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8월15일 개봉 후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오펜하이머’(2023)의 대사다. 이 대사는 영화 초반부 오펜하이머가 책의 구절을 읽는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훗날 세상을 파괴하는 원자폭탄의 개발자가 될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해 ‘오펜하이머’ 속 명대사로 꼽힌다. 이 대사는 김은주 영화번역가(정외∙83년졸)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에게 닿았다.

‘오펜하이머’(2023), ‘매트릭스’(1999), ‘레미제라블’(2012) 등 유명 영화들의 번역을 맡은 번역가 김은주씨의 모습.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는 번역가이자 영화사에서 믿고 맡기는 번역가가 되었다. <strong>박소현 사진기자
‘오펜하이머’(2023), ‘매트릭스’(1999), ‘레미제라블’(2012) 등 유명 영화들의 번역을 맡은 번역가 김은주씨의 모습.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는 번역가이자 영화사에서 믿고 맡기는 번역가가 되었다. 박소현 사진기자

김씨는 영화 ‘나 홀로 집에’(1991) 번역으로 극장 영화계에 데뷔해 ▲매트릭스(1999)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겨울왕국(2013)▲어벤져스:엔드게임(2019) 등 국내에서 흥행한 다수의 외국 영화를 번역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번역을 통해 관객들이 편안히 볼 수 있는 자막을 만들고 있는 김씨를 9월19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슴 뛰는 일, 영화 번역 밖에는

김씨가 영화 번역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영어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가정환경 덕분이었다. 교사였지만 번역가의 꿈을 품고 계셨던 아버지는 <코리아타임스(The Korea Times)> 같은 영자 신문을 항상 곁에 두고 보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영어에 흥미가 생긴 김씨는 대학 진학 후에도 영어학원을 다녔다.

대학 졸업 후 김씨는 정치외교학 전공을 살려 서울에 위치한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김씨가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된 지인이 책 번역을 부탁했다. 전공 관련 업무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김씨에게 번역 일거리는 큰 재미로 다가왔다. 자신감을 얻은 김씨는 영화 번역에도 도전하고 싶었다. 근무하던 국제기구 사무실 근처에 위치한 KBS 영화부에 무작정 찾아갔다. 김씨가 자신이 번역한 책을 보여주며 영화 번역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영화부 직원은 대사가 거의 없는 간단한 내용의 영화를 번역해보라고 맡겼다.

일반적으로 대본과 영상을 함께 두고 진행하는 영화 번역과 달리, 해당 영화는 대본 없이 음성만 듣고 번역해야 했다. 김씨는 영상 속 음성의 녹음본을 가지고, 다니던 영어학원에 찾아갔다. 외국인 교사와 한 마디씩 대사를 정리해 영어 대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어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그것이 김씨의 첫 영화 번역이었다. 김씨는 이후에도 KBS에서 방송되는 외국 영화 번역 업무를 맡았고 SBS에서도 활동했다.

방송사 전문 영화번역가로 활동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20세기 폭스(현 20세기 스튜디 오)’ 영화사에서 극장 영화 번역을 시작했다. 이때 김씨가 처음 번역한 작품이 현재까지도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방영되는 명작, ‘나 홀로 집에’다.

방송번역은 외국 배우의 호흡에 맞춰 한국어 문장을 구성하는 더빙 번역이 대부분이다. 반면 극장 영화 번역은 두 줄의 자막에 해당 장면의 대사를 담는다. 두 줄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대사 길이를 고민하기 수월한 자막 번역과 달리 더빙 번역은 직접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 읽으며 대사의 길이를 맞춰가야 했다. 대사 길이에 따라 한 글자를 넣고 빼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 김씨는 더빙보다는 자막 번역이 더 잘 맞는다고 느꼈다. 이후 방송사 영화 번역은 그만두고 극장 자막 영화 번역에만 집중해왔다.

