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상인들의 생존전략, ‘코로나 분투기’를 들어보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먹을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대학가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화 52번길의 가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힘을 내고 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먹을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대학가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화 52번길의 가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힘을 내고 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9월, 가을학기가 시작됐지만 이대 앞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학생들로 북적였을 이화여대길 52번가(52번가)는 개강 이후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는 가게들의 영업종료를 알리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정들었던 가게의 폐업 소식에 학생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코로나19 장기화는 대학가 상권의 장기적인 불황을 불러왔다. 자리를 뺀 가게도 많았다. 본지가 직접 세어본 결과 52번가에는 16개의 상가가 임대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이대 상권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가게들이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택트’ 영업 방식을 꾀하다

커피가게 ‘셔틀즈’. 본래 배달 커피 전문점이었던 셔틀즈는 코로나19 이후 비접촉 판매를 위해 가게 앞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커피가게 ‘셔틀즈’. 본래 배달 커피 전문점이었던 셔틀즈는 코로나19 이후 비접촉 판매를 위해 가게 앞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1일, 52번가에 위치한 커피가게 ‘셔틀즈’는 수제 커피 자판기를 새로 설치했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고민한 결과다.

본래 셔틀즈는 ‘배달 커피 전문점’을 콘셉트로 매장 운영과 배달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이 거세지며 잠깐의 접촉도 위험하게 됐다. 셔틀즈 사장 ㄱ씨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이전과는 달리 비접촉 판매 방식이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자판기 도입 계기를 설명했다.

자판기를 설치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손님들은 빠른 반응을 보였다. ㄱ씨는 “배달로 인해 매장이 닫혀 있을 때나 영업시간이 아닐 때도 손님들이 간편하게 음료를 찾을 수 있어 만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에 걸맞은 자판기 이외의 비대면 판매 방식에 대해 더 공부하고 있다”며 향후 계획을 전했다.

 

1997년부터 본교생들의 사랑을 받아 온 ‘빵 사이에 낀 과일’은 매출이 줄자, ‘쿠팡이츠’에 상호를 등록해 배달을 시작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1997년부터 본교생들의 사랑을 받아 온 ‘빵 사이에 낀 과일’은 매출이 줄자, ‘쿠팡이츠’에 상호를 등록해 배달을 시작했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코로나19 이후 배달을 시작한 가게도 있다. 본교 앞 ‘빵 사이에 낀 과일(빵낀과)’은 7일부터 배달 애플리케이션 ‘쿠팡이츠’에 상호를 등록해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매출 감소와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빵낀과는 1997년부터 운영된 가게로, 본교생들 사이 정겨운 밥집으로 유명하다. 23년간 홀만 운영해왔던 빵낀과는 코로나19 이후 예년 매출의 30% 정도만 나올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사장 박춘희(69·여·서울 영등포구)씨는 어려운 가게 상황으로 지난 4월 폐업을 고려했으나, 이화인들의 ‘빵낀과 폐업’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이전 매출의 95%까지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5월과 6월 들어 매출은 계속 감소했고, 결국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매출은 증가세다. 배달료 부담도 있지만, 주문이 늘기 시작해 가게 매출에 도움이 됐다. 쿠팡이츠는 배달료를 건당으로 산정한다. 박씨가 쿠팡 쪽에 건당 2,500원을 부담하면, 손님은 배달비로 3,000원을 부담한다. 박씨는 “건당으로 배달비를 산정하는 편이 거리 비례로 산정하는 방식보다 더 싸서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어 “7일 오후4시부터 쿠팡이츠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제만 11건, 오늘 낮까지 9건의 배달을 받았다”고 전했다.

배달은 박씨와 손님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박씨는 “코로나19로 다들 힘든 시기에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꺼려질 수 있는데, 배달은 그런 문제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며 웃어 보였다.

손님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쿠팡이츠에 달린 빵낀과의 후기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서 아쉬웠지만 이렇게 쿠팡이츠에 뜨니 반갑다”는 의견과 “배달도 빠르고 가게에서 먹던 맛과 똑같다”는 호평이 달렸다.

색다른 도전인 만큼 맞춰가야 할 부분도 있다. 배달 업체와의 소통 측면에서다. 배달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과일 음료의 주재료가 소진됐다. 박씨는 곧바로 쿠팡이츠에 생과일 음료 게시를 내려달라 요청했다. 그러나 박씨의 요청이 반영되기 전 주문이 들어와, 결국 가게에 있던 바나나로 음료를 만들어 보내야 했다. 박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나나를 못 먹는데 바나나로 만든 음료가 와서 조금 당황했다”며 “무슨 과일인지 메뉴에 표기돼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박씨는 배달 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근에는 배달 후기 이벤트를 시작했다. 박씨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툰 점이 많다”며 “후기를 남기면 떡볶이에 맥반석 계란을 추가하는 서비스도 진행 중”이라 밝혔다.

