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우리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도록 이화 곳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이들의 일과와 삶을 조명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양사·조리장, 경비원, 청소노동자, 셔틀버스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5월 4주간 연재한다. 

 

중앙도서관 앞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건물, 바로 헬렌관이다. 주로 한 그릇 음식으로 메뉴가 구성된 헬렌관 식당은 매일 이화인들의 점심을 책임진다. 하루에 약 200그릇을 만들지만 일하는 사람은 4명뿐이다. 그중 업무의 대부분을 도맡아 하는 조광희 조리장(60)과 이숙희 영양사(38)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화인의 식사를 책임지는 헬렌관 이숙희 영양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조광희 조리장(왼쪽에서 세 번째). 박성빈 사진기자
이화인의 식사를 책임지는 헬렌관 이숙희 영양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조광희 조리장(왼쪽에서 세 번째). 박성빈 사진기자

오전11시부터 배식이 시작되지만 헬렌관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조 조리장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해가 뜨는 오전6시에 눈을 뜬다. 버스를 타고 오전7시~8시 사이에 출근하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그는 “매일 오는 급식실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고 말했다. 도착하면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는 망으로 깔끔히 올려 묶는다. 시간에 맞춰 음식을 내야 하므로 한시도 쉴 틈이 없다. 200인분이 넘는 식사를 요리하는 건 놀랍게도 전부 그의 몫이다. “보조 여사님이 두 분 계시긴 하지만 음식 맛을 내고 요리하는 건 전부 제가 해요.”

그 뒤에는 이 영양사의 노력도 있다. 영양사와 조리장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소통하는 짝꿍이다. 영양사는 조리장이 조리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식단을 짜는 일부터 재료 발주, 위생 점검 같은 일까지 다 해요.” 오전10시부터는 이 영양사도 함께 음식을 차리고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오전11시가 되면 학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게 간단하게 말씀드린 거지만 조리장님이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거의 혼자 일을 다 하시기 때문에 되게 바쁘세요.” 그가 덧붙였다. 오후2시 배식이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은 그제서야 식사를 한다. 그날의 식당 메뉴가 둘의 점심이 된다. 

 

이화인의 신선하고 안전한 식사를 위해 이숙희 영양사가 식재료를 검수하고 있다. 박성빈 사진기자
이화인의 신선하고 안전한 식사를 위해 이숙희 영양사가 식재료를 검수하고 있다. 박성빈 사진기자

두 사람은 학생들에게 반응이 뜨거웠던 메뉴들도 생생히 기억한다. 5년째 본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영양사가 처음으로 일하게 된 식당은 공대 식당이었다. 그는 “그때가 겨울이어서 찌개나 뚝배기류를 냈는데 돈가스 김치나베가 많이 팔렸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영양사기 때문에 영양도 따지지만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식단을 짠다"고 말했다. 소고기 샤브샤브나 철판 닭갈비 같은 메뉴도 인기가 많다. 둘은 메뉴를 얘기하던 중 “요즘 학생들은 위에 치즈 뿌려주는 걸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기도 했다. 

조 조리장이 처음부터 조리사 일을 했던 건 아니다. 원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 사무실에서 일했다. 당시 여느 주부가 그러했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뒀다. “애들이 크고 나선 경력이 단절됐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찾아보다가 자격증을 따고 이렇게 일하게 됐어요.” 지금은 수많은 학생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밥도 해본 적 없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맏며느리로 들어가서 엄청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넷도 없었던 탓에 친정어머니에게 물어가며 요리했다. 밥 지을 줄도 모르던 새댁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제사 음식을 하면서 요리를 배웠다. 

식구가 많은 것도 한몫했다. 삼 남매의 어머니였던 그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많은 양의 밥을 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긴 거죠. 그래서 직장도 다시 들어간 거고요.” 조 조리장은 잠실세무서, 가톨릭대 학생 식당 등 일하는 곳을 계속해서 옮겨왔다. 본교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일하기 시작했지만 조리사로 일한 시간을 따지자면 베테랑이다. 일하는 곳이 바뀌어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맛'이다. “최대한 맛있게 하려고 노력하죠.”

 

오전9시,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조광희 조리장. 박성빈 사진기자
오전9시,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조광희 조리장. 박성빈 사진기자

조리장이 혼자서 많은 일을 도맡으니 당연히 고되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무거운 조리도구로 일하다 보면 힘이 든다. 그는 “조리사들은 불을 다루다 보니 여름이 되면 특히 힘들다"고 말했다. 조리실 안의 에어컨이 고장나서 여름엔 배로 지친다. 휴식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상황이 열악해도 학생들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즐기는 취미 생활도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다. 조 조리장은 야구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내일 잠실 야구장에서 하는 야구 경기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그의 최애 구단은 LG 트윈스다. 야구 경기가 없는 겨울에는 트로트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는 “엄마들이 그렇죠 뭐”라며 웃었다. 

그런 그는 아이들이 잘 크는 것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잘 커주고 건강하고 그런 게 행복이죠.” 학생들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조 조리장은 “밥을 먹어야 모든 에너지가 나온다"며 “학생들도 더 제대로 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식을 길러본 입장에서 학생들이 점심으로 컵라면 같은 거 먹으면 안타깝거든요.” 조리장과 영양사 둘 다 학생들이 밥을 맛있게 먹고 갈 때 가장 보람차다. 이 영양사는 “학생들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나 ‘더 주세요'라고 말해줄 때 기분이 좋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 조리장은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 영양사도 “이 직업을 평생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학생들이 더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오늘도 학생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헬렌관의 아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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