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새 학기를 시작한 영국 센트럴 랭커셔(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대에서 ‘사진과 매일(Photography and Everyday)’이라는 사진학과 수업을 듣고 있다. 사실 평소 핸드폰으로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난 사진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진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고 교환을 와서 꼭 실습수업을 듣고 싶었기에 보자마자 ‘이건 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정 하나만을 가지고 수업에 발을 디뎠다.

수업에 들어간 첫날, 기대와 다르게 점차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있는 유일한 카메라는 아이폰뿐. 반면 다른 학생들은 모두 DSLR과 같은 전문적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다. 패기 있게 신청했던 처음과 다르게 ‘괜히 신청했나’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수업의 교수 조나단(Jonathan)이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이번 학기 동안 카메라를 빌려줄 수 있어.”

카메라 대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긴 기간 동안 빌려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해 꽤 놀라웠다. 이화에서도 장비를 빌릴 수는 있지만 보통 일주일 정도의 단기 대여만이 가능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수업시간에는 사진학과 강사인 다니엘(Daniel)이 필름카메라를 빌려주었고 함께 필요한 필름은 무상으로 주었다. 심지어 이후에는 이 사진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에게 삼각대를 선물로 나눠주는 일도 있었다.

 

캠퍼스 내에 있는 장비대여소. 학생문화관(Student Union) 옆에 위치해있다. <strong>제공=김해인 선임기자
캠퍼스 내에 있는 장비대여소. 학생문화관(Student Union) 옆에 위치해있다. 제공=김해인 선임기자

 학교 안에 있는 장비대여소에 가면 천장이 높고 큰 공간에 DSLR, 필름카메라, 삼각대, 카메라에 연결하는 외부플래시 등 다양한 장비들이 선반에 가득 정리돼있다. 원하는 장비를 말하고 학생증을 보여주면 단 몇 분 만에 빌릴 수 있다. 예술 관련 학과나 미디어 학부생 등 수업에서 장비가 필요한 학과 학생들에 한해 대여 가능하다. 대여 기간은 보통 장비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 있지만 짧게는 이틀, 교수의 허락을 받으면 나의 경우처럼 약 두 달간도 빌릴 수 있다. 이메일을 통해 연장 신청도 가능하기에 편하게 대여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

이렇게 대여한 장비를 사용해 실습 시간에 참여하면 된다. 영국 대학의 수업들은 대부분 강의식 수업(Lecture)과 워크숍 수업(Workshop)이 한 과목으로 함께 짜여 있는데, 워크숍 시간에는 토론하는 세미나를 하거나 장비를 다루는 실습을 한다. 내가 듣고 있는 사진 수업은 주로 실습을 하는데, 매 수업마다 10분이든 1시간이든 학생들이 직접 밖에 나가 사진을 찍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필름을 현상하는 작업을 하기도, 다양한 조명과 빛을 사용해 정물 사진을 찍는 등 전문적인 실습을 하기도 한다.

학생을 위한 수업 지원 역시 탄탄하다. 필름을 현상하는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굉장히 걱정하고 있던 어느 날, 스태프 다니엘이 “따로 시간을 내 가르쳐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다니엘은 현상 과정을 간략히 가르쳐주고는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도록 학교에 있는 다른 사진 현상 전문 스태프에게 받는 튜토리얼 시간도 예약해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탄탄한 학생지원으로 인해 수업에 임할 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언제든 모르는 게 있으면 스태프와 약속을 잡아 만날 수 있다. 암실에서 자신의 필름을 현상하고 싶을 때는 그냥 가서 하면 된다. 따로 예약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장비를 편하게 빌릴 수 있으니 원하는 사진을 찍는 것에 최선을 다할 수가 있다.

이렇게 빌린 카메라로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을 통해 일상을 재발견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이기도 한 만큼 평소에 그냥 지나쳐가던 것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습관적으로 찍던 음식 사진도 관심을 두면 음식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색깔들이 보인다. 또 학교 건물의 붉은 벽돌을 사진으로 담을 때면 울퉁불퉁한 질감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진다. 타지에 온 이방인이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좋은 훈련을 하고 있다.

지원이 튼튼하면 학생의 열정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비록 한 학기 교환학생이지만 여기서 제공해주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갈 생각이다. 이화 또한 더욱 선진적인 실습 교육 환경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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