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총학생회(총학)가 또다시 공석이 됐다. 제55대 총학 선거의 ‘New:ha(뉴화)’ 선거운동본부(선본)가 경고 조치 3회 누적으로 후보 자격이 박탈돼 선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화의 공식적인 학생 대표 기구가 3년째 없는 상황, 1659호에서는 총학 부재의 원인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영향을 알아봤다.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파악하고 총학의 빈자리에 따른 하위 학생자치 기구들의 업무 부담을 들어봤다. 더불어 긴 비대위 체제 이후 총학을 설립한 타 대학의 사례를 분석했다.

 

학교 다니면서 총학생회가 있었던 적이 없어서

빈자리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예린(사이버·21)씨는 입학 이후로 총학을 접해본 적이 없다. 2020년 활동한 제52대 총학 ‘Emotion’(이모션)을 마지막으로 3년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례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비대위 체제에 김씨처럼 총학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들이 대다수다. 

학생문화관의 총학생회실은 2020년부터 3년간 공실이다. 총학생회의 공석을 비상대책위원회가 대신하고 있지만 학생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학생문화관의 총학생회실은 2020년부터 3년간 공실이다. 총학생회의 공석을 비상대책위원회가 대신하고 있지만 학생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권아영 사진기자

 

계속되는 선거 무산, 3년째 총학 빈자리

총학 부재는 2020년부터 시작됐다. 2020년 제53대 ‘E!NERGY’(이너지) 선본을 시작으로 2021년 '울림'과 '이음' 선본, 2022년 ‘New:ha’(뉴화) 선본이 출마한 선거가 연이어 무산됐다.

11월30일 이너지 선본이 특정 정당에 소속됐다는 자보에 대한 반박문을 게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 이너지 선본이 자보를 붙인 것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행세칙(시행세칙)에 정해진 기간 외의 선거운동이라고 판단해 경고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경고문이 투표가 종료된 오후7시 이후에 게시돼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이의 제기가 있었고, 선관위가 이를 받아들여 선거가 무산됐다.

이에 이너지 선본은 법원에 선거 무효화와 재선거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선거 무산을 무효로 하는 판결이 내려져 당선이 인정됐다. 하지만 총학생회장 당선인이 휴학을 신청하며 또다시 총학 건설이 무산됐다. 시행세칙에 따르면 재학생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53대 총학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보궐선거가 열렸지만, 출마자가 없어 무산됐다.

2021년 제54대 총학을 건설하기 위해 다시 선거가 시작됐다. 울림 선본이 단일 후보로 출마했지만 선거 선전물 제출 기한 미준수 등 시행세칙을 어겼다. 이에 선관위로부터 경고 조치 누적 3회를 받으며 선거가 무효가 됐다.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에 울림 선본이 이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마했지만 득표율이 과반을 넘지 못해 낙선했다. 2021년에도 비대위가 총학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2022년에는 제55대 총학 선거가 진행됐지만 2021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출마한 뉴화 선본은 선전물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시행세칙을 위반했다. 경고 조치 누적 3회로 선거는 무효가 됐다. 사라진 55대 총학을 다시 세우기 위한 보궐선거는 올해 5월 중에 치러진다.

이러한 상황 속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떨어졌다. ‘2022년 본교 학부 재학생 만족도 결과'에 따르면 ‘총학생회’(비상대책위원회)의 만족도가 66.5%로 학생자치활동의 세부 항목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1년 대비 만족도는 4.2% 하락해 세부 항목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총학 없어 반복되는 악순환

학생 자치의 위기는 코로나19와 맞물려 심화했다. 비대면 수업이 지속되다 보니 학생들은 총학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김지애(식품·21)씨는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왜 총학이 필요한지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무관심은 투표율에서도 드러났다. 2020년에 치러진 제53대 총학 선거의 투표율은 약 51.9%로 2019년에 치러진 제52대 선거보다 약 10%p 낮았다. 비대면 학교생활로 인해 총학의 존재를 크게 느낄 수 없었고, 이것이 학생자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번 시작된 총학의 부재는 끊임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류태경(경영·20)씨는 “보통 총학생회 집행부에서 활동하다 보면 학생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며 “집행부 자체가 없다 보니 뜬금없이 총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이 없으니 총학 사업을 집행하는 집행부도 없다. 총학 업무를 경험해 본 학생들이 사라지고, 총학 후보로 나오는 학생들 또한 자연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3년째 총학이 부재한 현 상황이 ‘학생 자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김다혜(철학·19)씨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학생들이 학생 자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영(커미·20)씨는 “가장 큰 원인은 관심 부족이지만 청년들의 정치적 행동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배경도 있다”고 말했다. 

 

총학 부재, 학생 권리에는 어떤 영향이? 

학생을 대표하는 자치기구의 부재는 결국 학생 권리 보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제54대 비상대책위원장(비대위장)을 역임한 류씨는 학생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대학 본부와의 면담이나 각종 회의에서 학생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흩어져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학교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실현하는 자치기구가 바로 총학이다. 

총학생회장 및 부총학생회장 자리가 모두 빌 경우에는 보궐선거 전까지 총학의 직무를 비대위가 대행한다. 총학이 없는 3년 동안 총학의 업무는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와 비대위로 이관됐다. 중운위는 총학의 사무 집행에 대한 최고 심의기구로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장 및 각 단대 대표로 구성된다. 총학이 하는 일을 중운위가 감시할 수 있는 형태다.

