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본교 국어국문학과 김미현 교수가 9월18일 새벽 향년 58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발인을 하루 앞둔 9월19일 오후9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그의 유족과 제자들, 문학계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늘 학교와 제자들을 걱정했던 고인을 그리워하는 조문객들의 슬픔이 빈소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자들은 추도사와 추억담을 낭독하며 생전의 고인을 기렸습니다. 열정적인 스승이자 문학평론가로서의 모습이 담긴 추도사와 추억담 원고를 받아 여기 싣습니다. 故 김미현 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9월19일 故 김미현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그의 제자들과 문학계 지인들이 빼곡히 모여 영면에 든 선생을 추모했다. 제공=장재원 이화미디어센터 연구원   
9월19일 故 김미현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그의 제자들과 문학계 지인들이 빼곡히 모여 영면에 든 선생을 추모했다. 제공=장재원 이화미디어센터 연구원   

 

김미현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난 여름 내내 선생님을 자주 떠올렸는데 연락을 그만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힘이 부치실 거 같아 어떤 말들을 먼저 꺼내야 할지 어렵게 느껴졌어요. 팔월에 여행지에서 선생님을 떠올리며 작은 펜던트를 샀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펜던트였어요. 곧 보내드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다가 구월 중순이 되었고, 어제 오전 황망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영정 앞에서 두 번째 절을 올릴 때, 일어날 수가 없어 엎드린 채로 한참을 있었습니다. 이 펜던트를 일찍 선물해드렸더라면 선생님의 생명이 기적처럼 조금은 더 길어지셨을까, 이상한 죄책감 속에서 추모사를 씁니다.

선생님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채로 부고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이화여대 국문학과의 김미현 교수는 일평생 한국 여성문학을 연구하고 여성적 글쓰기를 규명하면서,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일가를 이룬 평론가였다고 말해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박사논문을 출간한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1996)에서 시작해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2001) 『여성문학을 넘어서』(2002) 『젠더 프리즘』(2008) 『번역 트러블』(2016) 『그림자의 빛』(2020)에 이르기까지 여섯 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많은 상으로 인정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객관적인 말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있어 몇 문장을 덧붙이려 합니다.

선생님은 첫 번째 평론집에서부터 꾸준히 ‘읽히는 평론’이 되고 싶다고 밝혔고, 이를 위해 묵직하게 많이 읽으셨습니다. 단 한 편의 비평에도 50개가 넘어가는 각주들은 기존 논의와 이론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점검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대개의 평론가들이 정전을 발굴하다가 놓치게 되는 대중문학 텍스트에도 선생님의 시선이 두루 닿았습니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아래 어떤 욕망과 정치적 무의식이 놓여있는지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일은 평론가로서의 안목을 거듭 재점검하는 겸손함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비평은 언제나 이론적 성실함으로 텍스트를 품고, 겸손한 태도로 독자의 손을 잡으며, 문체의 활기로 빛났습니다. 삼십 년 가까이 쉼 없이 이어진 선생님의 연구와 비평은 여성주의 비평을 넘어서는 빛으로 자리하며,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거대한 유산이자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많은 제자들에게 사랑받는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학부 때 치열한 수강 신청을 뚫고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가면, 쟁쟁한 목소리와 함께 명강의가 펼쳐졌습니다. 분필 가루를 날리며 칠판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빼곡하게 판서를 하시던 모습이, 언제나 유쾌하게 선명한 논지의 수업을 진행하시고 자주 농담을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대학원 제자들에게는 날카로우면서도 단호한 진심이 느껴지는 말들로, 논문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지도해주셨습니다. 그 엄격함 아래 한결같은 다정함이 스며있어, 이 시대에 어떤 기약도 없이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이 기꺼이 즐거운 일이 되곤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2020년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수상하고 쓴 자서전에 잊을 수 없는 문장이 있습니다. “문학 공부를 할 때 이론이나 논리를 보완하기는 나름 쉬워도 태도나 마음을 바꾸기는 은근히 어렵다.” 이 말을 저는 이론이나 논리보다 세상과 문학에 대한 태도를 먼저 갖추라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있는 자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게으를 수 없으니, 손쉬운 위로와 구원을 바라지 말고 더 부지런히 읽고 쓰라는 말로 다시 새겨 듣습니다.

