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센트럴랭커셔대 도서관에 설치된 자동문. 캠퍼스 모든 건물엔 이렇게 자동문이 있어 허리 높이에 위치한 버튼만 누르면 장애학생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strong>제공=김해인 선임기자
영국 센트럴랭커셔대 도서관에 설치된 자동문. 캠퍼스 모든 건물엔 이렇게 자동문이 있어 허리 높이에 위치한 버튼만 누르면 장애학생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제공=김해인 선임기자

4월 27일, 학교에서 장애 학생 포럼(Disabled Forum)이 열렸다. 학생연합(Student Union)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알게 됐는데, 매달 장애 학생과 직원, 학교 구성원이 모여 장애 학생 권리 보장을 위해 토의하는 자리라고 설명돼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금했다. 영국 대학에서의 장애 인권은 어떤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당일 포럼에 찾아갔다.

학교 직원에게 당사자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지 묻자 “오브 콜스(Of course)!”를 외치며 회의실로 안내해줬다. 회의실엔 10명 정도가 앉아있었다. 딱딱한 행사인가 했으나 편안하게 둘러앉아 대화하는 시간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학생회장, 장애학생회장을 포함한 5명의 학생, 5명의 직원, 2명의 수어 통역사가 참여했고 한 명의 학생은 화상회의로 들어왔다.

포럼은 학생들이 안건을 내면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회의에는 청각장애 학생들도 있었기에 수어 통역사가 포럼 내내 통역을 했다. 쉼 없이 대화가 이뤄지는 만큼 전달해야 할 정보가 많아 통역사 2명이 번갈아 가며 말을 전했다.

2시간가량 장애 학생의 이동권, 수업권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중 ‘레이다 열쇠(RADAR Key)’ 적용 여부에 대한 토의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레이다는 ‘영국 장애 및 재활 협회(Royal Association of Disability and Rehabilitation)’의 앞 철자를 따서 만든 약자다. 레이다 열쇠는 국가 정책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영국 전역에 있는 약 9000개의 장애인 전용 화장실(Accessible Toilet)을 모두 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 평소 잠겨있는데, 레이다 열쇠 하나만 있으면 장애인이 매번 누군가에게 화장실을 사용하겠다는 요청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을 잠가두는 이유는 청결과 장애인 편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모두에게 개방해두면 비장애인이 장애인 화장실을 더럽게 이용하거나, 공간이 널찍하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이 들어가 일탈을 저지르는 일이 적지 않아 이런 정책이 마련됐다고 한다. 레이다 열쇠는 장애인이라면 전국의 관련 상점이나 온라인몰 어디서든 약 5파운드를 내고 살 수 있다.

아마 지난 포럼에서 학내 레이다 잠금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던 모양이었다. 장치를 설치할 것인지, 그러려면 현실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관해 대화가 오갔다. 장애학생회장인 사라(Sarah)는 “물리적 열쇠는 쉽게 잃어버릴 수 있고, 이를 누구에게까지 지급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반대 의견을 던졌다. 반면 청각장애 학생 루시(Lucy)는 “이미 많은 곳에서 사용하고 있기에 잘 정착된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고 수어 통역사가 이를 음성언어로 전했다.

이번 학기 마지막 회차 포럼이었기에 방학 이후 9월에 입학할 새내기들에게 장애 학생 지원 관련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학생들은 지원이 있어도 그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기 초에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행사 부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 2시간을 채운 포럼은 여름방학 때 캠퍼스에 설치할 방향 안내표지 등의 계획을 설명하고 마무리됐다. 사라는 “1년 동안 포럼을 통해 장애학생과 학교의 소통 문제가 많이 개선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포럼에서의 모든 대화는 소통의 장벽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수어 통역사가 있는 상황이 눈에 익숙지 않아 낯설었지만, 이내 각자가 발화하는 방식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장애인, 비장애인에 대한 구분 없이 개인들이 말하는 의견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국에 와서 느낀 점은 일상에서 장애인을 훨씬 자주 만난다는 것이다. 학교는 당연하고, 펍, 심지어 클럽에서도 만나게 된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모든 건물에 자동문이 설치돼있어 신기했는데 이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였다. 허리께쯤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고 닫히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쉽게 오갈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서로를 만나지 못하면 낯설어진다. 진부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악순환을 끊고 나아가려면 결국 대화를 나눠야 한다. 포럼 같은 자리를 통해 장애인 접근성이 개선되면 서로를 만나게 되고, 더 많은 대화가 오가게 된다.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은 아직 장애인에게는 전혀 일상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장애 학생 포럼과 같은 대화의 장은 모두가 평등한 일상을 공유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이화도, 한국도 이러한 대화와 만남의 장을 자주 마련하려는 노력부터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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