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 가 써 있는 메뉴판, 동물성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비건 식당. 본교 주변에서도 낯선 풍경은 아니다. 단지 채식뿐만이 아니다. 다회용품 사용,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 등에 대한 수요와 관심 역시  커지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작년 기준 100만~150만명이다. 지난 10년간 10배가량 증가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실천하고 변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본지는 비건 요리로 비건뿐 아니라 논비건의 관심까지 받고 있는 비건 식당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와 ‘베지베어(VEGE BEAR)’ 창업주들을 만났다.

같이 놀아요,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버섯들깨덮밥을 조리 중인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우민주 대표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이화여대길 52번가 골목뒤편 4평(13.22314m2) 남짓, 주황색의 따뜻한 온기를 풍기는 식당가 있다. 비건 밥집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게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우민주(조소·16)씨가 요리를 하고 있다. 17일 우씨가 가장 좋아한다는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는 올해 9월2일 개업해 문을 연 지 3달이 채 안 됐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담백하고 건강한 요리로 입 소문이 자자하다. 한 두팀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새롭지 않다.

이 모든 건 작게는 ‘내가 먹을 게 없다’는 우씨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요리가 더 좋아졌다. 평소 지인들에게 요리를 자주 해주기도 했다. 우씨는 자신이 즐거운 것을 내어줬을 때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기꺼이 내어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의 가게가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봤고, 그는 어느새 계약을 하고 있었다. ‘비건 식당을 해야겠다’고 숨 쉬듯 하곤 했던 생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는 그가 좋아하는 교수님의 말에서 따왔다. 낮에는 가게 준비, 밤에는 가게 이름을 고민하면서 메모를 뒤적였다. 그렇게 발견한 메모가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다. “당시 수업에서 한 학생이 질문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커리어를 쌓고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데 동시에 그냥 놀고 자고 싶다고요. 교수님께서 바닥을 보고 살며시 웃으시다가 고개를 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교수님께서 ‘어떤 것도 지금의 모습을 지속하지 않는데 인생의 의미를 어디서 찾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가치가 밖에 있겠느냐고, 그냥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시는 거에요.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노세요 그냥’ 이러셨어요. 그때 바로 메모를 해뒀어요. 그 말이 지금 가게의 이름이에요”

가게의 대표 메뉴는 버섯들깨덮밥과 채개장*이다. 이 외에도 떠오르는 메뉴나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반짝 메뉴’를 준비한다. “먹고 싶은 요리를 떠올리고 시장에 가요. 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재료들을 만나죠. 특히 ‘나는 지금 꼭 먹어야 해’라고 눈빛을 보내는 제철 채소들이 있어요. 그 눈빛을 거부하기는 어려워요.”

‘하고 싶은 요리인지’는 우씨가 메뉴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그는 평소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요리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한다. 그가 먹고 싶었던 요리, 친구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요리, 혹은 제철에 먹어야 하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오묘하게 겹쳐 메뉴가 탄생된다.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계산대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가게의 인기를 실감하냐고 묻자 그는 아침에 오픈하기 전 문 앞에 손님들이 줄 서있는 것을 보며 놀란다고 말했다. “공간에 찾아와 주신 것 자체가 감사해요. 다 드시고 나서 너무 감사하다며 잘 먹었다고 하실때 기분이 묘해요. 짜릿하기도 하고요. 원래 전공이 조소이어서 그런지 제 작품을 내 보이고 이에 대한 감상을 전달받았을 때랑 기분이 비슷한 것 같아요.”

우씨는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자한 마음이 생겼다면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한 사람 삶의 지향점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있어요. 작게는 궁금증을 가지게 하고 크게는 주변을 변화시키죠. 불편한 것도 어려운 것도 많아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불편한 것이 아니라 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나중에는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어서 작은 뿌듯함이 생기더라고요.”

우씨는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서 눈을 다섯 번 깜빡이면 5일이 지나가 있다”고 말한다. 주문이 밀리고 설거짓거리가 쌓일 때면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다보니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떠올려보면 딱히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라고 이름을 지을 때 줄여 부르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이세돌’과 발음이 비슷해져서요.(웃음) 줄이지 않고 이름 전체를 불러주실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라고 부를 때 그 이름을 부르고, 듣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작게나마 사람들 입에서 오가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모두 나도 모르게 이 세계는 놀이터라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흰 앙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호랑이 콩을 사두고 새로운 반짝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는 우씨. 사회에 꼭 발맞춰 가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담백하면서도 꽉 찬 그의 요리가 떠올랐다.

