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즈메의 문단속(2023)

출처=영화 스틸컷
출처=영화 스틸컷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 흥행 중이다. 뛰어난 영상미와 인상적인 OST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결말까지 영화의 잔상은 관객들에게 꽤 오래 남을 것이다.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2017)과 ‘날씨의 아이’(2019)가 각각 운석과 장마라는 재난이 주요 소재였던 것처럼 이번 영화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전작들은 가상의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일본 극장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상영할 때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울면서 뛰쳐나온 관객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대지진의 상흔을 담은 이 영화는 여는 문이 아닌 ‘닫는 문’에 초점을 둔다.

‘스즈메의 문단속’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규슈에 살고 있는 여고생 ‘스즈메’는 폐허 안의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소타는 대형 지진을 유발하는 ‘미미즈’라는 기운이 문을 통해 저승에서 이승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막는 가업을 이어왔다. 이후 의자로 변신하는 저주에 걸린 소타 대신 스즈메가 미미즈를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일본 각지의 문을 닫기 위한 여정에 떠난다.

이렇듯 소타와 스즈메는 일본 재난을 막기 위한 대의를 함께 한다. 특히 그들이 문을 닫는 장면에 주목해보자. 문을 닫을 때 이러한 주문을 외친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오랫동안 배령 받은 산과 하천이여 경외하고 경외하오며 삼가 돌려드리옵니다.” 특히 이 주문을 외칠 때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소소했던 일상을 상상한다. 지루한 학교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들,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배웅하는 가족들, 집밥을 먹기 전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 등. 떠올리는 장면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이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이 가장 그리던 것이었을 테다. 재난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대중들에게 잊혀 간다. 그렇게 문은 폐허 속에 홀로 남게 된다. 피해자들의 슬픔의 문은 닫아도 닫아도 문득 열릴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문을 닫아주는 것은 그들 마음의 문을 잘 닫아주고, 애도하며 위로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재난으로 인해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은 그저 과거에 발생했던 재난일 뿐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아직도 선명한 현재의 상처다.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10·29 이태원 참사, 4·16 세월호 참사 등 가슴 아픈 한국의 이재민에게도 ‘한(恨)의 문’은 마음 속에 숨겨져 있다. 영화 속 사람들이 마을에 문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며 관심이 없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잊은 채 일상을 살아가지 않는가. 어느 날에는 애써 눌러둔 피해자들의 울화통이 치밀어올라 잠잠히 닫혀있던 슬픔의 문이 덜컥 열려버리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피해자들을 가끔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문을 닫아줄 수 있다.

일본 각지의 문을 닫는 여정에는 스즈메 혼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스즈메에게 숙식과 옷가지, 이동 수단 등을 기꺼이 내어준 사람들이 존재했다. 만약 이러한 조력자들이 없었더라면 스즈메가 문을 다 닫는 일을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재난을 막을 수 있던 이유에는 연고 없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듯 상처의 회복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임무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심연에도 이러한 ‘문’이 존재할 것이다.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갖가지 재난이 밀려온다. 슬픔의 문이 문득 열릴 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 영웅처럼 그 문을 닫으러 세상 어딘가에서 달려오고 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향한 우리의 용기 있는 관심과 기억은 누군가의 인생을 찬란하게 바꿔줄 수 있다. 타인의 마음의 ‘문’에 관심을 가져보자. 누군가의 문이 열려 슬픔이 밖으로 나와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알아채 보자. 거창한 것은 없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관심이면 문을 닫아주기에 충분하다.

키워드

#방구석E열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