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에 대한 소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날은 6월 5일. 바로 북경사태가 벌어진 그 날이었다. 아침에 뉴스를 통해 중국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과 그에 따른 유혈사태 소식을 전해 듣고 나온 터라, 중국여행을 제안 받았을 때는 여행에 대한 흥분보다도 과연 갈 수 있을 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원래 출발날짜보다 1주일 연기는 되었어도 30여명으로 구성된 연수단은 상해, 북경, 그리고 심양으로 이어지는 9박10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중국 최대의 상업도시인 상해는 아편전쟁 이후 들어온 영국, 프랑스 등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서양식 건물 구조가 많았으며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동안 당황하기도 하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전거행렬과 개방화 이후 제법 볼 수 있다는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은 상해를 따뜻하고 자유롭게 느끼도록 해 주었다.


  천 역사의 위엄과 전통을 지니고 있는 북경은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중국의 긴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듯 했는데, 이것은 북경거리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 때문이리라. 명에서 청나라에 걸쳐 24대의 황제가 거쳐했던 왕궁, 자금성은 당시 황제의 권력을 그대로 상징하는 듯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있어서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자금성을 보위하며 서있는 것이 바로 천안문이다. 천안문 광장에는 북경사태 이후 주둔하기 시작한 군인과 군데군데 불에 탄 자국, 탱크가 지나간 자국 등이 남아있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역사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했다.


  북경에서 빠뜨릴 수 없었던 곳은 바로 만리장성이었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간최대의 축조물인 만리장성은 6,000km에 달하는 그 크기에서 뿐만 아니라 그 긴 거리에 장성을 쌓아 북방유목민의 침입을 막겠다는 발상부터 다분히 중국적이었다. 그리고 만리장성을 찾는 많은 중국인을 보며, 과거에는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했으나 지금은 경제적 낙후국으로 취급받는 그들에게 있어서 만리장성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방문도시 심양은 중국 안에 위치한 작은 조선 같았다. 대부분의 조선족이 모여 살며 그들만의 독특한 자치구를 이루어가고 있는 심양은 상해 ․ 북경과 달리 우리에게 매우 친근했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족 아주머니들은 남조선, 북조선 가릴것 없이 조선사람 이라면 모두에게 친절했고,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조선은 하나」임을 실감했다.


  중국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때 같이 싸웠다는 이유로 57개 소수민족 중에서 그래도 조선족이 대우를 받는다며 흐뭇해하시던 그분들의 표정 속에서 한민족이 같이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피상적이었다는 반성과 함께 중국에 대한 미련을 남기며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도 다음 연수단은 더 깊이 중국의 현실을 보고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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