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는 “2030년까지 대학 절반이 사라진다”고 예상했다. 인공지능 AI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의 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본지는 기존 대학과 차별된 시스템을 추구하는 미국 대학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해외취재팀은 9월7일~18일 미네르바 스쿨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부, 세인트 존스 칼리지 뉴멕시코 산타페 캠퍼스에 방문했다. 이번주는 캠퍼스가 없는 혁신 학교인 미네르바 스쿨을 소개한다.  

 

미네르바 스쿨에서 자체 개발 프로그램 ‘포럼(Forum)’을 통해 수업하는 모습. 교수자와 학생은 서로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마주보며 토론한다.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학생은 초록색, 참여도가 낮은 학생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출처=유튜브 채널 ‘Minerva’
미네르바 스쿨에서 자체 개발 프로그램 ‘포럼(Forum)’을 통해 수업하는 모습. 교수자와 학생은 서로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마주보며 토론한다.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학생은 초록색, 참여도가 낮은 학생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출처=유튜브 채널 ‘Minerva’

 

노트북을 켜고 ‘포럼(Forum)’이라는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검은 화면에 교수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후 하나둘 순서대로 학생 얼굴이 띄워지고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교수가 말문을 열기 전에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를 꺼내며 수업을 주도한다. 이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만 타이완까지 7개 도시*에 흩어져 있지만, 컴퓨터 화면에 모여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열띤 토론을 벌인다. 말이 적은 학생의 화면에는 빨간 불이, 활발한 학생에게는 초록 불이 켜진다. 이곳에서 교수는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중재할 뿐, 일방적인 강의는 하지 않는다.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s at KGI)의 흔한 수업 풍경이다.

(*샌프란시스코, 서울, 하이데라바드,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런던, 타이페이)

2014년에 탄생해 올해 첫 학부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는 캠퍼스가 없다. 학생들은 전 세계 7개 도시에 있는 기숙사에 모여 살며 온라인으로 토론하고 공부한다. 이들은 4년간 학기마다 새로운 도시를 모험하고 역사를 탐구하며 그 도시의 기관, 기업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네르바 스쿨 설립자인 사업가 벤 넬슨(Ben Nelson)은 이러닝 코리아:컨퍼런스(E-learning Korea: Conference)에서에서 “대학이 지금처럼 정보만을 제공하는 교육을 한다면 성공하지도 유지되지도 못할 것”이라며 “인터넷을 통해 정보 접근이 무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혁신을 선택하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의사 결정 능력과 사고 체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미네르바 스쿨 구성원들은 입을 모아 “무엇을 사고할지(what to think)가 아닌 어떻게 사고할지(how to think)”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얻고 응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마치 어미 곰이 새끼에게 직접 물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올해 9월 미네르바 스쿨에 입학한 김문섭(자유전공·19)씨는 이렇게 말한다. “미네르바 스쿨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아요. 어차피 그 지식은 새로운 지식에 의해 도태되니까요. 오히려 태도나 역량을 가르치죠. 이를 HC(Habits of Mind & Foundation of Concept)라고 불러요.” 

이러한 생각이 모여 캠퍼스라는 공간 제약 없이 전 세계에서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대학이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캠퍼스 유지 비용이 없어 타 미국 사립 대학보다 저렴한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SAT(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 Scholastic Aptitude Test), TOEFL같은 정형화된 점수를 모두 배제한 입학시험도 만들어냈다. 

고등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에 미네르바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은 모험심 넘치고 창의적인 학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현재 미네르바 스쿨은 약 75개국 학생이 모여 전교생의 약 80%가 국제 학생으로 매우 다양한 문화적, 경험적 자원을 제공하는 가장 ‘미국적인’ 학교가 됐다.

그만큼 미네르바 스쿨에서 공부하게 된 학생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박지원(사회과학·16)씨는 미국 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기존 교육 시스템에는 배울 것이 많지 않다”며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를 여행했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그에게 아버지는 “대학을 가야 할 10가지 이유가 없으면 가지 말라”고 조언했고, 그는 고민 끝에 ‘교실 밖에서의 배움’을 강조하는 미네르바 스쿨에 진학하게 됐다. 조예영(경영학·17)씨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UCLA에 진학해 1년을 보냈다. 정보를 외우고 시험을 치는 방식이 고등학교식 교육의 연속이라고 느낀 조씨는 미네르바 스쿨에서 새롭게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도시에서 함께하면 배우는 것도 배가 된다. 박씨는 “경제학 과목에서 정부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는 중국 정부가 어떻게 이를 실현하고 있는지, 한 친구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정부랑 실험했던 경험을 말해줬다”고 했다. 조씨도 “미네르바 스쿨의 수업 방식은 여러 사회 이슈들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며 “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학교에서는 각 도시의 자원을 십분 활용해 학생들에게 배우고 경험할 거리를 제공한다. “각 도시가 대표(represent)하는 것들을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미네르바 스쿨의 창립 멤버이자 시니어 팀의 일원인 준코 그린(Junko Green)씨가 전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시들은 각각 대표하는 산업이나 네트워크가 있어요. 샌프란시스코에는 실리콘 밸리가 있고, 런던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며 서울은 풍부한 역사를 가진 근대화의 흥미로운 모델이죠.” 

미네르바 스쿨의 직원들은 학생들이 개발을 원하는 역량과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각 도시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후 ‘시빅 프로젝트(civic project)’라는 프로그램을 주선해 학생과 기업이 함께 협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밖에도 각 도시와 국가의 역사, 문화 자원을 깊게 경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큐레이팅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들을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적용, 실현하고 지역 사회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미네르바 학생과 일을 한 기업들도 다들 우리 학생들이 성숙하고 노련하며, 배운 것을 실제 상황에서 잘 활용한다고 평가를 하곤 합니다.” 그린씨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계지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미네르바 스쿨’이라는 장소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미네르바 학생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도시에 적응하고, 다양한 배경의 학생과 공간 제약 없이 토론함으로써 전공을 자유롭게 융합해 ‘사고하는 방식’을 배워가고 있다. 미네르바 스쿨의 교육이 미래 대학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궁극적으로는 대학이라는 모델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니어 팀의 준코씨는 이렇게 전한다. “미네르바 스쿨은 앞으로도 오직 하나뿐이겠지만,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우리의 아이디어는 계속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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