 

유튜브에서 돌파구를 찾다

마카롱 가게 ‘운이 좋은 아이’는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보를 진행 중이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마카롱 가게 ‘운이 좋은 아이’는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보를 진행 중이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2019년 5월부터 52번가에서 마카롱 가게 ‘운이 좋은 아이’를 운영하는 이혜경(36·여·서울 성북구)씨. 이씨는 상가 재계약 시기가 다가온 2020년 5월, 줄어든 매출로 폐업을 고민했다. 그러나 공들여 꾸민 가게와 단골손님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개업 당시, 이씨의 마카롱은 빨리 동나 늘 학생들을 아쉽게 했다. 이씨는 마카롱이 소진되면 영업을 종료해 운영 시간을 ‘소진 시까지’로 표기했다. 인기가 많았던 터라 보통 정오에 오픈해 오후3시~4시에 문을 닫았다. 비대면 수업으로 거리가 한산해진 지금은 오후7시까지 영업하고 있다.

2020년 초부터 이어진 비대면 수업으로 이씨는 가게 운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씨는 “이쪽 상권의 주 손님인 학생들이 오지 못하니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2학기에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걸고 버텨냈다. 그러나 개강 즈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비대면 강의가 진행되며 또다시 위기를 느끼게 됐다.

이씨는 다른 가게들처럼 배달 판매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운이 좋은 아이’는 1인 운영 가게로 매장 운영과 배달 판매를 동시에 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씨는 마카롱의 식감이 변질될 상황을 우려했다. 이씨는 “손님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온도에 민감한 마카롱 특성상 배달 도중 녹아버리면 원하는 식감대로 먹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이씨는 배달을 하는 대신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던 중, 이씨는 유튜브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마카롱 제작 과정을 담은 브이로그를 제작해 가게를 홍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씨는 영상을 보고 손님들이 찾아올 거란 기대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밝혔다. 이씨는 5월부터 유튜브 채널 ‘운이 좋은 아이 a lucky child’에 마카롱 제작 영상을 올리고 있다. 단골손님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이화여대 재학생이었는데, 마카롱도 맛있고 영상도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52번가를 지키는 사장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아침마다 주변을 한 바퀴씩 도는데, 자리를 뺀 상가가 많더라고요. 상황이 빨리 나아져 다들 힘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대면 ‘팝업’ 식당으로 변신하다

비건 식당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인스타그램으로 예약을 받아 요리를 포장해 주는 팝업 형태로 식당을 운영 중이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비건 식당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인스타그램으로 예약을 받아 요리를 포장해 주는 팝업 형태로 식당을 운영 중이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2019년 9월, 52번가에 오픈한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는 버섯들깨덮밥과 무파장으로 유명한 비건 식당이다. 올해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난 뒤 사장 우민주(조소·16)씨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

바로, ‘팝업’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우씨는 지난 8월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의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손님들에게 ‘그날의 요리’를 공지하고 예약을 받고 있다. 예약일에 손님이 직접 다회용 포장 용기를 들고 매장을 방문하면, 우씨가 음식을 용기에 담아준다. 홀은 따로 운영하지 않는다.

우씨는 “비말에 쉽게 노출되는 장소에서 계속 영업하기엔 우려스러웠다”며 “개방된 공간을 지속해서 운영하기엔 무리라는 판단하에 포장 주문만 받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과 예방을 위해서는 접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운영 방침이 포장으로 바뀌었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좋았다. 인스타그램에는 “코로나로 환경 걱정이 많이 되는 상황인데 좋은 시도인 것 같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우씨의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8월15일 우씨는 비대면 ‘팝업 스토어’ 형태의 칵테일바를 반짝 운영했다. 매장 홀에서 바텐더 ‘찬란’과 협업해 ‘찬란의 토요’를 열고, 도시락과 칵테일을 같이 제공했다.

찬란의 토요에서는 차와 술을 결합한 티칵테일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우씨는 “티칵테일과 어울리는 요리를 같이 선보여도 재밌을 것 같아 제안했다”며 협업 배경을 설명했다. 손님들 역시 차와 술이 어우러진 칵테일이 신선했다는 반응이다. 이후 우씨는 8월22일과 5일 칵테일바를 추가로 운영하며 토요일에 비정기적으로 손님들에게 찾아가고 있다.

우씨는 남은 하반기도 지금과 같이 방역에 신경 쓸 예정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대면으로 식당을 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도에서다. 우씨는 “현재와 같이 포장 음식점으로 운영하고,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재미난 프로젝트를 꾸며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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