류씨는 교육공동행동을 준비하며 총학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교육공동행동은 총학이 수업권 보장, 대외 이미지 개선 등에 관해 이화인 전체의 의견을 모아 학생처에 요구하는 공동행동이다. 총학 부재로 인해 2022년에는 중운위가 각 단과대학(단대) 별 학생 요구안을 수합해 제출했다. 류씨는 “구조상 모든 이화인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없어 ’이화인 교육공동행동’이 아닌 ‘단대별 교육공동행동’을 진행하는 느낌이었다”며 “교육공동행동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총학이 있다면 학내에서 논란이 되는 개별 사안에 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제53대 비대위장 박수정씨는 “비대위장은 단대 대표를 동시에 맡고 있어 해당 단대의 민원 사안에도 대응해야 하는 등 업무 과다 상태”라며 “총학이 있었다면 학교의 행정적 문제나 학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의 업무가 과다한 상황에서 전 총학이 진행하던 모든 사업을 다 소화하기는 어렵다. 2022년 비대위 체제에서는 ▲등심위 대응 ▲학생 자치 탄압 학칙 대응 관련 논의 ▲수업권 대응 ▲정기협의체 진행과 같은 최소한의 대응만이 진행됐지만, 총학이 있던 2019년에는 이외에도 ▲강사법 대응 ▲수영장 폐쇄 대응 ▲기숙사 관련 대응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요청사항 공문 발송 등 학내 다양한 사안에 대한 대응 및 요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갑자기 시작된 비대위 체제, 혼란 여전해

총학 부재가 시작된 2021학년도 비대위는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3월이 돼서야 제53대 선본 이너지 당선이 최종적으로 무산되며 급하게 비대위가 구성됐다. 늦은 비대위 구성은 교내 행사 진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동제는 당선된 선본이 겨울방학부터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비대위가 3월에 구성되며 5월에 대동제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박수정씨는 “대동제 인수인계 자료가 없어 2019학년도 총학에 부탁해 자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총학의 집행부는 교육자치국, 일상복지국, 문화기획국, 사무회계국으로 구성된다. 총학이 사라지면서 각 국별 사업들은 중운위 내 수업권팀, 생활환경팀, 대외이미지·취업고시팀, 인권팀이 나누어 처리하게 됐다. 중운위 위원 1명이 각 팀의 팀장이 되어 사업을 운영해야만 하는 구조다. 비대위는 집행부를 따로 뽑지 않기에 총학 집행부원 약 20명이 하던 일을 중운위 위원 12명이 맡고 있다. 류씨는 “회의실 대여 사업은 총학의 일상복지국 집행부원들이 담당하던 일이었지만 총학 부재로 한 명의 단대 대표가 맡게 돼 부담이 컸다”고 설명했다. 

제55대 비대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학이 수립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 비대위에 대한 자세한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대위로 선출되면 학생회칙에 나와 있는 간단한 내용만 숙지한 채 직접 부딪히며 업무를 배우고 수행해야만 한다. 제55대 비대위는 “인수인계록과 작년 비대위 활동을 정리한 구글 드라이브 폴더로 내용들을 숙지했다”며 “아직 작년 비대위 분들과 연락하며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단대 학생회 업무에 비대위 업무까지 짊어진 공동대표들

중운위의 업무가 늘어나며 단대 학생회 사업 진행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두 명으로 이뤄진 단대 공동대표들은 각각 중운위, 단대운영위원회(단운위)를 담당한다. 중운위의 업무가 늘어나 중운위 담당 대표가 단운위 일을 맡기 어려워지며  단운위 담당 대표의 부담도 커진다. 

비대위 체제 이전부터 단대 공동대표의 업무 부담은 컸다. 집행부와 함께하는 행사나 사업 준비 주관뿐만 아니라 집행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부 업체 미팅, 학생회비 예결산안 같은 재정 관리, 각종 회의 진행 등의 업무를 두 명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대 공동대표 노서정씨는 “집행부를 뽑기 전인 겨울방학에 두 명이서 경영대 학생회의 모든 업무를 해야 해 정말 바빴다”며 “이런 상황에서 함께 경영대 대표를 맡고 있는 김민지 대표가 비대위장으로 선출돼 바빠지다 보니 (제가) 단대 학생회 업무를 더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경영대는 단일 학부로 구성된 단대로 학과 학생회에서 하는 업무까지 단대 학생회에서 담당해 업무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학생회 업무로 인해 하루도 쉰 적이 없다는 경영대 공동대표 김민지씨는 “경영대 대표로서 새로운 대면 행사나 사업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비대위, 단대 업무가 겹쳐 바빠지면 개인 일정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제55대 비대위는 “두 업무를 모두 수행하면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업무량이 많아지다 보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학우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단대 공동대표로 출마하고 비대위 업무를 수행하는 건데, 일이 많다 보니 빠뜨리거나 실수하는 부분이 생겨요.”

노씨는 “차기 단대 공동대표들은 업무 과중으로 인한 고민과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총학이 건설되면 총학, 단대 학생회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총학이 건설돼 중운위가 의결 기구의 역할을 되찾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화의 학생 자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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