선생님의 몸이 조금 회복되어 복직을 준비하시던 작년 여름에 써주신 글이 제 평론집 『파토스의 그림자』 추천사였습니다. 그 두꺼운 책을 세 번이나 읽느라 방학 내내 엄청 기운을 썼다고 하셨지요. 웃으며 넘겼지만 제게는 그 말이 마음 깊이 남아있었는데요. 어제 장례식장에 오신 다른 선생님께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픈 와중에 쉬지 않고 왜 제자의 추천사를 쓰느냐고 타박하자, 김미현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가진 재주가 글쓰기밖에 없어서, 줄 게 이거밖에 없어서 그래.”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쓰셨지요. 자신이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제자의 일보다 앞세운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께 선물처럼 받은 그 추천사가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쓰신 마지막 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선생님의 마지막 선물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마지막 글을 씁니다. 이십 년 가까이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웠으므로, 하지만 선생님에 한참 못 미치는 솜씨로, 차마 쓰지 못하겠는 글을 간신히 씁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과제로 제가 태어나 가장 쓰기 힘든 글을, 가장 짧은 마감 기간으로 주셨네요. 그래도 이제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아픈 채로 씁니다. 추도식에서는 붙드는 말이 아니라 잘가시라는 말을 해야 망자가 편안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선생님의 손을 잡아 붙들고 싶은 마음도 누른 채, 좋은 곳으로 잘 가시라고 씁니다. 선생님께서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싶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다고 들었어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의 마음의 방향이 이화와 제자들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 기쁘고 무너질 것처럼 슬픕니다.

선생님께서는 문자에서도 말이 길어지면 마지막에 꼭 “다시 정리하면”이라는 말을 쓰셨는데요. 중언부언 없이 명쾌하게 논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그러셨지요. 저는 그렇지 못한 성격이라 늘 말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을 따라 마무리를 해보려고 해요. 다시 정리하자면, 부족한 저희들을 한결같이 살피고 이끌며 절대적인 스승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든든한 기둥을 잃은 기분이지만, 선생님의 글에 담겨 있는 문학적 성찰과 고백들이 언제나 저희에게 생생한 문학적 질문으로 더 굳건하게 남아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하셨듯 세상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을 대표하여 2023년 9월 19일 초가을의 저녁에 강지희 삼가 글을 올립니다.

 

故 김미현 국어국문학과 교수.
故 김미현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랑하는 우리 선생님. 

어느 때보다도 한 음절 한 음절 마음을 담아 불러봅니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오늘 일부러 짙은 진달래 보랏빛 립스틱을 발랐습니다. 선생님의 시그니처 포인트 메이크업으로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지금,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학부생 시절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배고픈 일인지 적나라하게 말씀하시고는, 일자리는 보장할 수 없어도 평생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으로 먹고 살 수 있게 키워줄 테니 ‘나만 믿고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책임감에 저희 제자들은 항상 든든한 스승님이 계시다는 자부심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그 사명감이 얼마나 강하셨는지, 선생님께서는 에이포 용지 몇 장을 앞뒤로 빼곡하게 채워가며 늘 강의 준비를 열정적으로 해오셨고, 저희들이 매주 제출하는 과제에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섞인 코멘트를 적어주셨습니다.

한 문장만 봐도 누구의 글인지 알아차리실 정도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허투루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도 평소와 같이 수업을 진행하시고 수업을 마치신 후에 병원에 가셨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암 투병 중에도 평소와 같은 철두철미한 수업 방식을 고집하셨고, 당연히 저희들도 그런 선생님을 보며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도받을 때는 선생님이 너무나 대단한 분이시니까, 워낙 그렇게 열정적인 분이시니까 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선생님께서 저희를 위해 정말 많이 애쓰시고 매 강의 시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는 그런 열정의 옷을 입은 애정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 참 행복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 안에 늘 따뜻한 마음을 품고 계셨던 우리 선생님.

병상에 계실 때도 당신보다 제자들을 더 걱정하셨던 모습이 아른거려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이제는 저희 걱정하지 마시고, 선생님이 온 열정을 다해 키운 제자들이 따로 또 같이 헤쳐모여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저희는 선생님과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 또 선생님의 아름다운 글들을 마음속 깊이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늘 작품을 비판하기 위한 글보다는 작품을 살리기 위한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이 남기신 글들을 보며 문학을 연구하고 평론을 쓴다는 건 작품을, 작가를, 결국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기 위한 것임을 몸소 배웁니다.

비잠재성의 잠재성을, 실패 이전과 결코 같지 않은 실패를, 그러니까 빛의 그림자가 아닌 그림자의 빛을 보는 선생님의 글에서 저희가 앞으로 어떤 글을 써나가야 하는지 배웁니다.

문학을 통해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방법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작품 속에서, 내 안으로부터 찾을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이 너무도 아쉽지만, 아쉬운 만큼 그 짧은 만남에서 얻은 영원한 가르침을 잊지 않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연구자, 더 나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재학생을 대표하여 천서윤(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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