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삶의 의미는 알 수 있다.

타인의 마음속 멍을 치유해주고 싶은 박은미 교수(철학 박사·07년졸)가 말했다. 그는 철학을 공부하며 ‘진짜 나’를 만났다. 그는 20년 간 강단에서 철학 강의를 하며 ‘좋은 생각을 하는 법’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현재 교편에서 물러나 철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살아가고 있다. 일반인과 철학 사이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박 교수는 6월 ‘아주 일상적인 철학’을 발간했다. 철학 교수로서 20년 간 ‘좋은 생각을 하는 법’을 탐구한 내용을 담았다. 본지는 8월24일 박 교수가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던 건국대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몸담았던 건국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집필한 책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박은미 교수.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몸담았던 건국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집필한 책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박은미 교수. 안정연 사진기자

 

그가 간 곳에 철학이 있었다

“살아간다는 건 죽어가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그가 같은 반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박 교수는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처음으로 깊은 철학적 사고를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이후 늘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상업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은 박 교수를 향한 비판 어린 시선에 차마 철학을 전공할 수 없었다. 또한 당시 그에게 “스무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철학을 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철학을 못 한다면 사회를 유효하게 바꿀 실용 학문을 하고 싶었던 박 교수는 행정학을 택했다. 철학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행정학을 전공하며 행정 철학에 흥미를 느꼈다.

1990년대 초, 행정학과를 졸업하면 취업이 잘 된다고 일컫던 시절이었다. 박 교수의 가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철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학점도 괜찮아서 취직도 잘 될 테니 철학 석사 과정은 잘 생각해야 한다”는 대학원 지도교수의 말에 그는 “한 학기 등록금 벌어 한 학기를 다니더라도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박 교수 정도의 패기라면 충분히 철학을 공부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지도교수는 그의 대학원 진학에 찬성했다. 

박 교수는 대학원 진학 후 금전적 여유가 되는 사람들만 대학원에 오는 것을 보고 한국 사회가 “중산층 이상만 지식을 향유하는 사회”라는 걸 깨달았다. 한정된 계급만을 위한 지식 생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낀 그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철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웠다.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보다는 삶과 맞닿은 철학을 하겠다는 그의 가치관은 여기서 출발했다. 

활짝 웃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박은미 교수.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활짝 웃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박은미 교수. 안정연 사진기자

철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종종 외부 강연 제안을 받았다. 강연을 나가 철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많은 관중을 만났고 그 속에서 보람을 느꼈다. 당시 박 교수는 ‘교수와 철학 커뮤니케이터, 둘 중 어느 것이 더 잘 맞는 직업일지’ 고민에 빠졌고 결국 철학 커뮤니케이터를 택했다. “대학 강의는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은데 일반 대중에게 쉬운 말로 철학을 가르쳐주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본격적인 철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걷게 됐고 ‘철학과 일반인 사이 다리를 놓는 존재’로 살아가게 됐다. 

 

합리적 사회는 합리적 사고에서

그는 학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며 “합리적인 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합리적 사고에서 나온다”고 결론 내렸다. 또 합리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철학은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불나방은 뜨거운 전등에 자기가 다칠 줄도 모르고 바글바글 모여들죠.” 박 교수는 현대인들이 경쟁 피라미드에 본인들이 소모될 줄 모르고 달려드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성공이 무엇인지 재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과정이 만족스럽다면 결과가 어떻든 행복하다고 여긴다. 과정이 힘겨웠는데 결과만 좋다고 행복한 삶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은미 교수가 저서 '아주 일상적인 철학'을 집필하면서 얻은 철학적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박은미 교수가 저서 '아주 일상적인 철학'을 집필하면서 얻은 철학적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그는 합리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해 “내 의견만 맞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가 타당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가 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감정 상할 일이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모든 이가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토대로 신간 출판을 준비 중이다. 모든 사람의 나다움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합리적 사회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철학과 대중 사이 다리가 되어

대중의 합리적 사고를 돕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는 박 교수는 철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책도 출판하고 강연도 진행한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일상을 위한 철학’은 2023년 5월~9월 전체 부문 구독자 수 1위를 기록했다. 박 교수는 그의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다는 독자를 떠올렸다. 박 교수는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이 책밖에 없어서 잘 때 옆에 두고 잔다”는 독자의 말에 철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보람을 느꼈다.

박은미 교수의 저서, ‘아주 일상적인 철학’.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박은미 교수의 저서, ‘아주 일상적인 철학’. 안정연 사진기자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사상이라는 그물로 엮는 철학자는 행복하다.”

박 교수는 20대 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수필집 속 문장을 언급했다. 이 문장은 철학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그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행복을 위해 철학을 하고 싶었던 마음을 헤르만 헤세가 언어화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내가 내 삶을 결정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인간은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철학을 공부하며 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치열한 고민을 거쳤다. 박 교수는 자신의 삶을 '철학과 대중 사이를 잇는 철학 커뮤니케이터'로 정의했다.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결정한 그의 미소에선 행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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