자막 한 글자를 스크린에 담기까지

‘나 홀로 집에’ 이후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2003), ‘맘마미아’(2008) 등 하나둘 맡아온 작품들이 김씨를 ‘믿고 맡기는 번역가’ 로 만들었다. 번역가의 삶에 익숙해진 그에게 도 짧은 번역 기간, 번역이 어려운 단어 등 어려움은 있었다. 김씨는 영화사, 특히 ◆직배사의 업무수행 방식을 ‘가능한 한 빨리’의 의미가 있는 ‘아쌉(ASAP∙As Soon As Possible)’이라고 표현했다. 외국 영화사에서 판권을 매입해 자체적으로 개봉 일정을 진행하는 일반 국내 배급사와 달리 직배사는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편집, 개봉 일정과 같이 움직인다. 직배사와의 업무에서는 김씨에게 보통 열흘 이내의 시간이 주어진다. 짧은 시간 동안 1시간30분~2시간 분량 영화의 모든 대사를 완벽히 번역해내야 한다.

“압축이 가장 고민이에요. 앞뒤 맥락에 맞춰 자연스럽게 두 줄에 담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히면 고역이죠.” 원어 문장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도서 번역과 달리 영화 번역은 해당 장면 속 주인공의 말을 두 줄의 자막에 압축해서 담아야 한다. 몇십 년을 번역해도 매번 난관에 부딪히는 단어들이 있다. 김씨는 “그럴 때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거나 웹툰, 웹소설 같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보다 보면 적당한 해석이 번뜩이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말의 존대어와 존칭어가 번역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영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존대어가 있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해당 인물이 그 대사에 담은 의도가 달라진다. 특히 인물들의 관계성이 복잡한 경우 해석의 난도가 높아진다. 김씨는 항상 영화 속 인물이 가진 배경과, 만약 실존 인물이라면 몇 년생인지 등을 찾아본다. 등장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해 존대어 번역에서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장르에 제한을 두고 번역을 맡는 것이 아니기에 매번 다양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원작 소설이 있다면 빌려 읽는 것은 기본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검색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던 시절에는 직접 발로 뛰었다. 미식축구에 대한 영화를 번역할 때는 국내 럭비협회에 찾아갔다. 미식축구 용어와 경기 방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국내에는 미식축구 협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번역으로 녹여내기에 알맞을 만큼만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익숙하다”면서도 한 편의 영화를 번역하기 위해 공부하고 ‘분투’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번역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김은주씨. 그는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자신의 번역 작품으로 ‘레미제라블’(2021)을 꼽았다. <strong>박소현 사진기자
번역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김은주씨. 그는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자신의 번역 작품으로 ‘레미제라블’(2021)을 꼽았다. 박소현 사진기자

관객의 눈과 귀로, 그의 걸음은 계속된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번역에 바친 김씨에게도 일반 영화 두 배 가까이 되는 길이의 ‘오펜하이머’는 도전이었다. ‘오펜하이머’ 배급을 담당한 직배사의 대표는 번역 요청 두 달 전 오펜하이머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주며 “중요한 작품이니 많이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의 모티브가 된 책이다. 영화사 대표가 직접 부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김씨는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오펜하이머’는 김씨가 처음으로 각본집까지 번역한 영화다. 배우들이 각본을 숙지해 영화를 촬영하기에 영화 번역과 각본집 번역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촬영 과정에서 각본집 내용을 수정하며 연기하다 보니 완성된 영화의 번역과 각본집 번역은 다른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대사만 번역하면 되는 영화 번역과 달리 각본집 번역에서는 해당 장면을 설명하는 글까지 번역해야 했다. 고생한 만큼 보람은 더 컸다. 김씨는 “역시 잘 팔릴 때가 (솔직히) 가장 기분이 좋다”며 좋은 성적을 거둔 ‘오펜하이머’ 영화와 각본집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번역 일을 하며 가장 뿌듯한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레미제라블’을 꼽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독보적 흥행을 하고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한 영화제에서 ‘외국 영화’ 부문으로 수상한 자리에 김씨도 초대받았다. 뮤지컬을 영화화하다보니 제작 과정에서 변동이 많았다. 번역 중에도 편집되거나 추가되는 장면이 많아 쉽지 않았지만 수상 소감에서 감독이 “김은주씨께서 밤새 애써가며 번역해주신 덕분”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순간 뿌듯함이 밀려왔다.

행복하지 않았던 직장생활 도중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간 발걸음이 김씨를 대한민국 1세대 영화번역가로 만들었다. 번역가란에 “영화 취향이 사라지고 대사가 적은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직업병을 갖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는 다음 번역 작업을 위해 인터뷰를 마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이에요.” 오늘도 그가 번역한 한 문장, 한 문장은 수백만 관객의 눈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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