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은 중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프랑스 타임’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Quart d’heure de politesse, 15분의 예절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를 두고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친구가 오후 7시에 집으로 초대했다면 적어도 7시15분 이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을 초대한 호스트에게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6시30분에 모이기로 약속한 날 나는 6시45분에 도착하게끔 맞춰 갔으나 비슷한 시간에 모인 사람은 단 둘뿐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7시가 다 되었을 때부터 하나둘씩 문을 두드렸다. 사람이 제법 모이기 전까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실제로 허용되는 시간의 범위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리듬을 길게 잡고 그에 맞게 적응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방법일 것이다.

유럽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프랑스의 고속 열차 TGV
는 운행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출발 및 도착 지연이 제법 잦다. 유럽의 어느 곳이든 기차 연착 소식은 더이상 놀랍지 않고, 운이 나쁜 경우 지연 시간이 기약 없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류장에 대기해야 하는 때도 있다. 열차가 목적지로 가는 길에 수십 분 동안 멈춰 서는 경우도 드물지만 종종 있다.

TGV를 타고 파리(Paris), 낭트(Nantes),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깨달은 것은 열차 시간 앞뒤로 충분한 여유 시간을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면, 밤 늦게 도착하는 열차는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럽에서 기차 여행을 할 때에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편이 도움이 된다.

 

릴(Lille)에 위치한 기차역 중 하나인 릴 플랑드르 역(Gare de Lille Flandres) <strong>제공=이수연씨
릴(Lille)에 위치한 기차역 중 하나인 릴 플랑드르 역(Gare de Lille Flandres) 제공=이수연씨

강의실로 향하는 길, 버스 정류장에서 지금은 버스를 운행하지 않으니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지 말라는 버스 회사 직원의 안내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주하고 있는 레지던스에서 출발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도시의 센터를 통과해야 하며, 도보로는 30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이른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갈 때에는 주로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릴의 센터에서는 시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가 자주 진행된다.

이런 행사는 릴에서의 생활을 활기차게 만들면서도 작은 불편을 주기도 하는데, 중심지를 지나는 버스들은 모두 노선을 우회한다는 점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버스 노선이 변경된 경우에는 버스 회사 직원들이 나서 주요 정류장을 오가며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변동 사항을 알린다. 불어에 익숙하지 않은 유학생활 초기에는 이런 사소한 변동이 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운이 나쁜 경우 정류장에 서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먼 길을 걷는 것을 택해야 하고, 운 좋게 직원을 마주하더라도 서툰 불어 실력으로 현지인의 메시지를 재빠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기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오늘과 내일이 피할 수 없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때는 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의 일이다. 2월의 어느 날 릴에서 파리 북역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파리 북역에서 동역으로 이동, 동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약 3시간가량을 달리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할 수 있다. 문제는 파리로 가는 기차가 30분 이상 지연되면서 독일로 가는 기차를 놓친 것에 있었다.

역 사무실 앞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음 열차 티켓을 요청하기 위해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독일에서 파리를 방문했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차를 놓치고 사무실 앞에서 우연히 만나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고 같은 열차를 기다렸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파리 동역(Gare de l’Est) 부근 레스토랑. 이곳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가벼운 식사를 했다. <strong>제공=이수연씨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파리 동역(Gare de l’Est) 부근 레스토랑. 이곳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가벼운 식사를 했다. 제공=이수연씨

각자 역무원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시간은 점심 때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내가 먼저 같이 점심을 먹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우리는 파리 동역 앞 브리세리에서 가벼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의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파리로 오는 열차가 지연되지 않고, 그래서 예정된 독일행 기차를 타고 제시간에 떠났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라고 생각하니 그날 방황했던 시간과 당혹스러웠던 마음이 전부 설명할 수 없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Take care!” 독일에서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각자 지정된 칸에 올라 착석했다. 그리고 낮 동안 있었던 우연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어떤 일들은 우리가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제 상상했던 오늘과 오늘의 실제가 다르다는 것은 짧은 하루에도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함의한다. 우연한 사건이 일상에 난입해 뜻대로 굴도록 기꺼이 허락해 보자. 불확실한 내일의 여정이 제법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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