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1일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읽고 토론한 후 촬영하는 모습 제공=오은서씨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떤 이유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삶보다 죽음이 낫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요?”

8월 늦은 여름의 저녁, 강남의 한 스터디룸에 10명 정도의 사람이 플라톤의 「파이돈」을 손에 들고 모였다. 튜터가 토론의 말문을 여는 질문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책에 형광펜으로 잔뜩 표시한 부분을 설명하며 생각을 말했다. 구절마다 빼곡이 분석한 흔적이 있는 책장에서 어떤 주제가 나와도 토론 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미국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세미나를 한국에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필로어스 프로젝트. 철학(Phliosophy)의 앞글자와 우리(Us)를 합쳐 ‘함께 철학하자’는 의미인 고전 독서 모임 프로그램이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 2학년을 마무리한 오은서씨는 올해 1월부터 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학교에서 수업하며 이런 문화가 한국에도 정착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었던 4월부터 온라인으로 진행하다가, 6월에 이르러서는 한국에서 면대면 모임을 열게 됐다. 6월부터 현재 11월까지 37번의 모임을 진행했으며 참여 인원은 프로그램 중복 인원 포함 116명이다.

“한국에서 재수해서 대학에 갔어요. 학교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더라고요. 특히 철학적인 고민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한국 대학을 다니다가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가서 공부를 하니 ‘한국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이런 수업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지금까지 필로어스가 다룬 고전은 19권으로 「군주론」, 「메논」, 「햄릿」, 「창세기」등이 있다. 프로그램은 고전을 읽고 두 시간 동안 토론하는 ‘필로토크’, 고전과 영화를 함께 다루는 ‘필로무비’,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세미나 페이퍼와 같은 형식인 ‘필로라이팅’으로 구성된다. 고전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11월부터는 ‘필로소셜’도 진행한다. 필로소셜은 책 한권을 다 읽지 않고, 적은 분량부터 읽어나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 세인트 존스 칼리지 수업을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토론 중에 개인적인 경험이나 배경 지식을 말하면 안되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안된다. “프로젝트를 막 시작했을 때 한 분이 5분 넘게 책에 나오지 않는 지식을 얘기하는거예요.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괜찮지만 그 당시에는 말을 제지하고 토론으로 이끄는 게 어렵더라고요.”

또 다른 고민은 나이 서열 문화였다. 한국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나이가 다른 사람끼리 토론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필로어스 프로그램 참가자 연령대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함에도 토론이 가능했다.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이야기를 참가자들이 해주셨어요. 상대방이 하는 말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지 보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거 같다는 말을 해주실 때 많이 뿌듯했죠.”

프로젝트를 통해 인문학이 그저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고전이 어렵지만 인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고민의 흔적이거든요. 행복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고전의 내용이 마냥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죠. 저희 프로젝트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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