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완화되고 한껏 움츠러들어 있던 관광 산업에 봄이 찾아오면서 그동안 미뤄둔 여행을 하러 떠나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일본에서부터 저 먼 유럽까지, 다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을 뜬다. 나는 여전히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에 한국을 떠나 4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때문인지 유명 관광지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동양인을 자주 만나기도 어려웠다. 외국에 나가면 특유의 현지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 싶어하는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TV 프로그램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부터 ‘뭉뜬리턴즈’, 그리고 ‘지구마불’까지. 다들 온갖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혈안이 된 것만 같다.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김에 나도 그 트렌드에 올라타 보려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만족스러웠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여행지, 남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남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치안에 대한 문제다. 물론 유럽 여행도 수많은 소매치기에 둘러싸이는 경우가 많지만, 남미의 일반적인 범죄는 단순히 소지품만을 뺏기는 식의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소매치기는 물론이고 총과 칼을 지닌 강도가 도처에 널려 있으며 그런 살얼음 같은 분위기가 일상이라는 점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나 또한 남미로 여행을 가기 전 치안 문제에 있어 무척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저런 사건·사고에 대한 글을 읽으며 목숨을 걸고서까지 남미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직접 다녀온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으슥하거나 위험한 곳을 홀로 다니지 않고 관광지 위주로만 다니면 오히려 미국보다도 안전한 느낌이다. 네이버 카페를 이용하면 남미를 여행 중이거나 여행을 마친 사람들의 수많은 후기가 올라와 있는데, 그곳에서 현재 위험한 곳과 안전한 곳을 쉽게 골라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고 안전하게 다니기만 하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치안 문제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미에 가고자 했던 건 거대한 자연 속을 거닐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특히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은 내 평생의 꿈이었다. 다들 어렸을 때 온통 하얗고 투명한 소금밭에 파란 하늘이 투영된 모습을 영상으로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때부터 우유니 사막의 모습을 그리며 이유 모를 향수를 느꼈더랬다. 우유니는 비가 와서 땅이 온통 물에 잠긴 우기에 가야 완전한 투영을 볼 수 있지만, 물이 군데군데 찰박거리는 건기에 갔을 때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밤이 되면 저 멀리 지평선이 지구를 반으로 갈라 절반에는 별을, 나머지 절반에는 그 별의 빛을 수놓는다. 운이 좋으면 까만 하늘에 하얗게 박힌 은하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플라네타리움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하지만 남미에는 단지 우유니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콰도르로 가 보자.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한 곳이며 여전히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섬인 갈라파고스가 있다. 갈라파고스의 바다에는 사람 대여섯 명은 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만타레이가 있으며 때를 잘 맞추면 희귀한 망치상어 떼와 함께 수영할 수도 있다. 푸르른 심해 속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을 갖추고 유영하는 수중생물들을 마주하는 건 숨이 막힐 만큼 경이로운 경험이다. 에콰도르와 붙어 있어 육로로도 넘어갈 수 있는 페루는 남미의 꽃이다. 남미의 전통적인 풍경이 곳곳에 남아있으면서 유럽 건축물의 고풍스러움도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그런 조화로운 도시를 조금만 나가면 해발 5,000m의 무지개산 비니쿤카부터 에메랄드빛 69호수까지, 미친 듯이 아름다운 대자연이 나타난다. 그뿐이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도, 아담하니 복슬복슬해서 귀여운 알파카들도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는 남미 대륙의 4분의1을 차지하는 파타고니아 국립공원이 있다.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협곡과 암석들, 그리고 빙하까지 두르는 길을 두 다리로 힘차게 내딛는 파타고니아 트래킹 코스는 평소에 트래킹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필수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겠지만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로 멋진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빙하 호수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레이 빙하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에서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삶의 여유에 대해서 곱씹어 봐도 좋다. 아르헨티나는 또 어떤가.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에서 등대와 펭귄을 만나고, 파타고니아 로고의 주인공인 피츠로이 설산을 올라 도전 의식을 불태운다. 격렬한 운동으로 온몸이 피로하다면 탱고의 고장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렴한 스테이크와 함께 공연을 즐기는 평온한 삶을 느껴보자.

남미 여행은 고산병과 치안 문제만 신경 쓰면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어 갈 만한 아름다움이 있고, 나는 한 번 사는 삶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밤새도록 빛을 번쩍이는 대도시나 화려하고 북적이는 관광지를 벗어나 조용하고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모쪼록 다들 남미의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남미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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