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ium Musicum Berlin 중 필자가 단원으로 있는 Kleines Sinfonisches Orchester. 본국에서 악기를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을 배려해 악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공=©PhotoGravity – Milena A.rt
Collegium Musicum Berlin 중 필자가 단원으로 있는 Kleines Sinfonisches Orchester. 본국에서 악기를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을 배려해 악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공=©PhotoGravity – Milena A.rt

파견교 리스트를 작성하며 영어권으로도 유럽 대학에 지원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교환 학생을 지원해본 벗들은 공감하겠지만, 이때가 가장 마음이 부푸는 시기 아닌가. 자동차와 클래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게 웬 떡이냐며 영미 대학과 함께 독일 대학으로 리스트를 채웠다.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 파견됐다. 함께 파견교 배정을 기다리던 동기가 이 결과에 한참 웃고 나서야 내가 독일어 까막눈이라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되돌리기엔 한참 늦은 뒤였다.

베를린에서의 1년은 살면서 떠올려본 적도 없는 시나리오다. 언어를 모르는데 학교수업과 행정 처리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로망은 순식간에 절망이 됐다. 결국, 시원스쿨 독일어 강좌를 결제했고 결과만 말하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행운이 나를 구하는데, 베를린은 ‘시선과 품이 넓은 도시’라는 것이다. 이 도시의 외국인 비율은 20.2%(2021년 기준)로, 난민과 이민자 정책이 정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독일에서도 가장 높다.

서독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경제를 회복하면서부터 해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서베를린은 베를린 봉쇄 및 장벽 설치 등을 계기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려 더욱 그러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독일이 외국인에 관대해지는 데 일조했지만, 독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늘상 이들의 정착에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2022년의 내가 베를린에 도착한 첫 주에 가래침을 맞은 것도 그 연장선으로, 여전히 외국인 차별과 이민자의 적응은 독일 사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다만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11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자발적으로 거처와 식료품 등을 제공하는 모습에서 독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들을 일명 ‘편견 없이’ 바라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는 독일에 오랜 기간 거주할 계획이 아닌 교환학생이자 외국인인 나의 숨통도 틔게 했다.

파견교가 주관하는 베를린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독일어를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얘기하며 사과했다. 독일어가 준비되지 않은 채 베를린에 온 사람에게 영어로 통역하는 시간을 할애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지휘자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단원들에게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이걸 보라며 지휘자는 우리가 한국어 모르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네가 미안해할 것도 없다고 날 다독였다. 그러자 한 단원이 장난스레 모차르트도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맞장구쳤다. 파견교 배정을 받은 순간부터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까지 9개월간 날 괴롭혔던 언어 장벽이 베를린 장벽마냥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이야. 결국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니 서로의 노력으로 뜻만 전달할 수 있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 뒤로 지휘자가 특정 마디를 숫자로 지목하면 내가 스스로 해당 마디를 찾아 가리킬 때까지 다 같이 기다려준다거나(독일어는 두 자릿수부터 세는 법이 복잡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 자릿수를 처음으로 한 번에 알아들었을 때 모두가 환호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생겼다. 지금껏 사용하던 언어가, 살아온 나라가, 또 생각해온 방식마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6개월 동안 이런 나의 ‘다름’을 존중받은 순간들은 나의 성장을 지켜봐주고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어디에나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또 실제로 성장배경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아진 요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인 듯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에게 이질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지만, 이질감이 차별로는 이어지지 않게 제도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이성도 탑재되어 있지 않은가. 교환학생으로 베를린에 온 것은 우연이었지만, 자유대학에서 공부하는 만큼 베를리너들이 이 도시의 다양성에 가지는 자부심을 양껏 느끼고, 함께해야겠다. Ich bin ein Berl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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