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워터(수돗물)가 아니라면 물도 사서 마셔야 하고, 화장실도 돈을 내야 하는 독일은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대중교통 1회권에 3유로(약 4천원), 1달권에 86유로(약 11만5천원)로 여기서 1회권은 환승을 포함하지 않는다. 갈아탈 때마다 3유로가 추가로 결제되고, 방향을 헷갈려 반대로 탈 때도 마찬가지다. 환승이 잦은 독일 대중교통 특성상, 관광객이 타는 방향을 한두 번 실수했다고 했을 때 사실상 우버와 비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독일에서 ‘9유로 티켓’은 여름이 주는 선물이다.

9유로 티켓은 공항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오른쪽 위에 ‘9€ Ticket’이라고 표시돼 있다. 제공=이현서
9유로 티켓은 공항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오른쪽 위에 ‘9€ Ticket’이라고 표시돼 있다. 제공=이현서

‘9유로 티켓’은 6~8월 동안 독일에서 단돈 9유로(약 1만2천원)로 한 달간 독일 전역의 기차(지하철 포함)와 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다. 일반적인 1달권보다 90%나 할인된 값이다. 고속철도는 탑승할 수 없지만, 독일 지역 간에는 RE/RB(무궁화호 같은 일반 열차)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파격적인 가격 할인이다. 그리고 학생처럼 이미 정액권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차액을 돌려준다.

독일 정부가 25억유로(약 3조 3450억원)씩이나 투자해가며 이런 대중교통 정책을 선보인 이유는 ‘에너지 절감’ 때문이다. 독일 연방정부 설문조사 응답자의 50% 이상이 자동차 운행 대신 ‘9유로 티켓’을 선택했고,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경우 평소 자가용을 이용하다 ‘9유로 티켓’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 승객이 약 19%나 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통근자가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하루에 탄소 2130만 톤이 감축된다는 연방환경청 데이터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성면에서 매우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음료 반입이 불가능한 자연사 박물관 앞에 빈 병이 모여 있다. <strong>제공=이현서
음료 반입이 불가능한 자연사 박물관 앞에 빈 병이 모여 있다. 제공=이현서

 장바구니 가득 빈병을 담고, 공원의 시민들에게 다 마신 맥주병을 달라고 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콘서트장처럼 다 마신 음료수가 짐이 되는 곳이면 카트까지 동원해 빈병을 수집하는데, 이들은 모두 ‘판트(Pfand)’를 모으는 것이다. ‘판트(Pfand)’는 독일의 빈병 보증금으로, 8~25센트(약 330원)나 된다. ‘판트’는 나같은 교환학생들에게도 일상으로, 거의 모든 마트에서 따로 종업원에게 요청할 필요 없이 빈병 반환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마트 안 빈 병 반환기계. 반환 후 금액이 적힌 영수증을 받을 수 있다. 빈 병을 한 번에 많이 가져가는 날에는 장 본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도 있다. <strong>제공=이현서
마트 안 빈 병 반환기계. 반환 후 금액이 적힌 영수증을 받을 수 있다. 빈 병을 한 번에 많이 가져가는 날에는 장 본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도 있다. 제공=이현서

 빈병 수거기계와 ‘판트’ 표시는 독일의 페트병 재활용률 98%에 한몫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일반 페트병과 투명 페트병을 분리해서 라벨을 제거해 내놓고, 수거 시에 다른 폐기물로 오염되지 않아야만 페트병이 재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분리수거율’은 높지만, ‘재활용률’은 낮은 이유다. 반면 독일에서는 ‘판트’ 그림이 분리배출, ‘판트’ 기계가 라벨 제거와 오염 방지의 역할을 한다. 생산자와 정부가 생산과 판매뿐만 아니라 수거와 재활용까지 개입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판트가 가능하다는 뜻의 그림. 마트의 가격표에는 판트 금액이 얼마인지도 쓰여 있다. 제공=이현서
판트가 가능하다는 뜻의 그림. 가격표에는 판트 금액이 얼마인지도 쓰여 있다. 제공=이현서

파견된 베를린의 거리는 깨진 유리병이 덜하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깨끗하다. 더불어 길거리 공용 쓰레기통 밑에 페트병들이 정갈하게 놓인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판트’가 거리의 청결에 기여한 결과다. 이렇게 모인 빈병의 보증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게 되니, 일종의 ‘선의’도 된다. ‘판트’는 내가 맥주를 사면서 보증금 형태로 맡겨놓은 돈을, 다 마신 맥주병을 수거할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베를린의 공용 쓰레기통. 다 먹은 빈 병을 쓰레기통 밑에 세워두는 것이 ‘판트’하는 사람들에 대한 매너다. 제공=이현서
베를린의 공용 쓰레기통. 다 먹은 빈 병을 쓰레기통 밑에 세워두는 것이 ‘판트’하는 사람들에 대한 매너다. 제공=이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빈 음료수를 세워두는 건 환경을 위한다는 명목이 없더라도 자주 한다. 단지 차 막히는 게 싫어 지하철을 타고, 버릴 유리병을 챙기는 게 번거로워 쓰레기통 옆에 두는 게 결국엔 내 건강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이라니. 이보다 일상적일 수 없다. ‘9유로 티켓’과 ‘판트’ 정책은 시민들과 직접 맞닿은 일들이 환경 문제를 이겨내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실감시킨다. ‘9유로 티켓’에 투자되는 3조원이 미래세대가 겪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스스로의 건강과 생태계를 위해 무얼 하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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