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 출처=이대학보DB
故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 출처=이대학보DB

문학 작품 속 어둠보다는 빛을 찾으며 작품과 작가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던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가 난소암 투병 끝에 18일 향년 58세로 별세했다.

고(故) 김미현 교수는 2004년 3월1일 본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2022년 2학기까지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85년 본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인은 일평생 한국 여성문학을 연구하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였다.

1965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金裕貞 小說의 카니발적 構造 硏究(김유정 소설의 카니발적 구조 연구)’(김미현, 1990)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 근대 여성소설의 페미니스트 시학 : 여성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김미현, 1996)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 이후 문학평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은 생전 저서로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여성문학을 넘어서’, ‘젠더프리즘’, ‘번역트러블’, ‘그림자의 빛’을 남겼고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평론 부문,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 소감에서 “문학비평은 현실에 대한 반역적인 대응”이라며 “문학비평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작가를 두 번 살게 하는 자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비평관을 정리했다.

2019년 스승의 날, 대학원생들이 故 김미현 교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열었던 모습이다. 제공=국어국문학과 사무실
2019년 스승의 날, 대학원생들이 故 김미현 교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열었던 모습이다. 제공=국어국문학과 사무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학생들의 논문 지도와 학사 행정 업무를 지속했다. 또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자로서 수많은 제자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민음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박혜진 문학평론가(국문·10년졸)는 2005년부터 4년간 고인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 평론가는 “선생님께서는 칭찬과 꾸짖음이 확실한 분이었다”며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어수룩한 생각이 몸체를 불리지 않도록 옳고 그름을 확실히 가르쳐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시험이 끝난 뒤 꼭 오답 정리 시간을 갖던 고인은 학생들이 올바른 시선으로 한국 문학을 바라보고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승이었다. 박 평론가는 “김미현 선생님께서 늘 유쾌하게 강의를 하시고 유명 작가들과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주셨다”며 “선생님 덕분에 한국문학과 현대소설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에게 석·박사과정 지도를 받은 <계간홀로> 편집장 이진송 작가(국어국문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는 고인을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빛나던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 작가가 기억하는 고인은 서툴고 어설픈 이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길러낸 선생님이다. 이 작가는 고인 특유의 사랑과 성실함을 밤하늘의 별에 비유했다. 그는 “선생님께서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신 덕분에 제자들은 고대의 나그네처럼 든든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천재는 100년에 한 번쯤 나오는데 우리는 이미 문학평론가 김현을 가졌기 때문에 나나 너희나 다 평범한 사람이다. 대단한 걸 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히 해라.”

이 작가는 고인의 웃음 어린 농담을 떠올렸다. 이 작가는 “이미 당신께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학자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학업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고인의 말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의 말을 들은 이후 단 한 번도 고인의 말을 잊은 적 없다. ‘너무 잘하려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고 되뇌던 이 작가는 본인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시기에 자신을 믿어준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황지선 연구교수(이화인문과학원)는 고인을 “실천가”라고 표현했다. 고인은 늘 황 교수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스승과 제자는 오직 공부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행동으로 공부하는 법을 보여주셨다”며 “수많은 자료와 메모들이 가득한 책으로 제자들을 독려하셨다”고 말했다. 또 고인은 늘 제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하는 스승이었다. 투병 생활에 접어들기 전, 고인은 황 교수에게 “요즘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개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황 교수는 “이런 개그를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냐”며 자신의 개그 시범을 보고 신기한 표정으로 묻던 고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또 황 교수는 “선생님이 계셨기에 문학 이론을 장악해 텍스트 행간에 잠들어 있을 새로운 의미를 길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며 “그 방법을 선생님이라는 별이 없는 세계에서 나만의 별을 찾아가는 지도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강의였던 2022년 2학기 <한국현대소설작가연구>를 수강한 이지윤(국문·20)씨는 고인을 “선명하고 명랑한 분”이라고 표현했다. 몸이 좋지 않아 당시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한 고인은 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모두와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고인 특유의 유쾌한 설명은 제자들을 사로잡았고, 제자들에게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게끔 만들었다. 이씨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작품 세계를 바라보시며,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재밌는 표현으로 설명해 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또 고인은 한국문학을 향한 이씨의 관심을 다시 일깨워준 스승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며 잠시 문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때도 있었던 이씨는 고인의 수업을 들으며 배운 작가들의 책을 여러 권 몰입해 읽으며 지난 방학을 보내기도 했다.

2020년 스승의 날, 청수국을 좋아했던 故 김미현 교수를 위해 전공생들이 카네이션 대신 청수국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제공=국어국문학과 사무실
2020년 스승의 날, 청수국을 좋아했던 故 김미현 교수를 위해 전공생들이 카네이션 대신 청수국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제공=국어국문학과 사무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학교와 제자들을 그리워했다. “새로 지어진 학관을 보고 싶다”며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생전 고인은 특유의 긍정적 시선으로, 현대소설 작품 이면에 가려진 어둠에 빛을 비추는 평론가였다. 고인은 ‘빛의 그림자’를 보기보단 ‘그림자의 빛’을 보며 문학 작품과 작가에게 새로운 사랑을 불어넣었다.

고인은 발인이 있던 20일 영면했지만, 세상에 남긴 글과 제자를 향한 사랑은 영원히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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