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감칠맛 나게, ‘외국인 시 낭송대회’열려
한국인보다 더 감칠맛 나게, ‘외국인 시 낭송대회’열려
  • 박현주 기자
  • 승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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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화) 오후2시 이화·삼성 교육문화관에서 조선일보 연중캠페인 ‘책, 함께 읽자’의 일환인 ‘시가 꽃피는 봄날-외국인과 함께 읽는 한국의 시’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 학생들.
“카마득한­ 날에… 밥 하면 두 입술이 황급히 불고 마는, 밥들의 뭉­묵­부­답….” 대만,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중간 중간 심호흡하며 정끝별 시인의 ‘까마득한 날에’를 읽어 내려간다. 읽는 속도는 더디지만, 또렷한 발음은 한국인 못지않다.

조선일보 연중캠페인 ‘책, 함께 읽자’의 일환인 ‘시가 꽃피는 봄날-외국인과 함께 읽는 한국의 시’ 행사가 17일(화) 오후2시 이화·삼성 교육문화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씨가 정끝별 시인(국문·87년 졸)의 시 5편을 낭독하고 나서 외국인 학생들이 시를 낭독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낭독한 시는 모두 정끝별 시인의 작품이었다.

시 낭독에 참여한 프랑스, 대만, 이란, 미국 등 외국인 학생들은 2명 또는 3명이 한 팀을 이뤄 번갈아가며 읽거나, 동시에 낭독했다.

미국인 셀네코빅 줄리 마리씨와 스코틀랜드인 로버트슨 나타샤씨는 ‘세상의 등뼈’를 번갈아가며 낭독했다.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마지막 문장으로 여운을 남긴  그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중국인 김국화, 여계분, 김은희씨는 ‘안녕! 여보’라는 시를 실감나게 읽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안녕! 여보’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시다. 감정을 이입해 읽으니 시가 연극 대사처럼 들린다. “아니, 여보! 대신/안돼, 여보! 대신/상쾌한 단 두 마디… 안녕, 여보!”

프랑스인 까다메주알 씨암씨와 디랄 라일라씨는 ‘와락’이라는 시를 느릿느릿 읽어나갔다. “반-평도 채 못 되는 네 살갗… 영헌의 푸른 불꽃….” ‘영혼’을 ‘영헌’으로 읽는 실수도 했지만, 그들의 차분한 목소리는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디랄 라일라씨는 “아직 한국말을 잘 모르지만,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고 말했다.

대만인 황천화씨와 일본인 이토 마키씨는 ‘까마득한 날에’의 마지막 구절을 특히 힘줘 읽었다. “뜨겁다, 밥!” 장내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외국인 학생들의 시 낭송 후에는 록 밴드 랄라스윗의 공연과 뮤지컬배우 이태원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최우수상은 ‘까마득한 날에’를 감칠맛 나게 읽은 황천화씨와 이토 마키씨가 차지했다. 황천화씨는 “처음엔 시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선생님과 많이 이야기하면서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잘 못한 줄 알았는데 상을 받은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수상을 받은 셀네코빅 줄리 마리씨와 로버트슨 나타샤씨는 “연습할 시간이 일주일 밖에 없어서 매일 연습했다”며 “상을 받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행사의 사회를 맡은 언어교육원 구재희 한국어교육부 학생과장은 “시가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학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시를 잘 이해하고 낭송했다”며 “외국인들이 한국의 시와 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영 언어교육원장은 “이 캠페인을 통해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말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사진: 고민성 기자 minsgo@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