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신가요? 그럼 무료입니다.”

흔히 유럽으로의 교환학생 파견을 생각하면 비용이 많이 들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오기 전 비용 걱정이 많았다. 매 학기 조금씩 돈을 모았고, 직전 학기 인턴을 하며 경비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누군가 지갑 사정 괜찮으냐고 물어본다면 “생각보다 괜찮다”고 답한다. 이곳에서 나는 바로 학생이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독일에서 학생이란 신분이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학생증은 프리패스 입장권과 같다. 학생증만 내밀면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심지어는 동네 클럽까지도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만 무료일까. 학생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돈을 낼 필요가 없다. 서울의 ‘따릉이’ 같은 공용 자전거 역시 학생이라면 하루에 1시간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놀라운 건 이 모든 학생 복지를 누리는 데 드는 비용이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독일 내 대부분의 대학교는 등록금이 없다. 2014년 니더작센주를 끝으로 독일 대학의 등록금 제도가 전면 폐지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학생들은 매 학기 사회 공헌비(Social contribution fee)라는 이름의 금액을 학교에 납부한다. 이 금액에는 각종 행정 처리 비용, 학생 복지 지원 비용, 그리고 교통비용이 포함돼 있다. 나 역시 교환학생 등록 과정에서 사회 공헌비를 납부했다. 학기마다 금액이 조금씩 변동되지만, 이번 학기 나는 340유로, 한화로는 약 45만 원 정도를 냈다. 매 학기 300유로에서 400유로 안팎으로 책정된다고 한다.

사회 공헌비의 혜택 중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 교통을 말할 수 있다. 사회 공헌비를 납부하면 학생들은 매 학기 세메스터 티켓(semester ticket)이라는 교통권을 받게 된다. 이 티켓으로 한 학기 동안 지역 트램과 버스뿐 아니라 근교를 오가는 기차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를 거쳐 근교 소도시인 함(Hamm)까지 가는 RE기차. 매 학기 300~400유로 안팎의 사회공헌비를 납부한 학생은 ‘세메스터 티켓’으로 RE기차와 지역 트램, 버스 등의 교통편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strong>제공=권경문 선임기자
독일 도르트문트를 거쳐 근교 소도시인 함(Hamm)까지 가는 RE기차. 매 학기 300~400유로 안팎의 사회공헌비를 납부한 학생은 ‘세메스터 티켓’으로 RE기차와 지역 트램, 버스 등의 교통편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제공=권경문 선임기자

 내가 사는 지역은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도시 보훔(Bochum)이다. 세메스터 티켓만 있다면 같은 주 안에서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이 세메스터 티켓이 없다면 매번 학교와 기숙사에 오갈 때 3유로(약 4000원)를 지불해야 한다. 또 가까운 도시인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까지는 2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교통비 부담이 전혀 없으니 학생들이 통학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근교 도르트문트에서 보훔까지 통학하는 친구 레번(Levon)은 “매일 학교에 오기 위해 기차를 타지만 비용은 전혀 들지 않는다”며 “교통비를 내야 했다면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에서 장거리 통학을 하는 동기들의 고충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메스터 티켓으로는 근교 지역 여행도 다닐 수 있다. 나 역시 쾰른과 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근교뿐 아니라 네덜란드 일부 지역까지도 교통비 없이 여행이 가능하다. 기차를 타고, 그것도 무료로 다른 나라를 다녀올 수 있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곳 학생들에게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이런 학생 복지를 누릴 때마다 한국에서의 지난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매 학기 약 400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해야 했고, 지방 출신이라 서울의 월세까지 감당해야 했다. 거기다 교통비까지 더하면 한 달에 들어가는 고정비용만 해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학생 신분으로서 오히려 경제적 자유로움을 느낀다. 학교, 국가, 어른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고 도와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독일과 한국의 교육 제도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란 어불성설임을 안다. 다만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제적 짐이 생기는 대신, 학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복지와 제도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독일에서 지낼 남은 시간 동안은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지와 혜택을 충분히 경험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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