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만난 김민주 동문, 예술을 통해 내면 표현해

영국 작업실에서 김민주 작가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영국 작업실에서 김민주 작가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 파티에서 혼자 정장을 입고 누워 책을 읽는 사람. 벽을 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 모두 작가 자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개인적 고민과 정체성부터 여성의 이야기, 나아가 사회에 대한 시야까지 그림에 담아내는 작가, 바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김민주(시각정보디자인∙09졸) 동문이다.

김 작가를 만난 곳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작업실. 그의 작업실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는 건물, 즉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다. 김 작가의 개인 공간은 수많은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들, 그리고 그림으로 가득했다.

현재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예술을 직업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본교 시각정보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에서 약 7년간 재직했다. 그는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남의 눈에 좋아 보이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며 “돌이켜보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공허함을 느꼈다”고 당시 고민을 떠올렸다. 김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며 고민했던 것들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김 작가의 초기 작품에는 이러한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초창기에는 가면 쓴 사람들을 많이 그렸어요.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특정한 성격이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 상황을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으로 표현했어요.”

 

Our Routine(2014)제공=본인
Our Routine(2014)제공=본인

‘Our Routine’(2014)에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 그 사이에는 가면의 끈이 풀려버린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 가면의 끈을 풀고 벗으려는 것인지, 끈이 풀려버린 가면을 떨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건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는 “내 의도는 둘 다”라며 “마음속으로는 가면을 벗고서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벗겨졌을 때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진지한 취미 정도로 시작했지만 2, 3년이 지나니까 그림이 많이 쌓였어요. 열심히 번 돈을 하고 싶은 일에 한 번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전시관을 하나 대관했죠.” 2014년 12월 인사동에서 진행한 첫 개인전이 좋은 결과로 끝난 후, 김 작가는 같은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까지 열었다.

그 후 회사를 그만두고 진지하게 예술을 하기 위해 영국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Chelsea college of arts)’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순수 예술을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유럽 성향에 대한 선호가 맞물려 영국을 선택한 것이다.

영국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김 작가의 작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모든 환경이 바뀌어 더 이상 같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다른 문화권에서 동양인, 여성 그리고 예술가로 살면서 찾아가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게 됐다.

“사는 문화권도 바뀌었고, 상황도 달라졌으니 더는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죠. 여기서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표현하고 있어요.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해 거기 맞춰 살아가는 저의 상황이요.

 

Full Moon Party(2019)제공=본인
Full Moon Party(2019)제공=본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작품 중 ‘Full Moon Party’(2019)가 있다. 그림의 배경인 태국 코사무이 섬의 풀문 파티(Full Moon Party)는 바닷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다. 김 작가는 이 파티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고, 어울리지 않게 책을 읽는 자신을 집어넣었다. 그는 “현지에 적응한 것 같지만 아직은 이질적인, 편안해 보이지만 무리에 섞이지 못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예전에는 일기 쓰듯 그린 작품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문화적, 사회적 이슈로 확장한 작품 또한 볼 수 있다. 김 작가는 미투(#MeToo) 운동을 보며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감정이입을 했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The Strongest Blues(2018)제공=본인
The Strongest Blues(2018)제공=본인

‘The Strongest Blues’(2018)의 주인공들은 90년대 한국 여성 영화배우들이다. 김 작가는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등의 작품에서 표현된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보다 억압된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거침없는 모습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경험했다.

“90년대 영화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90년대와 달리 영화 속 여성들은 순종적이지 않고 훨씬 주체적인 모습이었죠. 그 모습은 미투 운동 뉴스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던 저에게 귀감이 됐고, 작품으로 표현하는 계기가 됐어요.”

김 작가는 영국에서 수차례의 개인전, 그룹 전시회, 그리고 수상경력을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줬다. 특히 2018년 힉스 어워즈(HIX AWARD) 결승에 든 것은 자랑할 만한 성과였다. 힉스 어워즈는 아트 스쿨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대회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면 응모 자체를 할 수 없어 많은 신인 아티스트들이 참가한다.

 

 

Invisible Wall(2017)제공=본인
Invisible Wall(2017)제공=본인

힉스 어워즈의 수상작 ‘Invisible Wall’(2017)은 영국에서 스스로의 소속감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작품을 그릴 당시 비자 때문에 소속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며 “정체성을 소속에서 많이 찾곤 하는데, 그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불안했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의 괴리를 벽으로 표현했고, 벽 너머로 가고 싶어하는 나, 고민하고 있는 나, 그리고 현실에 머물러 있는 나를 그렸다. 그는 “진짜 좋아하는 작품으로 하나 내자는 생각에 공모한 작품이 좋은 결과를 내 매우 기쁘다”고 웃음을 지었다.

김 작가가 이화여대에서 얻은 경험은 작품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협회에서, 사진 작가를 꿈꿨을 때는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활발한 학교 생활을 보냈다. 교양 과목 ‘여성과 예술’과 같이 인상 깊게 들은 수업의 메모는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모여 창작 활동에 자양분이 됐다.

“학교에서 한 활동부터 회사생활까지 제가 거친 모든 과정이 작품활동에 좋은 밑거름이 됐어요. 창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도 진지하게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실현하기 위해 많이 부딪혀 보는 것을 추천해요. 스스로의 가능성을 높여줄 거예요.”

다양한 해석이 있는 작품. 김 작가가 추구하는 그림이다. 김 작가는 “처음으로 남들에게 작품을 보여줬을 때, 사람마다 다른 피드백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이 재미있게 다가왔다”고 첫 개인전의 기억을 말했다. 그는 너무 직접적이지 않고,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 노력한다.

김 작가는 계속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그림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체성은 모든 작가가 이야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소재지만, 방법론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다른 각도로 보여줄지 계속 고민할 거예요.”

김민주 작가 홈페이지 : www.minjook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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