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학교건설 당국 박윤영 동문, 뉴욕 Pfizer 류은주 동문

한 회사서 20년 “남들보다 2배씩 더 일해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나은 근무환경 제공하려 사내 데이케어 센터 건설에도 일조

▲ 뉴욕시 산하기관인 뉴욕시학교건설당국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윤영 회계사. 제공=EUBS

  뉴욕시 산하기관인 뉴욕시 학교건설당국(New York City School Construction Authority)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윤영(영교·80년졸) 회계사. 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미국에서 회계사가 된 그를 뉴욕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서 8월27일 만났다. 

그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휴스턴대(University of Houston) 교육행정학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담당 교수와 진로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교수는 미국에서 교사 자격증을 얻어 학교 선생님으로 경력을 쌓은 후 교육행정관이 되라고 충고했다. 역동적인 근무환경을 원했지만 그는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현실적인 방안을 선택했다. 박씨는 충고를 받아들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침 회계와 법을 공부한 변호사 밑에서 약 1년간 일할 기회가 생겼다. 비록 남편의 이직으로 금방 그만두게 됐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박 씨는 회계에 흥미가 생겼다. 그는 뉴저지(New Jersey)에 있는 루트거스대(Rutgers University)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임신을 한 것이다. 해야할 공부가 있었던 그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 수업에선 잠이 쏟아졌다.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받는 수업이라 단 1시간도 놓칠 수 없었던 박씨는 결국 통학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기숙사에 입사했다. 대학원 졸업 직후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던 그는 이대로 취업을 못하게 될까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을 하고도 배가 불러있으니 인턴을 지원할 수 없었어요. 애를 낳고도 취직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죠.”

  우려와는 다르게 박씨는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이 됐을 무렵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을 출판하는 다우존스(Dow Jones)에 입사했다. 그는 다우존스에서 약 20년간 일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저는 직장에서 일한만큼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제가 선택돼 계속 승진할 수 있었고요. 함께 일한 동료들보다 두 배는 일했다고 생각해요.”

  3개월마다 돌아오는 분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 오후10시까지도 일에 매여 있었다. 그 탓에 아이에게 소홀했던 박씨는 아이에게 고마운 한편 미안하다. 당시 미국은 아이가 있는 여성들을 위한 시설이 지금보다 부족했다.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회사를 다닐 수 있길 원했던 그는 실제 회사 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데이케어 센터를 짓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회사에 데이케어 센터를 짓자고 처음으로 건의한 것이다. 그 과정에 회계사로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센터가 조금 더 일찍 만들어졌다면 아이를 한 명 더 낳았을 거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 드물었다. 그러나 가정에서 떳떳하려면 여성도 직업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 중 하나인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입학했던 것이다.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여성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더불어 그는 모든 여성이 꼭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성이 일을 하겠다고 선택했다면 회사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남성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면 바뀌어야 해요. 아이 없이 일만 한다고 해서 혹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필요가 없죠. 그런 것은 각자의 선택이에요.”

  박씨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인식이 더 바뀌어야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많이 변해 이전보다 여성이 높은 지위에 진출하기는 수월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데이케어 센터처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이 구분돼 있지 않다는 인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차별을 받았을 때 여성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겨야 하죠. 이렇게 바꿔 나가려면 실천적인 움직임이 필요해요.”

AICPA를 준비하려는 사람에게

  1.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험을 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자격증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5년을 공부해야 해요. 1년을 더 공부해야 하니 대학원을 들어가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2. 미국에서 회계사 자격증을 받으려면 실무 경험이 있어야 해요. 주마다 조금씩 기준은 다르지만 제가 자격증을 땄던 프린스턴은 회계사 밑에서 4년을 일해야 했어요.
  3. 자격증을 받고 나서도 끝이 아니에요. 계속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격증을 유지할 수 없어요.