과정까지 맛있는, ‘베지베어(VEGE BEAR)’

‘베지베어’의 토마토 스튜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음료 주문 시 뚜껑과 빨대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하고, 메뉴 두 개 이상 구매 시에만 종이봉투를 제공하고, 포장용기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는 비건 밥집이 있다. ‘이불’ 도시락과 신메뉴 토마토 스튜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박스퀘어 2층 ‘베지베어(VEGE BEAR)’다.

베지베어는 조은하(소비·15), 고다현(식영·15), 민성주(융콘·16)씨가 운영하고 있다. 베지베어 창업 멤버 민씨를 바쁜 영업시간 중 박스퀘어 2층에서 만났다.

민씨는 올해 1월 채식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비건을 지향하는 외삼촌을 봐왔기에 민씨에게 비건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비건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채식이 비거니즘 안에서 큰 주제이다보니 음식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베지베어의 첫 시작은 청년키움식당 공모전이었다. 올해 2월 시작된 공모에 민씨를 포함한 3명의 융합콘텐츠 학생들이 비건 초밥을 콘텐츠로 참가했다. 심사위원들은 베지베어의 요리 실력보다는 콘텐츠의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했다. 이후 조씨와 고씨가 베지베어팀에 합류했고 덮밥으로 메뉴를 변경해 4월 팝업식당을 열었다. 팝업 식당에서의 좋은 성적은 9월2일 정식창업, 박스퀘어 입접으로 이어졌다.

베지베어라는 이름에 대해 묻자 민씨는 “곰은 힘쎈 동물이잖아요!”라고 답했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몸이 약하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힘이 쎈 동물로 가게를 상징하고 싶었어요. 이화의 곰돌이 캐릭터를 떠올리기도 했고요. 베지베어, 라임도 잘 맞지 않나요?”

베지베어의 대표 메뉴는 덮밥도시락이다. 가지, 버섯, 애호박, 두부구이 등을 얹은 덮밥에 고추장 이불과 된장 이불 중에 어떤 ‘이불’을 덮어줄지만 정하면 된다. 두유와 홍차 티백을 직접 우려내 만든 밀크티, 추운 겨울에 몸을 녹일 수 있는 토마토 스튜는 또 다른 인기 메뉴다.

처음부터 능숙하게 요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베지베어를 준비할 때 식품영양학과 박보경 교수님께 조리실습을 받았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저 말고 칼 잡을 사람 없냐고 그러셨어요. 그 정도로 요리를 잘 못했죠. 지금은 칼질 정도는 능숙하게 잘 해내요.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

매장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을 묻자 민씨는 ‘일회용품 사용’을 꼽았다. 가게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주문한 야채가 커다란 비닐에 포장돼 배달와 난감하다. 또 매장 내부가 작다 보니 싱크대도 작아 다회용 식기를 여러 개 비치해 두기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용기에 요리가 나갈 때가 가장 아쉬워요. 환경 보호를 실천하고자 하는데 현실적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학교 주변에 비건 메뉴가 샐러드나 빵 종류밖에 없어 덮밥을 구상하게 됐다. 포만감도 지속되고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할 수 있어서다. 그는 “비건이라고 해서 늘 건강한 것만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라며 튀김, 매운 음식 등 새로운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하지만 좁은 공간 때문에 다양한 메뉴를 준비할 수 없어서 아쉽죠. 한편으로는 재료를 미리 많이 사다 놓을 수가 없어 재료가 신선할 수 밖에 없기도 해요.”

박스퀘어 2층에 위치한 베지베어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민씨는 ‘맛있다’라는 것이 단순히 혀의 감각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리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이 맛있어야 비로소 맛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전 이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해 보고 윤리적인 소비를 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서 완벽한 한 명의 비건보다는 비건지향인 여러 명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더 효과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완벽하지 못한 비건 지향인인 것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사회 흐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응원했으면 좋겠어요."

 

채개장* : 이름의 기원 문제로 메뉴명 변경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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