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식물들을 키워 식물유치원을 운영하는 백수혜씨.  박성빈 사진기자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식물들을 키워 식물유치원을 운영하는 백수혜씨. 박성빈 사진기자

유기된 생명을 구조하고 돌본 후 입양보내는 일, 동물에게는 익숙하지만 식물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버려진 식물도 구조와 돌봄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버려진 식물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2021년 여름부터 본교에서 멀지 않은 공덕동을 중심으로 버려진 식물을 구조해 입양보내는 ‘식물 유치원’의 운영자 백수혜씨를 공덕동 자택에서 만났다. 

백씨의 집 마당 한쪽에는 식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식물은 모두 집 안으로 들여 식물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마당에는 국화, 개똥쑥 등 여러 식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중 국화는 꽃이 져가고 있었지만 무릎까지 오는 큰 키로 자라 있었다. 그는 “처음에 구조했을 때 밑동만 남게 다 잘랐는데, 올해 봄부터 이만큼 자랐다”고 설명했다. 

 

겨울이 되어 지금은 시들었지만 백수혜씨의 손길로 구조돼 살아남은 국화꽃.  <strong>박성빈 사진기자
겨울이 되어 지금은 시들었지만 백수혜씨의 손길로 구조돼 살아남은 국화꽃. 박성빈 사진기자

백씨가 처음 국화를 발견했을 때, 국화는 버려진 채 완만한 경사로에서 며칠에 걸쳐 천천히 굴렀는지 줄기가 회오리모양이었다고 했다. 그는 “화분이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그대로 해를 보기 위해 머리 방향을 계속 바꿔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화 외에도 알로카시아, 고사리, 돌나물 등 백씨의 집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식물들이 모였다. 

백씨는 2021년 여름 공덕동 주택으로 이사했다. 백씨가 이사 온 주택 건너편은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인 곳으로, 그가 이사 올 당시에는 기존 거주민이 이주하던 기간이었다. 사람들은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떠났고, 쓰레기 사이 내동댕이쳐진 화분이 백씨의 눈에 밟혔다. 그는 식물을 좋아하고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식물을 키우다 몇 번 죽인 이후로는 집에 화분을 쉽게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에 굴러다니는 화분을 보고는 “여기서 죽나 내가 키우다 죽이나, 혹시 몰라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식물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길 건너 재개발 지역에서 버려진 식물을 하나둘 가져와 마당에서 살려내기 시작했다. 

식물이 늘어나며 감당하기 버거워지자 그는 식물을 지인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온라인 중고 마켓에 무료 또는 싼 값에 식물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 SNS를 통한 입양 방식을 추천받았다. 공덕동 식물유치원은 그렇게 생겨났다. 유치원의 식물들은 ‘친구들’로 불리며, 입양 준비가 된 친구들은 ‘졸업반’으로 분류된다. 

 

백수혜씨의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식물유치원.   박성빈 사진기자
백수혜씨의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식물유치원. 박성빈 사진기자

백씨는 2021년 여름부터 약 100개가 넘는 식물을 입양보냈다. SNS를 통해 입양 보낸 식물들의 근황을 접하기도 한다. 그는 “직접 키운 식물보다 훨씬 크고 씩씩하게 잘 자라는 걸 볼 때는 정말 좋다”며 입양자들의 손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식물을 키우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식물 토크’를 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꼽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식물은 그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본업으로 바쁠 때엔 식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더 큰 적이었다. 그는 “삶이 피곤해져서 식물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며 “무력감 때문에 나도 식물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동거인이 함께 식물을 돌봐줘 그 시간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백씨는 “식물을 들인다고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책임감이 조금 더 움직일 수 있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수혜씨의 자택 맞은편에는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박성빈 사진기자
백수혜씨의 자택 맞은편에는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박성빈 사진기자

백씨는 처음엔 길 건너의 공덕 재개발 지역, 후엔 근처 연희동의 재개발 지역에서 식물을 구조했다. 노량진 재개발 지역에도 가보고, 서울 내에서는 지역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식물을 구조한다. 그는 재개발 지역을 돌아보며 허망함을 느끼기도 했다. 재개발 단지를 찾을 때마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식물들이 새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씨가 돌아다닌 재개발 지역은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했고, 새로운 곳을 만드는 것에 집중돼 잘 정리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를 보며 그는 “재정비 전에 좋았던 모습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려 식물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부터 함께하던 마당의 나무도 있고, 내내 함께하던 식물들이 있을 텐데 한번에 사라진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전시나 책 같은 형식으로 남겨두거나 잘 옮겨 심어서 보존하는 형태가 된다면 분명 문화와 환경 측면에서 모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씨는 재개발 지구를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만큼만’ 구조하고 있다. 그의 능력보다 더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식물은 데려오지 않는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제가 이만큼 키운 식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는 자신에게 식물을 키우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구조해 살리지 못한 식물은 작은 은행나무 외에는 없었다. 은행나무는 난이도가 높은 식물이고, 나무 자체가 다른 식물과 관리 방법이 다른 경우였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의 정성보다 식물의 자체 재생력을 높이 평가했다. “구조할 때까지 살아있었던 것만으로도 생존력이 강한 식물”이라는 것이다. 백씨는 그런 식물들이 버려져 죽음을 맞는 게 안타까웠다. 

그는 식물을 중심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마음을 공유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입양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다 이 식물들의 사연에 공감을 하시고 안타까운 마음에 연락을 주시는 거지, 식물이 예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는 거주지 주변에 버려진 식물들을 자체적으로 구조해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때는 열심히 키우셨을텐데 살릴 생각도 안하고 그냥 버린 식물들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부동산이나 미용실 보면 항상 식물이 있잖아요, 키우지 못한다면 그런 데에라도 한 번 여쭤보고 살릴 생각을 하시면 좋겠어요. 당신이 키운 아이가 볼품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분명히 키워줄 사람이 있을 거예요.” 

백수혜씨의 마당을 향기롭게 하는 개똥쑥.  박성빈 사진기자
백수혜씨의 마당을 향기롭게 하는 개똥쑥. 박성빈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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