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컨택트(2017)

출처=영화 스틸컷
출처=영화 스틸컷

어느 날 세계 각지에 외계 비행물체 ‘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미국의 언어학자 루이스는 정부의 요청으로 헵타포드(외계에서 온 생물체, “일곱 개의 다리”라는 뜻으로 영화 내 인물이 외계인을 부르는 명칭)가 왜 지구에 왔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쉘에서 만난 물리학자 이안과 웨버 대령, 그리고 각 나라의 연구진들과 힘을 합쳐 헵타포드와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곳곳에 방해하는 이들이 산재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끝까지 외계 존재와의 소통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루이스와 헵타포드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초반부는 마치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을 맞닥뜨리는 호러물처럼 보인다. 미지의 외계 존재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영화 속 인물과 루이스를 통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대신 헵타포드의 언어와 몸짓, 그 형성에 압도되고 만다. 이 지점에서 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활자로만 표현됐던 표의문자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영화의 탁월한 연출이 돋보인다.  

표의문자는 말 그대로 음성이 아닌 시각적 이미지 언어이다. 지구의 언어는 말하면서 시간이 발생하기에 순차성을 가진 선형적 언어지만, 그에 비해 헵타포드 언어는 한 번의 이미지로 모든 의미를 함축하는 소통 방식이며 그렇기에 시제를 갖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나뉘어 있지 않은 동시-언어인 셈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 헵타포드의 언어에 시제성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그들이 미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떻게 행동할지 기억할 수 있기에 오로지 현재에서 미래의 기억을 수행하는 방식. 즉, 현실화를 위한 발화로써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를 루이스는 해석 과정에서 체득하게 되고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으로 딸과 접촉한다. 그의 회상인 줄 알았던 딸 한나는 미래에 자신이 낳게 될 딸이었음을, 관객은 결말의 반전을 통해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이 능력을 통해 현재의 난관을 미래의 기억으로 해결하고 전쟁을 멈추는 것에 성공한다. 

딸이 가까운 앞날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이안과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를 결심한다. 딸을 낳고, 같이 살아가고, 딸의 죽음을 목도하기로 결심하는 태도는 불가해한 숭고함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루이스와 같은 경로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루이스나 헵타포드처럼 미래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딱 하나 절대적으로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 현재를 살아간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래를 바꾸지 않고 기꺼이 딸을 사랑하는 루이스처럼. 루이스는 기억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네 삶 너머에도 네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시간은 서로 유기적이지만 시작점 혹은 결승선이 존재 하지 않는다. 누구도 시간의 끝을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시간을 관통하고 있을 뿐, 지금 내가 이 시간을 떠났다 해도 삶에 남아있던 순간은 그곳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온전히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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