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와 닮은 꼴, 오차노미즈 여대
이화와 닮은 꼴, 오차노미즈 여대
  • 이채현 기자
  • 승인 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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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노미즈여자대학(お茶の水女子大學·오차대)은 1875년, ‘창조적인 지성과 풍부한 감성을 갖춘 주체적인 여성의 육성’을 목표로  출발했다. 그 후 일본 최초의 여자고등학교를 부속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타 그 해 11월, 지금의 오쓰카역 근처로 이전한 뒤, 현재까지 일본에서 최초이자 가장 지적인 국립 여자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이화여대’라고 불리는 오차대를 본지 기자가 탐방했다.


일본 동경 오쓰카역(大塚?)에 내리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해있는 길을 따라 걷는 여학생들이 종종 보인다. 오쓰카역에서 길을 따라 5분 정도 걷자 낡은 육교에 ‘오차노미즈여자대학(お茶の水女子大學)’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작은 라멘집과 카페·고서점 등이 고작인 학교 앞 상업시설은 이대 앞과는 사뭇 다르다. 곧이어 아담한 오차대 교정이 보인다. 동경 시내와 다른 공간에 있는 듯 고요한 분위기, 그것이 130년 넘도록 지속돼 온 오차대만의 특징다.


“오하요고자이마스!” 학생들은 경비에게 그들의 학생증을 보여주며 정문을 지나쳤다. 오차대의 경비는 교내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는데, 외부 남성이 출입하려는 경우에는 더 엄격하게 확인한다. 대신 오차대 교정에 한번 진입한 뒤에는 도서관은 물론 교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일찍 등교한 학생들 대부분은 동아리실로 향했다. 스즈키씨 역시 동경대와 연합 동아리인 테니스부의 일원이다. 오차대에는 상대적으로 남학생 비율이 높은 동경대와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그는 동아리실에서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테니스코트로 향했다. 테니스부는 요즘 대학 별 리그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대학의 동아리들 중 운동부가 가장 활성화돼있기 때문에 그는 발을 넓히기 위해서 테니스부를 찾았다. 처음에 스즈키씨는 테니스부 활동이 그렇게 철저할 줄 몰랐기에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 즐거워졌다. 일본 학생이라면 ‘동아리’란 빼놓을 수 없는 사회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전9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강의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교수와 학생 간 관계가 친밀하고, 피드백이 잦아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이는 오차대의 전체 학생수가 약 2천2백여 명으로 워낙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강의가 소수인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처럼 100명 남짓 수강하는 대형강의도 있고, 인기 강의에는 학생들이 몰리기도 한다. 물론 수강신청 대란은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강의는 신청하는 사람 모두수강할 수 있고, 정원이 다 찬 수업의 경우에는 추첨식으로 신청자를 받아주거나 교수의 재량에 따라 인원수를 조정하곤 한다.


오차대는 여대의 특성을 살린 학과가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특히 역사가 긴 가정대·심리학과가 인기가 높으며, 내년에는 여성학과를 설립할 예정이다. 조규화 교수(의류직물학과) 역시 오차대대학원에서 가정대에 속해있는 피복학(복식미학)·가정학 석사와,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70년대 당시 오차대의 가정대학은 동경대보다 수준이 높았다”며 “특히 오차대는 학위를 쉽게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차대대학원은 1976년에 설립됐지만, 지금까지 756명만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1·2학년 학생들은 보통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쉴 틈 없이 수업을 듣는다. 한국 학생들에게는 낯선 일이지만, 한 학기 당 수강할 수 있는 학점 제한이 없는 일본 대학생에게는 일상이다. 스즈키씨 역시 3학년 때는 취업에만 몰두할 생각으로 강의를 몰아서 듣는 중이다.


아담한 오차대 교정의 강의실은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교환학생 임승연(사회생활·석사3학기)씨 역시 학교가 좁기 때문에 이동이 쉽다는 것을 장점으로 뽑았다. 중앙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언덕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 학교와 달리, 강의동 옆에 바로 도서관이 붙어 있다.


스즈키씨는 제1건물에서 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하면서,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오차대의 마스코트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기도 했다. 교정을 걷는 도중, 외국인 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차대에는 실제로 20개국에서 온 240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재학 중이다. 오차대 총 학생수를 생각하면, 외국인 학생 비율이 약 10%로 적지 않은 수치다.


책에 열중한 중앙도서관의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 학교와 비슷했다. 동그란 책상에 둘러앉아 친구들과 토론을 하거나, 책을 잔뜩 쌓아놓고 과제를 하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소파에 기대서 졸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오차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조규화교수(의류직물학과)는 “오차대 중앙도서관과 연구실의 자료실이 참 좋았다”며 “양보다 질을 택하는 것이 오차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오후12시30분, 오차대 학생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됐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는 공강시간과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식사를 해야 하지만, 일본의 대부분 국립대학은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30분이 되자마자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학생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은 여고시절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음식 가격은 우리 돈으로 3천원∼6천원으로 무난한 편이다.


수업이 끝난 후, 1·2학년 학생들은 동아리실로, 3·4학년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일본 대학생들은 3학년이 될 무렵부터 졸업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교수 한 명과 소수의 학생들이 모여 ‘제미’를 시작한다.


‘제미’란, 독일어 ‘제미나르’의 준말로 우리 학교 신입생이 수강하는 ‘1학년 세미나’와 비슷한 개념이다. 오차대 교환학생 임승연씨는 현재 졸업 논문을 위한 지도교수와의 제미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보다 일본의 졸업논문은 그 중요성이 큰 것 같다”며 교환학생을 마칠 무렵 완성될 졸업 논문을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1년 정도 졸업 논문에 대해서, 혹은 학과의 공부를 좀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면 교수와도 친해질 수 있다. 오차대는 학부 졸업 논문이 통과하기가 어려워 학생과 교수 간 제미 활동이 필수적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제미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늦게까지 남아있던 학생들 몇몇이 정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동아리 회식 모임이나, 아르바이트 활동으로 각자 갈 길이 바쁘다. 손을 흔들며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사요나라!”          
         

글·사진: 이채현 기자 cat0125@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