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에서 열린 일일 빈티지 의류 마켓. 학생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strong>제공=김해인 선임기자
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에서 열린 일일 빈티지 의류 마켓. 학생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제공=김해인 선임기자

 3월 21일 월요일, 학교 안에서 빈티지 의류 마켓이 열렸다. 학생문화관과 같은 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 2층에 올라가니 후드티부터 가죽 재킷, 알록달록한 셔츠, 청바지 등 다양한 중고 옷들이 걸려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건지기 위해 이것저것 대보며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

학교 안에 빈티지 의류 마켓이라니!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광경이 꽤 신기했다. 사실 영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고 의류 매장(second hands clothing shop)이나 자선중고품 가게(charity shop)를 정말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런던은 관광객에게 빈티지 가게로 유명한 도시다. ‘런던의 홍대’라고 알려진 동네 쇼디치(Shoreditch)에 갔을 때는 몇 걸음 떼면 계속 새로운 빈티지숍이 나올 정도로 가게가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대학 캠퍼스 안에서 여는 일일 빈티지 마켓은 처음이었다. 학교 학생들에게 옷을 기부받아 여는 벼룩시장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전문 빈티지 의류 업체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 대학교를 돌면서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마켓을 여는 것이었다.

 

빈티지 의류 마켓에서 판매 중인 자켓 <strong>제공=김해인 선임기자
빈티지 의류 마켓에서 판매 중인 자켓 제공=김해인 선임기자

 계산대로 사용하고 있는 테이블 쪽에 금발의 남성 두 명이 하얀 티셔츠를 입고 앉아있었다. 가슴팍엔 이름이 적혀있었다. 운영진인가 싶어 슬쩍 말을 걸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들은 25세 조(Joe)와 22세 새미(Sammy)로, 최근 빈티지 의류 사업을 시작한 공동창업자였다. 조는 이전엔 온라인으로 빈티지 옷을 판매했는데, 둘 다 오래전부터 빈티지 의류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키가 크고 다부지게 생긴 조는 자신이 왜 빈티지를 좋아하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프라이마크(Primark)와 같은 패스트 패션을 좋아하지 않았어. 빈티지 옷이 훨씬 친환경적이고 자신의 개성도 잘 표현해줄 수 있잖아.”

듣고 보니 지금껏 내가 어떤 옷을 사는지, 옷들이 버려지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BBC에 따르면 매년 대략 92만 톤의 의류와 폐원단이 버려진다. 수치만 들으면 감이 잡히지 않겠지만, 옷으로 가득 찬 커다란 쓰레기 트럭이 1초에 한 번씩 땅에 옷을 쏟아붓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버려진 폐의류의 절반 이상은 매립되고 약 25%는 소각된다고 한다. 최근 유튜브 영상에서 본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산처럼 쌓이고 있는 헌옷더미들이 떠올랐다. 쉴 새 없이 만들어지는 옷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로 버려져 차곡차곡 지구에 쌓이고 있었다.

다행히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조와 새미는 요즘 들어 빈티지 의류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은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해 많이 신경 써서 그런 것 같다”는 게 조의 말이다. 중고의류 거래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은 향후 5년 안에 중고의류 거래 시장이 2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빈티드(Vinted)’와 ‘디팝(Depop)’ 같은 중고의류 거래 앱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빈티지 의류 마켓에서 판매 중인 청바지 <strong>제공=김해인 선임기자
빈티지 의류 마켓에서 판매 중인 청바지 제공=김해인 선임기자

 지속가능한 패션이라는 점 말고도 빈티지 옷의 장점은 더 많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학교에서 열린 빈티지 마켓도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옷을 팔았다. 옷을 담아오면 무게를 측정해 1킬로당 15파운드(한화 약 2만4000원)를 내는 방식으로, 티셔츠 등 가벼운 옷들만 고른다면 2만 원 남짓한 돈으로 10벌 넘는 옷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개성 넘치는 옷을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빈티지 쇼핑을 즐기는 친구들은 모두 “빈티지 옷이 나를 더 잘 표현해준다”고 입을 모았다.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을 찾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옷을 살 때 나의 전제는 ‘새 옷’을 사는 것이었다. 빈티지 옷은 구경하러 둘러보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왜 항상 새 옷만 사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런던에 있는 빈티지 마켓에 놀러 갔을 때 보라색 캐시미어 가디건을 3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중고 옷이지만 깔끔하고 보들보들해 지금도 아주 잘 입고 있다.

환경을 생각할 때 제일 좋은 건 옷을 적게 사서 오래 입는 것이겠지만, 늘 그럴 수야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옷을 사야 하는 경우, 또 새로운 옷을 사고 싶은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 이번에는 빈티지 옷으로 눈을 돌려보기를 추천한다. 돈도 아끼고, 탄소발자국도 줄이면서, 나만의 옷을 찾을 수 있는 ‘1타 3피’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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