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취업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문사철은 문학·사학·철학을 일컫는 줄임말이다. 문사철을 비롯한 인문학은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러나 취업 시장으로 시야를 넓히면 사기업에서 인문학적 가치는 경시되고 상경 계열 학사 우대 현상이 팽배한 것을 볼 수 있다. 1668호에서는 사회 속 인문학의 지위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상경 계열 학사를 우대 조건으로 내거는 사기업이 많아지며 인문학 전공생들의 취업 고민이 늘고 있다. 출처=이대학보DB
상경 계열 학사를 우대 조건으로 내거는 사기업이 많아지며 인문학 전공생들의 취업 고민이 늘고 있다. 출처=이대학보DB

대학생과 취업 고민은 늘 함께하는 존재다. 9월13일 기준, 취업·채용 정보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job.incruit.com)’에서 구인 중인 문과 계열 기업은 1397개다. 그중 인문 계열 전공자를 우대하는 회사는 331개, 상경 계열 전공자를 우대하는 회사는 769개다. 기업에서 상경 계열 전공자 우대 경향이 늘어남에 따라 인문과학대학(인문대) 학생들의 취업 고민이 늘고 있다.

 

인문학보다 경영학

본교 교무처 학적팀에 따르면, 본교에서 복수전공 이수 학생들이 가장 많은 단과대는 인문대다. 2023년 1학기 기준, 인문대 전체 학생의 66.87%가 복수전공을 이수하고 있다. 인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복수전공을 하는 전공은 경영학과다. 양선윤(국문·22)씨는 “문과 계열 사기업인 경우에 상경 계열 학사가 필수인 곳이 많다고 알고 있다”며 “경영학과를 복수전공 하면 취업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세연(영문·22)씨도 “인문학 전공만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실용 학문인 경영학과를 복수전공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대생의 복수전공은 학문적 호기심보다 취업을 위한 전략에 가까워 보인다. 이하연(독문·22)씨는 “학문적 호기심으로 경영학과를 복수전공 하고 있지 않다”며 “취업 폭을 넓히고자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인문학보다 실무에서 자주 쓰이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게 취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경영 복수전공은 하나의 취업 전략

양씨는 경영학과 복수전공과 더불어 공인어학 시험 준비, 학회, 공모전 등의 활동을 통해 취업을 준비한다. 그는 “(사기업에서) 인문학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인문학 전공생들이 주전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다”며 “인문학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학문’이라는 것은 깨쳤지만 취업 시장에서는 인문학적 가치가 경시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황씨는 경영학과 복수전공과 봉사 활동, ◆해커톤, 동아리 활동, 부전공 등을 병행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2학년이 되며 주변 사람의 취업 고민을 많이 듣게 돼 덩달아 취업 걱정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씨는 “인문학이 실무와 동떨어진다는 사회 인식으로 인해 오히려 인문학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이씨도 경영학과 복수전공과 더불어 학교 홍보대사 활동, 공인어학 시험 준비, 교내·외 진로 탐색 활동, 부전공 등을 통해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부·복수전공에서 배우 는 실용적 내용이 주전공의 추상적 내용과 많이 비교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처음부터 인문학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1학년 시절, 인문학을 기반으로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그는 시간이 지나며 걱정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학이 실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졌어요.”

 

상경 계열 우대 현상,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나

윤정구 교수(경영학부)는 “기업이 상경 계열 학생과 인문 계열 학생 중 한 명만 뽑아야 한다면 기업 언어에 익숙한 상경 계열 학생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경영학적 사고에 능숙하지 않은 학생을 지도해 가면서 인재를 양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경영학과 복수전공 수요가 많은 것에 대해 “경영학과를 복수전공 하면 경영학적 소통 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인문 계열 학생이 인문학적 소양과 결합해 경영학적 소통이 가능하다면 회사 지원에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경 계열을 복수전공 한 인문대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은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 관리를 연구하는 한국노동연구원 오진욱 박사는 상경 계열 학사 우대 현상을 “기업 입장에서 채용의 효율, 교육비 절감, 빠른 업무 배치를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상경 계열 우대 조건을 내세우면 타 전공 졸업생이 지원하는 경우가 줄어 서류 심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 박사는 “상경 계열 졸업생들은 <경영학원론>, <회계원론>에서 다루는 경영 기초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경 계열 전공자를 뽑는 게 회사 경영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실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지원자를 고려하다 보니 상경 계열 우대 조건을 내세우게 됐다. 상경 계열 학사를 비롯한 실용 학문을 중시하는 기업 흐름에 발 맞춰 인문학 전공생들도 그 추세에 올라타고 있다. 인문학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학문’이라는 인식은 현 취업 시장에서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해커톤: 제한 시간 내 주어진 주제에 걸맞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공모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