는 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편안하게 했던 움직임도 지금은 점점 힘들어져요.”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겪는 변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신체적 한계로 발레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힘을 발견했다.

“어릴 때는 춤에 기술적인 욕심을 부렸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보다는 그냥 춤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감동하는 것 같고요.” 기술은 전보다 덜 화려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녹아든 시간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정은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예전엔 여기까지 올라갔던 다리가 지금은 여기로 내려온 것처럼 테크닉은 줄었다"며 전성기 시절 다리가 올라갔던 높이를 가리키면서 웃었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가 보란 듯이 성공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은 60대의 무용수가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오른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냈다. 그는 주변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2019년 춤 작가전 공연을 떠올렸다. “그날따라 동창, 선배들이 공연을 많이 칭찬했어요. 거의 정년퇴직할 나이인 제가 이렇게 한다는 게 놀라웠나 봐요.”

 

커리어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는 오랫동안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나를 속이지 말 것, 그리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것.”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먼저 알잖아요. 거짓으로 하는지 정확히 하는지. 나를 속이지 말고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어요.”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갑상선 건강 악화를 경험한 후, 타인과의 경쟁은 진짜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의미다. “너무 욕심을 부리고, 남을 이기려고 하면 남과의 싸움은 마음대로 안 되거든. 그러려면 운도 있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남과의 싸움은 마음대로 안 되지만 자신과의 싸움은 마음대로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남이 한 만큼 다 했어요. 그동안 공연과 작품도 많이 했고, 누구보다 많이 춤을 췄고, 상도 많이 탔어요.” 그는 “모든 일에서 빨리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도 있지만, 늦게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처음에는 빨리 성과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활동하며 의미있는 성과를 달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연 ‘스페셜 발레 존재의 이유’의 일부 장면. 조윤라씨가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고 있다. 제공=조윤라 발레리나
공연 ‘스페셜 발레 존재의 이유’의 일부 장면. 조윤라씨가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고 있다. 제공=조윤라 발레리나

발레는 나의 삶

“(발레는) 사실 내 삶이고 어떻게 보면 내 신앙이기도 해요.”

그에게 발레는 삶의 동반자이자 삶 그 자체다. 결혼이나 자식 없이 발레만을 위해 살아온 인생, 후회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렇게 오래 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발레를 하면서 온갖 힘든 일도 겪어냈고, 울기도 했다. 그런 경험도 동시에 발레를 통해 잊어버리고 풀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우연히 찾고, 그 일을 계속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발레를 못하게 되면 삶의 반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영원한 현역 발레리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그게 인생의 정상에 오르는 길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살면 돌아봤을 때 잘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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