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업(2009)

출처=다음 영화
출처=다음 영화

 

‘업’(2009)은 모험을 좋아하던 소년 ‘칼(에드워드 애스너)’과 소녀 ‘엘리(엘리닥터)’가 만나 인생이라는 모험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칼’은 ‘엘리’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흘려보내며 꿈을 미루고 미루다 이루지 못한 채 ‘엘리’를 먼저 하늘로 보내게 된다. 혼자 남겨진 ‘칼’은 ‘엘리’와의 과거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평생이 담긴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칼’은 ‘엘리’와도 같은 집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요양원으로 들어가기 직전 수많은 풍선에 집을 매달아 집 전체를 ‘엘리’가 꿈꾸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져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업’(2009)은 이전에 목표하던 바를 실패함으로써 완성되는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한다. 이런 스토리 진행은 로드 무비와도 흡사하다. 로드무비는 인생의 최종적인 의미가 인물들이 걸어가는 그 길 끝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인물들도 그 길 끝에 주어질 유토피아를 맹신한다. 하지만 결국 길 끝에 주어진 것, 즉 인생을 걸고 모험할 만큼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길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좌절되며 인물들은 길을 걸으며 얻은 많은 이야기와 사람 그리고 새로운 꿈들의 시작을 만나며 진정한 삶은 길 끝이 아닌 길 ‘위’에 있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업’(2009) 또한 그렇다. 영화 중반부, ‘칼’은 모험 끝을 향해 쉼 없이 달리며 남아메리카에서 만난 새 ‘케빈’이 과거 최고의 모험가이자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찰스 먼츠’에게 잡혀가는 것을 외면한다. 그리고 끝내 파라다이스 폭포에 집과 함께 도착하며 꿈을 이뤄낸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성취 속에서 ‘칼’은 공허함과 함께 모험의 결말이 어딘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그런 ‘칼’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다시 ‘엘리’가 써 내려간 ‘나의 모험 책’을 한 장씩 넘기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중 끝내 채워지지 못했다고 여겨 펼쳐보지 못했던 책 속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이미 많은 사진이 채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엘리’가 마지막 장에 남겨둔 단 한 줄(“당신과의 모험 고마웠어요. 이제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요!”)을 보며 떠난 ‘엘리’에게 있어 모험은 가보지 못해 아쉬운 미지의 세계 속이 아닌 ‘칼’과 함께한 모든 순간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칼’은 꿈 그 끝에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이 좇은 꿈은 이미 사라지고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 새로운 꿈들이 피어났음을 깨닫고 다시 ‘케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묶어두던 꿈을 과거로 흘려보내기로 한다. 자신을 지탱해 오던 추억을 무너뜨리고 무엇 하나 쉽게 바꾸지 못하던 집 안에 남은 ‘엘리’의 흔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버린다. 그렇게 칼’의 내면과 같이 폐허가 된 집은 이제 새로운 모험을 채울 준비를 마치고 과거, 추억, 후회 그 무엇에도 짓눌리지 않은 채 새로운 모험을 향해 가뿐히 상승(up)한다. 그렇게 ‘엘리’와의 모험을 과거로 보내고 새로운 꿈을 시작한‘칼’의 얼굴은 설렘으로 가득한 채 삶을 향하고 있다.

‘업’(2009)의 마지막 장면, 파라다이스 폭포에는 칼이 흘려보냈던 집이 ‘엘리’와 ‘칼’이 그리던 모습 그대로 놓여있다.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과거를 흘려보내는 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통해 ‘칼’이 놓음으로써 이루어진 꿈을 보여주며 수천 개의 풍선처럼 터무니없지만 선명한 꿈을 가져본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위로와 함께 우리가 꿨던 꿈들이 가닿아 있을 그 어딘가를 상상하게 만들며 스크린 앞을 떠나는 모든 이들의 손에 기꺼이 놓쳐도 좋을 알록달록한 풍선을 묶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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