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현 사회에는 인문학이 실무와 동떨어져 취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모집 공고에 ‘상경 계열 학사 우대’를 내거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인문학에 애착을 갖고 한 길로 나아가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 있다. 이진민(국문·86년졸) ‘아이소이’ 대표이사를 만났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선영아, 사랑해

약 20년 전 대한민국 광고 시장을 뒤흔들었던 문구들이다. 모두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이진민 대표의 작품이다. 카피라이터와 여성 전용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 부사장을 거쳐 지금의 ‘아이소이’ 대표 자리에 오른 그는 삶의 뿌리를 인문학에 두고 있었다.

이진민 대표가 아이소이 대표 화장품 ‘블레미쉬 케어업 세럼’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이진민 대표가 아이소이 대표 화장품 ‘블레미쉬 케어업 세럼’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1990년대 중반, 통화 품질이 좋은 휴대폰이 적었던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이라는 문구를 고안했다. 삼성 애니콜이 '산이 많은 대한민국 어디서든 통화가 잘 되는 휴대폰'이라는 걸 광고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광고 문구는 1990년대 후반 삼성 애니콜이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마이클럽’ 부사장으로서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 문구를 만들며 ‘마이클럽’을 세상에 알렸다. ‘선영아, 사랑해’로 힘입은 ‘마이클럽’은 당시 ‘네이버’, ‘야후’ 등과 더불어 한국 6대 포털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당시 그는 카피라이터로 바쁘게 일하며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피부 건강이 악화됐다. 이때 지인에게 추천받은 불가리안 로즈 오일 화장품을 직접 사용하며 울긋불긋했던 피부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유해 물질 없는 천연 화장품의 효과를 많은 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그는 직접 천연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아이소이는 ‘나는 똑똑하다(I’m SO Intelligent)’의 약자다. “화장품 성분을 꼼꼼히 고려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쓰는 화장품을 만든다”는 의미다. 그는 “가짜 천연 화장품을 만들면서 돈을 버는 건 나쁜 것”이라며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착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업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었던 건 인문학을 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문학적 사유와 사업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이진민 대표.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자신의 인문학적 사유와 사업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이진민 대표. 안정연 사진기자

 

이 대표를 비롯한 아이소이 직원들은 눈앞에 놓인 회사 실적보다 아이소이가 어떤 사회적 기업이 돼야 하는지에 관심 둔다. 이러한 사내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이 대표는 웃으며 “우리 회사 식구 절반이 인문대생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문이기에 인문학 전공자들은 ‘좋은 삶, 착한 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내린 사람들이에요.”

그는 “어떤 제품을 만들 때 우리 회사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스스로 철학적인 납득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이소이’를 넘어 친환경 순면 생리대 브랜드 ‘소이로움’과 퍼플티 브랜드 ‘티퍼런스’를 시작했다. "생리대와 차를 판매하는 많은 기업이 있는데 왜 우리가 '소이로움'과 '티퍼런스'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납득을 거친 결과다. 이 대표는 “우리가 만든 생리대의 겉과 속 모두 유기농 순면 재질”이라며 “여성에게 안전한 생리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티퍼런스’도 “현대인들이 잠시 일상을 멈추고 편하게 차 한잔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에서 출발했다. “매일을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티퍼런스’에 들러 마음 편한 시간을 갖길 바라요.”

‘티퍼런스’에서 본사 소속 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이진민 대표.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티퍼런스’에서 본사 소속 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이진민 대표. 안정연 사진기자
아이소이에서 선보이는 퍼플티 브랜드 ‘티퍼런스’와 친환경 순면 생리대 ‘소이로움’.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아이소이에서 선보이는 퍼플티 브랜드 ‘티퍼런스’와 친환경 순면 생리대 ‘소이로움’. 안정연 사진기자

 

그는 인문학적 신념을 기반으로 한 종교를 가지며 모든 사람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인문학을 통해 키운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기독교를 믿게 되면서 모두가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회사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러한 가치관이 스며들어 보였다. 그가 인문학을 전공하며 쌓은 삶의 가치관이 직원 친화적인 회사를 만들어냈다. 인문학을 통한 삶의 고민이 지금의 이 대표를 만든 셈이다.

 

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제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화에서 인문학을 배운 게 지금 삶의 토대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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