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지난 2월,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에서 가재 요리를 먹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설날을 보냈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겪어본 미국이라 가기 전 여러 걱정이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미국인들 사이에 껴서 주눅 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랜 기간 날 감쌌던 걱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미국의 자유로움이 이방인 신분의 나를 반겼다.

이름만 들어도 족히 그 유명세를 알 만한 대학들의 캠퍼스도 방문했다. 학생 모두가 저마다의 스타일을 고수한 채 자유롭게 캠퍼스를 거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나무 아래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학생, 환경보호 캠페인 벼룩시장을 열며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건네는 학생, 캠퍼스 중앙에 놓인 피아노로 경쾌한 곡을 연주하며 수많은 학생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학생, 노래를 부르며 반려견과 함께 캠퍼스를 산책하는 학생.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대학을 입학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지고, 곧바로 취직하기 위해 학부 시절을 정신없이 보내는 한국 대학의 딱딱한 분위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모습뿐 아니라, 인터뷰 차원에서 만난 학교별 관계자들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학생들 개개인의 자유는 존중하나 서로에게 피해는 주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것. 겉으로 보기엔 저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하나로 뭉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 대학생들도 교내 제도하에 ‘정제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곳에는 대학생들을 위한 복지, 심리 상담, 권리 보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부서와 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순간 기자로서, 또 한국 대학생으로서 자연스레 한국 대학의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른 한국 대학의 모습은 전공 지식으로 가득 찬 강의와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커리큘럼이 탄탄히 마련돼 있는 곳. 학생들이 원하는 꿈을 이뤄 본격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학교는 본디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기에 이러한 모습은 충분히 그 본분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대학에서 오직 전공 지식, 취업 정보에 관한 교육만 받길 원할까.

나이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다른 방식의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 한국 대학도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 외의 다양한 교육을 갖추고 있다. 캠퍼스 내 상담센터, 인권 관련 부서 등을 두며 학생들의 행복한 대학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법으로써 대학생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

반면 미국은 각 주의 연방법(federal law)에 따라 대부분 대학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괴롭힘, 따돌림 등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구제책’을 둔다.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지만, 학교라는 단체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어른들의 따뜻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새삼 감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한국도 미국처럼 학생들을 위한 보호 제도는 철저히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대학생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초중고 학생들은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법을 통해 괴롭힘 없는 학교생활을 보장받고, 직장인들도 근로기준법 아래 따돌림 없는 직장 생활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대학생의 평화로운 대학 생활을 위한 제도적 보호는 없다.

당연하게도, 인종 다양성이 매우 높고 교내 다양한 문화가 병존하는 미국 대학과 그렇지 않은 한국 대학을 무작정 비교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한국 대학은 오직 하나의 문화, 하나의 인종만 존재하는가?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전혀 그렇지 않다. 2023년 기준 대학알리미 정보공시에 게재된 우리대학 외국인 학생은 총 1417명이다. 2023년 10월 기준 우리대학 학부생의 수가 1만4324명이라는 것과 비교했을 때, 우리대학 재학생 약 10명 중 1명은 외국인 학생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겐 10명 중 1명이 사소한 숫자일 수 있지만, 외국인 학생 전용 기숙사와 그들을 위한 다양한 동아리, 프로그램이 견고히 마련돼 있는 우리대학은 그만큼 다문화가 존중되는 곳이다. 몇십 년 전 우리나라처럼 ‘다름’을 신기하게 여기는 문화는 더 이상 우리대학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생은 성인이니 그들 스스로 힘겨운 일들을 떨쳐내야 한다는 것, 대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은 오직 전공 지식으로 가득 찬 강의라는 것, 대학은 사회로 나가기 전 학생들이 거치는 관문일 뿐이라는 것. 적어도, 대학에 머무는 동안 학생들은 그에 합당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엄연한 성인이 된 대학생에게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건 좋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과도한 자유를 부여하면 방임이 되듯, 한국 대학생들도 보호와 함께 '정제된 자유'를 누리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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