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없이 독일에 간다고? 노숙할거야?”

 

지난 2월 출국을 2주 앞두고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독일 방문학생을 준비하며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였던 모든 행정 절차를 마무리 짓고 출국만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랬다. 내겐 집이 없었다.

 

왜 내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건지 다들 궁금해 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내가 지원한 독일 헤센주 마르부르크의 마르부르크 필리프스 대학교(Philipps-Universität Marburg)는 교환학생에게는 모두 기숙사를 주지만, 방문학생에게는 선착순으로 기숙사를 배정한다. 정확히는 기숙사와 학생식당 카드 등의 복지혜택이 포함된 서비스 파켓(Servicepacket)을 신청 순으로 배부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 유난히 지원자가 몰려 일찍 마감된 것이다.

 

처음 서비스 파켓에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위기감이 없었다. 문의를 해보니 취소하는 학생이 생기면 대기번호가 넘어간다고 했다. 설마 자리 하나 안 나겠나싶었다. 보름이 지나고 달력이 넘어가자 불안함이 밀려왔다. 재차 문의를 해도 기약 없는 답변뿐이었다.

 

같은 학교를 지원한 이화인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도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 명 가량 중에 절반은 기숙사를 배정받고 절반은 그렇지 못했다. 방문학생을 포기하겠다는 학생도 나왔다. 그러나 4학년 1학기를 마친 내게 이번 방문학생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직접 집을 구해보기로 했다.

 

독일의 플랫인 베게(WG)를 구하는데 이용한 'WG-Gesucht'어플
독일의 플랫인 베게(WG)를 구하는데 이용한 'WG-Gesucht'어플

난관이 시작됐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 한국에서도 집을 구해본 적이 없는데, 생전 밟아보지도 못한 땅에서, 심지어 독일어도 못하는 상태로 집을 구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닥치는 대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 독일 한인 커뮤니티 베를린 리포트’,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독일 학생들이 집을 구할 때 주로 쓴다는 어플 ‘WG-Gesucht’도 깔았다. 한국에서 계약하면 사기당할 위험이 높으니 차라리 독일에 일찍 가서 집을 구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오죽하면 악몽까지 꿨을까. 머물 곳이 없다는 공포는 컸다. 힘들게 입학 허가를 얻었으나 집이 없어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원래 예정됐던 출국일을 일주일 앞당겨 비행기 표를 끊었다. 출국 전 최대한 집을 구해보고 정 안 되면 직접 독일에 가서 발품을 팔 생각이었다.

 

하루에 수십 통씩 방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나라의 셰어하우스 시스템과 같은 주거공동체를 독일에선 베게(WG·Wohngemeinschaft)’라고 부르는데, 대학도시인 마르부르크에서 베게를 구하는 세입자는 철저히 을이다. 방을 구하려는 학생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방을 내놓는 사람과 베게 메이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처절하게 어필했다.

 

답장을 목 빠지게 기다리면 20통에 1번꼴로 답장이 왔다. 3분의 2는 거절 답장이었다. 대부분 이유는 거주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나는 6개월 간 체류 예정인데, 많은 곳에서 최소 1년 이상 머물 학생을 원했다. 그렇게 보낸 메시지를 다 합치면 족히 200통은 넘었다.

 

출국 일주일 전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오라는 답장이 왔다. 절망 속 한줄기 빛과 같았다. 그 연락만 믿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별 일이 없으면 이 집과 계약할 생각이었다. 더욱 험난한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225,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그 집을 보러 갔다. 그러나 인터뷰를 약속한 1시간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았다. 분명 3월부터 입주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방주인이 4월로 말을 바꾼 것이다. 게다가 4월부터 입주가 될지도 사실은 불확실하단다. 또 다시 원점이었다.

 

급히 에어비앤비를 잡고 머물면서 하루 종일 방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 네 번째 집까지 인터뷰를 봤다. 청소는 얼마나 자주 하나, 요리는 자주 하냐, 샤워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느냐처럼 사소하지만 베게 메이트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일 대 다로 질문 받았다.

 

몇몇은 다른 사람을 뽑았다며 거절 답장을 줬다. 일부는 당장 들어와서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집 환경이 너무나 더럽고 별로여서 내가 거절했다. 살만한 집구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한국에서 부모님 품안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지난날의 내가 얼마나 온실 속 화초였는지 깨달았다.

 

결국 집을 못 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가 운영하는 임시 비상 대피소로 거처를 옮겼다. 열악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애초에 청결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침대 시트 밑에서 제방마냥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본 이상 그곳에서 잘 수 없었다. 한 친구는 베드 버그 사체도 봤다고 했다.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하고 한국에서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던 한인교회 목사님 댁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열흘 가량 신세를 지며 계속 집을 찾았다.

 

인터뷰 이후 WG-Gesucht 어플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인터뷰 이후 WG-Gesucht 어플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 집까지 인터뷰를 봤다. 학교에선 이미 오리엔테이션까지 모두 마친 뒤였다. 내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생각하며 울 듯한 마음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Hey, are you still interested in the flat(너 아직 방 구하니)?” 메시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독일에 도착하고 15일째. 길고 긴 집구하기 여정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연락을 준 사람은 세 번째로 인터뷰를 봤던 방의 주인이었다. 4개월 동안 베를린으로 인턴을 나가는 친구였다. 독일에선 이런 식으로 단기 임대를 해주는 것을 쯔비쉔미테(Zwischenmieter)라고 한다. 덕분에 천만다행으로 노숙은 면했다.

 

지금은 그렇게 얻은 방에서 행복한 베게 생활을 즐기고 있다. 우리 베개는 여자 둘, 남자 둘이 산다. 나를 빼고는 모두 독일인이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해서 독일 생활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베게 메이트들과 파티에 놀러가기도 하고, 같이 요리도 해먹는다. 방을 구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오히려 기숙사 생활을 했다면 얻지 못했을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아가는 중이다.

 

참고로 거주지를 못 구한 채로 독일에 온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늦게 방을 구했다. 여기서 교훈.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어떻게든 다 구해는 진다. 팁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은 연락을 돌리라는 것. 인터뷰에선 자신이 공동체 지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임을 어필하면서 잘 웃으면 좋다. 독일에 방을 구해야 해서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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