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ㅣ우리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도록 이화 곳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이들의 일과와 삶을 조명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양사·조리장, 캠퍼스 폴리스, 셔틀버스 운전기사,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5월 4주간 연재한다. 

캠퍼스 곳곳을 누비는 셔틀버스 운전 기사 유지석 반장.   이승현 사진기자
캠퍼스 곳곳을 누비는 셔틀버스 운전 기사 유지석 반장. 이승현 사진기자

“빠진 물건 없는지 잘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른 아침, 캠퍼스에 생기를 불어넣는 목소리가 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학생들을 본교 구석구석으로 데려다주는 셔틀버스 운전기사 유지석 반장의 목소리다. 매일 아침 버스에 오르며 마음속으로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는 그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전7시, 유 반장은 학생문화관 옆에 주차된 셔틀버스 앞에서 하루의 여정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이른 시간이지만 유 반장은 잠시 앉을 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운행을 시작하고 나면 버스를 점검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늦어도 7시까지는 출근해야 해요.” 버스 내부에 남아 있는 분실물을 확인하고 외부에 고장이 없는지 확인한다. 유 반장은“이런 게 바닥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타이어 옆에서 못을 주워 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차량 고장 때문에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못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차량 점검이 끝나면 산학협력관으로 가 세차를 한다. 산학협력관 종점에는 셔틀버스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다. 셔틀버스 운전 기사들은 이곳의 휴식 공간에서 아침밥을 먹기도 하고, 오전 운행이 끝나고 40분간의 쉬는 시간 동안 눈을 붙이기도 한다. 유 반장은“전날 비가 오면 원래 (차량이) 더 지저분한데 오늘은 많이 지저분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세차를 끝내고 운행 시작 전 15분 동안 아침 식사를 마친 그는 서둘러 출발 준비를 했다. 본교 셔틀버스는 4대, 운전기사들은 5분 간격으로 움직인다. 산학협력관에서 정문까지 10분 안에 이동하며 각 정류장에서 탑승객들을 태우고 내려줘야 한다. “타고 내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2분 전에는 미리 가 있어야 해요.” 산학협력관에 도착해 다시 출발하기까지 유 반장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2분30초 남짓. 그마저도 첫 차에만 해당하고 이후로는 점점 더 바빠져 도착하자마자 다시 출발하기 일쑤다.

 

따뜻한 인사와 함께 캠퍼스 곳곳으로 학생들을 데려다주는 셔틀버스 운전 기사 유지석 반장.   이승현 사진기자
따뜻한 인사와 함께 캠퍼스 곳곳으로 학생들을 데려다주는 셔틀버스 운전 기사 유지석 반장. 이승현 사진기자

그는 바쁜 운행 일정 속에서도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마이크는 운행 내내 유 반장과 함께한다. 처음부터 인사를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안전 때문에 시작한 거예요.” 매시간 많은 사람이 타는 셔틀버스 특성상 문에 걸리거나 끼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유 반장은“문에 가방 걸립니다, 문 열립니다”라고 말해 사고를 방지한다. 안전 안내를 위해 마련한 마이크는 어느새 교내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말을 전하는 통로가 됐다. 그는 오전7시50분부터 10시까지 운행 코스를 약 26번 도는 동안 매번 인사를 건넸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학생들이 그런 인사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되게 어색해해요. 그러다가 한두 달쯤 되면 고개 숙여 인사해요.” 백미러 너머로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그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군대 운전병부터 마을버스까지 한평생 운전을 해온 베테랑 기사지만 본교에서의 운전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버스가 다니는 길이 무척 가파르고 좁기 때문이다. 그는 근무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본교의 코스가 국내에서 가장 힘들다던 마을버스 코스보다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운전하려고 와서 보니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고요.”

본교에 셔틀버스가 생긴 지 6년째인 2015년부터 8년간 그 역사를 함께한 유 반장은 안전을 고려해 지금의 코스와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그의 가장 큰 바람은 반장으로 있는 동안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다. 반장으로서 현장 책임자를 맡고 있는 그는 “11년 동안 교통사고가 난 적이 없는 것이 기적”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내가 학생들을 다치게 하면 미래가 창창한 사람들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전에 유난히 신경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게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스로 즐겁게 살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일밖에 없거든요.” 그는 “기분이 안 좋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도 웃으면서 인사를 하면 (저도) 즐거워진다”며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낀다. 사람들의 등하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의 하루는 내가 마무리 짓잖아요.” 그는 버스운전의 매력은“퇴근할 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유지석씨는 기숙사에서 산학협력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저녁이면 조명도 들어오고, 남산타워도 보여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제공=유지석씨
유지석씨는 기숙사에서 산학협력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저녁이면 조명도 들어오고, 남산타워도 보여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제공=유지석씨

이런 유 반장에게도 힘이 드는 순간은 있다. “친했던 학생들이 졸업하면 다음부터는 못 보잖아요. 그럴 때 허전하고 되게 힘들죠.” 그가 야간에 셔틀버스 운행을 하던 당시, 야간버스 운전기사는 유 반장 한 명뿐이었다. 매번 다른 사람이 타는 주간버스와는 다르게 야간버스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기숙사로 향하는 학생들을 태운다. 정문에서 기숙사까지 가는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본가가 미국인 학생부터 다른 전공 수업을 청강하는 학생의 이야기까지, 유 반장의 기억 속엔 학생 한 명 한 명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몸이 아플 때도 힘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장을 책임지는 반장이다 보니 아파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아니고서는 늘 출근해야 한다. 탑승객들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 될 때가 많다. 그는 덤덤하게 “웬만해서는 약을 잘 안 먹는다”며 “약을 먹으면 멍해져서 일을 잘 못 한다”고 말했다. 보람찬 순간부터 힘든 순간까지 모두 본교 학생들과 관련된 일이다. 일과 학교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졌다.

유 반장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본교에서 일했지만 “여기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두운 밤을 지나 매일 아침이 밝아오듯이 학생들의 밝은 시작을 응원하는 유 반장의 인사도 매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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