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으로 당일 취소된 열차. 영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수영 선임기자
인력 부족으로 당일 취소된 열차. 영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수영 선임기자

2022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시민들이 시위를 통해 직접적인 손해를 입으며 ‘멈춤’에 대한 새로운 공론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열차 출입구를 막는 방식으로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며, 원하는 대로 이동하기조차 어려운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파격적으로 알렸다. 전장연의 행동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시민이 있는 반면 전장연 이동권 시위를 두고 일각에선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접근성 낮은 교통시설물과 예산 부족을 문제 삼으며 이어 나간 이 시위가 최근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연하게도 영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시위, 정확히 말해 파업을 통한 ‘멈춤’은 이곳에서 흔한 대화 주제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파업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파업이 성공하거나, 시내가 멈춘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버스나 운송 노조들이 파업한다고 왕왕 말해왔지만 내가 봐온 백 번의 경우 모두 실제로 업무를 그만두기 전 ‘극적 노사 타결’이라는 말과 함께 파업 계획이 철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영국은 내가 도착한 9월부터 지금까지 철도 파업을 두 달 내내 진행하고 있다.

파업 이유는 명료하다. 솟구치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는 임금 상승률. 영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1.1%를 기록하며 40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철도 회사들은 최대임금 상승률로 3%를 제시했고 이에 불복한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심했다. 영국 철도는 민영화돼 28개 회사로 구성돼있다. 이 중 13개를 아우르는 철도 해운 노조 조합원과 영국 철도시설공단인 네트워크 레일 직원까지. 총 4만 명이 파업에 참여한다. 이들은 최소 7%의 임금 상승률과 구조조정 반대를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파업이 진행된다고 해서 두 달 내내 아무 기차도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업무를 정지하는 날은 달에 최소 한번, 많은 경우 세 번까지 있었으며 파업에 참여하는 기차 회사들은 운영 계획을 축소했다. 기차 취소가 잦지 않은 한국에 비해 영국 기차는 안전 요원에 투입할 인력조차 부족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파업까지 겹치며 영국 내 여행은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됐다. 파업으로 인해 이상한 시간대의 기차를 타야 하거나 여러 번 경유하는 경우는 수두룩했다. 동생과 함께 여행하기로 한 날, 하필이면 파업으로 인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열 배 정도의 비용을 내고 택시를 타고 다닌 날도 있었다.

‘멈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는 학교 수업들이 멈추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150여 개 대학의 약 7만 명 스태프가 포함된 UCU는 영국의 최대 교사 노조 중 하나다. 그들은 올해 초 영국 정부가 퇴직 연금을 평균적으로 35% 삭감하겠다 하자 이에 반대하며 파업을 결심했다 밝혔다. 약 3일간 이어질 파업의 여파로 학생회는 자신의 수업 일정을 체크해보라는 메일을 보냈다. 내가 듣는 수업 중 하나는 파업 날 있을 혼선에 대비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 밝혔다. 한국의 교수진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이 존재하지만, 파업까지 이어질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목격하진 못했었다. 그래서 그럴까. 엘리트로 인식되는 교수들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이며 파업의 주체가 되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광경이었다.

국선 변호사, 버스, 교사, 기차까지. 영국에서 파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들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실행한다. “30년 만의 최대 파업” 등의 헤드라인으로 국내 언론은 영국 내 기차 파업을 다뤘지만 ‘이러한 규모’가 오랜만이었을 뿐, 기차 파업은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른 분야의 파업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일을 멈춤으로써 사회에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 리니 언더우드(25) 씨는 “파업과 관련한 영국인의 정서는 매우 긍정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더 그렇지만 요즘은 모든 곳에서 파업하는 기분인 건 맞아요. 그래도 이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에 있어서는 기쁘게 느껴요. 아마 대부분, 최소한 젊은 사람들은 더 그럴걸요?”

유럽노동조합 연구소에 따르면 파업을 하는 사람들과 그의 후손으로 이뤄진 듯 보이는 영국은 파업할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돼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철도 파업 날짜를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공지하고, 학교 측에서 교원노조 파업 사실을 미리 고지하는 등, 파업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모습은 이들을 정당한 사람으로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파업권이란 노동기본권에 포함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정당하게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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