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가 위기다. 본교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총학생회(총학)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연세대는 투표율 미달과 선거운동본부(선본)의 자격 박탈 등의 이유로 2022년부터 비대위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서강대 또한 총학과 비대위 체제가 매년 번갈아 구성되고 있다. 고준우 작가는 저서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2020)에서 “학생회의 위기는 어느 특정 대학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대학 전반의 지배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 속 어려움을 딛고 총학을 설립한 두 대학이 있다. 한양대 서울캠퍼스와 동덕여대다. 각각 4년과 2년이라는 긴 비대위 체제가 이어진 끝에 총학이 출범했다. 장기적인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총학을 세운 한양대 제50대 총학생회장 정지호씨와 동덕여대 제56대 총학생회장 김서원씨를 만났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긴 비대위 체제 끝에 세운 총학

한양대는 4년간 비대위 체제가 지속됐다. 총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투표 거부 운동에서부터였다. 정씨는 “당시 총학이 학내 문제보다는 학외 사안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방향성이 같은 선본을 지속적으로 밀어주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투표 거부 운동이 일어난 결과 제46대 총학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36.5%였다. 개표 가능한 최소 투표율인 50%가 넘지 않아 총학이 출범하지 못했다. 총학 부재 첫 해인 2018년에는 비대위장이 학생회비 약 5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학생 자치 기구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졌다. 이후의 총학 선거도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하거나 출마한 선본이  없어 모두 무산됐다.

그렇게 한양대에서 총학의 자리는 공석이 됐다. 총학의 부재는 학생 권리의 약화로 이어졌다. 2019년에는 학교 측의 실수로 학생들의 수업 이해를 돕는 튜터링 프로그램 ‘HY-러닝페이스메이커'에 참여한 학생 352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학생들의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 등이 유출됐다. 당시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와 비대위는 긴급대책팀을 꾸려 학교 본부에 항의했지만 학교는 “오히려 고의로 일을 키운다”며 긴급대책팀과의 논의를 거부했다. 정씨는 “비대위 기간 동안 학교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을 해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비대위장도 6개월 주기로 바뀌며 운영됐다. 당시 단과대학 대표를 맡았던 정씨는 “답답한 마음이 들어 총학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덕여대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총학 출범이 계속해서 무산돼 왔다. 2020년 본 선거와 보궐 선거 모두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았다. 2023학년도 총학생회장 김서원씨는 “2020년 총학 선거가 무산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비대면 수업으로 개인주의가 심해진 경향이 있다”며 “최근에는 학생 자치보다 취업이나 자격증 등 학생들이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진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에는 총학이 설립됐지만 2월4일 당선된 선본이 사퇴하면서 다시 비대위 체제가 이어졌다. 2022년에야 비로소 총학이 세워졌다. 

김씨는 2021년 등록금 반환 본부에서 활동하며 비대위가 학생들을 대표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단대 대표자가 비대위장을 역임하다 보니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반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학교도 비대위가 학생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과 총학이 하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고요.” 2022년 새롭게 설립된 총학생회의 연대국장을 맡은 김씨는 이듬해인 2023년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새롭게 세운 총학,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비대위가 오랜 기간 유지됐던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총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씨는 선거 운동을 하며 공약을 먼저 내세우기보다는 오랜 부재로 학생들에게 낯선 총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씨는 “단순히 ‘총학이 있으면 이런 게 좋다'가 아니라 ‘총학이 없으면 어떻게 학생의 권리가 침해받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정후보 정씨와 부후보 김태현씨의 선본 'HY:phen(하이픈)'이 2021년 한양대 제50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선 이후 학생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먼저 이해해주고 왜 우리 학교에 총학이 필요한지 설득해줘서 좋았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4년 동안이나 부재했던 총학을 다시 세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부 기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씨는 “학교와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전부터 쌓아둔 기록이 없었다"며 “학교가 이전에 협의가 끝난 내용이라고 주장하면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과거 총학의 사업 진행 방식을 모르니 모든 협상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2021년 비대위 체제 이후 설립된 동덕여대의 총학이 출범 2개월 만에 사퇴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김씨는 “모든 것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어려움도 사퇴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이 대학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총학은 학교와 학생의 입장이 다를 때 학교의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고 학생 의견을 피력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는 기구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총학생회가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욱 강하게 학교에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