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봐. 그거 말 되는데?”

공강 시간에 밥을 먹는데 친구가 소속 학과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누구나 무엇이든 조금씩 불만이 있기 마련이고, 친한 친구사이니 지나가듯 하소연한 걸 거다. 하지만 그냥 친구의 푸념 정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말 되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기삿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이걸 주제로 기사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어딜가나 늘 ‘말 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나름 기자가 됐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쓰는 게 쉬워진 건 아니다. 학보에 온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 기자 시절 오보를 낸 적이 있다. 힘들었던 첫 마감이 끝나고 두 번째 마감 때 있었던 일인데, 작가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인 학교 선배를 인터뷰했던 기사였다. 야심차게 선배가 쓴 책도 읽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인터뷰를 갔다. 나름 순조롭게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썼다. 제목도 붙였다. 그리고 지면 신문이 나왔다. 인터뷰한 선배가 고맙다며 신문을 보내달라고 해서 신문을 집으로 보내드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감날 새벽에 졸음을 참으며 썼던 제목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선배는 괜찮다고 했지만, 오보라는 걸 알았던 순간의 기분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등골이 서늘했다. 처음엔 당황했고, 그다음엔 ‘데스크(편집국장, 편집부국장)에 어떻게 말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해준 선배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며칠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야 했고 다음 호 신문에 정정 안내가 나갈 때가 돼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던 것 같다. 이때가 내가 쓰는 기사의 무게를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10번의 마감을 더 하는 동안 기사를 기획할 때부터 신문으로 나갈 때까지 매번 마음을 졸였다. 인터뷰이의 말들은 모두 나의 언어를 통해서만 밖으로 공개된다. 내가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인터뷰이의 생각과 성격,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쓰는 모든 말들은 이대학보의 이름을 걸고 기사라는 형식으로 나가기에 모두 사실이어야 한다. 내가 쓴 단어, 표현 하나하나가 잘못됨이 없어야 한다. 모든 말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한 표현과 단어가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주거나 더 나아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해서 오보를 내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한 표현을 사용하면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기자의 몫이다. 어떤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닌데도 시간을 내준 인터뷰이들, 내 기사를 읽고 하나하나 피드백을 주는 데스크, 무엇보다도 기사를 읽을 독자가 실망하지 않게 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짧았다. 늘 기사가 나가기 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다. 기사가 발행되기 전에는 오해가 생길만한 부분은 없는지, 내가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한쪽으로 치우친 기사는 아닌지 걱정했다. 기사의 무게와 부담감에 눌리지 않고 하나하나 기사를 완성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부담감과 후회 속에서 나는 왜 여전히 기사를 쓰는가. 이 무게를 마땅히 짊어질 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학보사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좁고 편안했던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내 세계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SPC 노동자 사망사고를 취재할 때 SPC 계열사 중 하나인 SPL 평택 공장에 내려가 직접 노동자를 인터뷰했다. 현장의 생생함을 담기 위해 마감 전날 바로 평택으로 달려갔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왔다. 어차피 통금시간이 지난 뒤라 천천히 기숙사로 걸어 올라갔는데 그날 밤에 본 야경이 잊히지 않는다. 처음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앉아 공부만 했던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SPC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이 기사를 시작으로 서울퀴어퍼레이드 장소 사용 불허가 기사, 고등학교 실습생  사망 사건을 다룬 ‘다음 소희’ 영화 감독 인터뷰, 이태원 참사 사고 이후 유가족 간담회 기사를 쓰며 많은 사람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를 전했다는 생각에 기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기자여 강하라.’ 학보사의 선배이자 학보사 기자들의 기사 작성을 지도해주시는 국경없는 기자회 김혜경 기자가 쓴 칼럼에 나와 있는 말이다. 이제야 이 말의 의미가 와닿는다. 나는 남은 일 년 간의 학보사 생활 동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한 명이라도 학보를 읽고, 한 명의 이야기라도 더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책임의 무게를 진 기자여, 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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