 

“여성 승진 기회 적은 한국 피해 미국으로”

아직도 미국 회사 내 총수 대부분은 남자, 그러나 변화는 시작됐다”

▲ 화이자에서 희귀의약품 글로벌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류은주 동문. 제공=류은주 동문

  화이자(Pfizer)에서 희귀의약품 글로벌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류은주(약학·91년졸) 동문은 11년 전 한국 화이자에서 추천받아 본사로 옮겨갔다. 국내 바이오 제약업계 최초였다. 화이자는 미국에서 자산 규모가 10위 안에 드는 제약 회사다. 류씨를 뉴욕에 있는 음식점 반주에서 8월16일 만났다.

  뉴욕 본사에 들어간 류씨는 갑자기 바뀐 환경 탓에 이직 초기 곤혹을 치렀다. 회의에서 말할 타이밍을 못 잡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는 동양인의 특성 때문에 가진 직급보다 낮게 인식되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하던 사소한 습관들도 고칠 대상이었다.

  그는 의견을 내고 싶은데 말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답답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일단 말을 먼저 던지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말할 줄도 알았다. 목소리도 류씨에 비해 컸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끼어드는 미국인의 방식에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한 달 동안 회의에 들어가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고 말해도 목소리가 작아 자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묻혔다.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와 함께 일했던 미국인들은 말이 끝날 것 같으면 바로 치고 들어가 말할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제가 조그만 소리로 말해도 모두가 주목했는데 미국에서는 아니었죠. 아시아 대표로 회의에 앉아있어도 그랬어요.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우울증이 왔어요.”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류씨는 중국계 미국인 멘토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았다. 멘토는 그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생각으로 말하라고 충고했다. 큰 소리로 말을 꺼내 주의를 집중시킨 뒤 말을 이어나가는 방법이었다. 실제 그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이야기해도 미국인들이 평소 말하는 정도 크기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듯 말하자 그제야 회의에서 집중을 받을 수 있었다.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습관도 고쳐야 했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면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주니어 스텝(견습)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류씨는 동료들에게 자신을 정확히 알리기 전까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말라며 멘토에게 경고받기도 했다.

  “미국의 문화가 한국과 달라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누군지 알리기 전까지는 고개 숙여 인사하지 말라는 조언을 따르는 게 맞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누군지 안 이후에는 이 행동이 존중을 나타낸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됐죠.”

  류씨가 본격적으로 직장을 구하던 1990년, 한국 바이오 회사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정규직에서 임시직으로 전환되거나 아예 회사를 나가는 일이 잦았다. 류씨가 처음 들어간 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을 잘한다는 평을 받던 그는 회사로부터 결혼을 해도 정규직을 유지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사장이 직접 결혼한 후에도 회사에 남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내 회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이 어려울 것 같아 외국 회사 이전을 선택했다.

외국 회사는 평판이 중요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거 화이자는 소수자들이나 여자에 대한 지위가 낮은 회사로 손꼽혔다. 회사에 속한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화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위기를 느낀 화이자는 아시아인, 라틴 아메리칸들을 본사로 불러들였다. 여성 직원의 수도 늘렸다. 류씨는 그때 픽업돼 본사에 들어갔다.

  현재 그가 몸담은 부서는 마케팅이다. 마케팅은 경쟁이 치열한 부서기 때문에 총수는 대부분 남자다. 경쟁이 심하거나 거칠다는 인식이 큰 분야는 아직도 여성이 높은 자리까지 진출하기 어렵다.

미국에서조차 아직도 남성에 비해 여성들의 역량이 떨어지지 않는데 비즈니스나 마케팅처럼 남성이 더 잘한다는 편견이 있는 부서가 있다. 반면 비서실장처럼 여자에게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부서도 존재한다.

  류씨는 여성이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남으려면 의사, 변호사처럼 확실한 전문성을 갖추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량이 되는 여성이 있으면 총수 자리를 맡기려는 움직임이 그의 직장에서도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업무강도가 약하거나 특정한 부서에만 여자들을 총수로 뒀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장벽이 많이 무너졌죠. 조금만 지나면 마케팅이나 세일즈 부분에도 여성 총수가 나올 것 같아 기대하고 있어요. 현재 양적으로는 남녀 차별이 많이 줄었지만 중요한건 질적인 부분이에요. 아직까지 여성들은 주로 팀장이나 중간 관리자죠. 수는 비슷해 졌지만 사내 지위 쪽은 많이 싸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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