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훔 중앙역에 설치돼 항시 운영되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모금 부스. 대학 캠퍼스에서도 전쟁 반대 현수막과 캠페인, 학생들이 주최한 관련 특강 등을 자주 마주친다. <strong>제공=권경문 선임기자
독일 보훔 중앙역에 설치돼 항시 운영되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모금 부스. 대학 캠퍼스에서도 전쟁 반대 현수막과 캠페인, 학생들이 주최한 관련 특강 등을 자주 마주친다. 제공=권경문 선임기자

일주일 전, 러시아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 줄리(Julia)와 쇼핑을 하러 인근 도시 뒤셀도르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떤 숍에 들러야 할지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줄리에게 낯선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러시아어처럼 들렸다. 아주머니는 러시아 문자로 주소가 적힌 종이를 줄리에게 내밀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뒤에는 5세쯤 된 것 같은 남자아이가 보였다.

아주머니와 약 5분간의 대화를 마친 뒤 줄리가 상황을 설명해줬다. 아주머니 일행은 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이었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우크라이나 총영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어 길을 찾기가 힘들어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그제야 아주머니가 입은 파란 조끼와 노란 두건이 눈에 들어왔다.

줄리는 “사정상 저분들이 핸드폰이 없어서 센터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며 “마땅히 도와드려야 하는데 너만 괜찮으면 같이 길을 알려드리러 가도 될까?”라고 물었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줄리와 함께 아주머니 일행을 기차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크라이나 총영사관으로 안내했다. 아주머니 일행의 자세한 사정과, 줄리와 그분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아주머니는 내 손도 잡아주시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날 내내 나는 내가 경험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계속 곱씹었다. 독일에서 러시아 친구와 함께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만나 영사관까지 함께 길을 안내하다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함과 동시에, 그 전쟁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연찮은 일을 겪지 않더라도 독일에서 생활하는 매 순간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상기하게 된다. 어떤 도시든 기차 중앙역에 들어가면 전광판 바로 옆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어느 지역을 가도 기차역 중앙에는 늘 우크라이나를 위한 모금 부스가 마련돼 있다. 시내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전쟁 반대 캠페인이 늘 보인다.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캠퍼스 곳곳에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고, 화장실 벽이나 강의실 책상 등에는 우크라이나 국기 스티커가 붙어있다. 학생들도 움직인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보훔루르대 학생 14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모금을 주도했다. 또 이 학생들은 4월 25일~28일 전문가들을 초청해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는 무료 강연을 주최했다. 학교 차원에서 자유와 평화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도 매달 열린다. ‘러시아의 언론 환경’,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 수업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핫라인 역시 존재한다.

지난달 11일,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한 날이었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도 아닌,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연설에는 현직 의원 약 300명 중 고작 50여 명만이 참석한 것이 알려졌다. 텅 빈 국회의 사진은 다른 나라와 대비되며 국내 언론뿐 아니라 해외 매체에도 소개됐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경우 국회에서의 화상 연설 당시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연설이 끝났을 때 모두가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한다. 한국 화상 연설에서는 기립 박수는커녕, 의원들의 저조한 참석률이 독일을 비롯한 국제 뉴스에서 다뤄졌다. 우리나라의 평화 감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유럽 생활을 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을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국제 뉴스로 접하는 내용이 전부였고, 관련 보도가 보일 때만 전쟁 상황을 인지했다. 그 외에 특별히 전시 상황에 큰 관심을 기울이거나 기부금을 내는 등의 별다른 행동을 취한 적이 없다. 스스로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인권 감수성과 세계 평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 유럽에서 공부하며 깨달은 점은 관련 보도의 개수가 적어지고 지면에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더라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늘,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회 화상 연설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1950년대 전쟁을 한 번 겪으시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겨냈고 그때 국제 사회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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