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

세상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춘이라고 일컫는 나이에 저마다 삶의 새싹을 틔워낸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 아니었을까. 나에겐,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핑크빛 꽃가루가 휘날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설렌다.

청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였을까. 중학생이었던 내 마음속에 드라마 ‘청춘시대(2016)’가 들어왔다. 여대생 다섯 명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딱 한 명의 주인공 없이 다섯 명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라는 가치관을 갖고 살아온 나에게 ‘청춘시대’는 참 매력적이었다. 조금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중학생 때부터 ‘대학 가면 학보사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것도 극 중 주인공 ‘지원’이 학보사 기자로 등장한 덕분이다. 당시 까마득한 언니였던 ‘지원’과 어느새 동년배가 된 지금의 나는, 학보사 기자로 두 학기째 일하고 있다.

막연히 좋은 학벌을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서 어떤 걸 배우고, 느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 나에게 ‘청춘시대’는 삶의 지표가 됐다. 파스텔 톤으로 청춘을 물들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근데 막상 겪어보니 청춘을 예쁘게 물들이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더라.

청춘의 시작인 십 대 후반, 세상 모든 고등학생이 그러하듯 대입 걱정 때문에 청춘을 맘껏 즐겨내진 못했다. 성적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았던 낙천적인 나에게도 고등학생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친구들과 많이 웃고, 가족들과 자주 여행 다니고, 그 시절 영혼의 단짝이었던 마라탕을 매일같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의 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상상이 안 됐다. 이십 대의 청춘이 늘 반짝이길 원해서였을까. 그때 난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학종병(학생부종합전형 병)’에 걸리기도 했다.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어떤 일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했다. 일을 사서 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나 보다.

그렇게 일을 사서 했더니, 감사하게도 이대에 오게 됐다. 나의 청춘시대를 이화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었다. 가족만큼 소중한 학보사 109기 동기들과 선후배 기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 스스로 ‘청춘둥이들’이라고 명명한 사랑스러운 과 동기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학생으로서의 나를 정의해 주고, 내가 청춘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가슴 벅차게 예쁜 캠퍼스, 젊음의 활기가 느껴지는 신촌, 눈물겹도록 찬란한 서울 야경. 모두 내 청춘시대 속 한 장면이다. 매번 ‘이곳에서 내 이십 대를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느낀다. 청춘으로서 무엇인가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어서 가끔은 멍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득 작년 가을이 떠오른다. 밤 11시까지 밥도 못 먹은 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지친 마음으로 쌀국수를 배달시켰는데, 쌀국수가 다 엎질러져서 왔다. 평소 같으면 다시 주문하든 했겠지만, 그날은 그렇게 배달 온 쌀국수를 보자마자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밥도 못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혼자 몇십 분을 울다가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근데 쌀국수가 엎질러진 채 배달 왔다는 걸로 우는 내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가 창피했다. 그래서 한밤중에 엄마에게 전화 걸었다. “엄마,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 쌀국수 시켰는데 배달이 다 엎질러져서 왔어”라고 말하며 대성통곡했다. 엄마도 같이 울면서 나를 진정시켜주고 겨우 전화를 끊었지만 난 그날 새벽, 혼자 방에서 두 시간을 울었다. 내가 생각한 스무 살의 청춘과 당시 내 모습의 괴리가 커서 그랬나.

그날 이후 깨달았다. 청춘을 물들이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의 청춘시대는 그날부터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찬란하고 반짝이는 청춘만을 좇던 나는 ‘슬프고 아픈 청춘의 날’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무리 공허하더라도 무의미한 경험은 없다’는 걸 배웠다. 허탈함과 외로움을 마음속에서 잘 소화할 줄 아는 청춘으로 성장했다. 소설가 민태원은 수필 ‘청춘예찬(1929)’에서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표현한다. 이 황금시대를 거치며 어떤 열매를 맺어낼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저마다의 열매를 맺으려 새싹을 틔우는 청춘들이여, 비바람과 추위를 잘 견뎌내는 튼튼한 나무가 되자. 그렇다고 청춘을 꼭 치열하게 살아낼 필요는 없다. 잘 쉬는 것도, 고뇌하는 것도 모두 청춘의 과정이다. 각자의 청춘시대를 살아내자.

늘 그랬듯, 오늘도 우리의 청춘시대는 쓰이고 있다. 나의 청춘시대가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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