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피아프의 묘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공=김현수씨
에디트 피아프의 묘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공=김현수씨

나는 내 생일 이틀 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로 왔다. ‘프랑스까지 가서 공동묘지를? 그것도 생일 이틀 뒤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곳은 언뜻 보면 그냥 정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게다가 쇼팽, 에디트 피아프, 발자크, 몰리에르 등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묘지를 설명해주는 투어도 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도, 상상하기도 힘든 직업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묘지 가이드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가기 전에는 굳이 가이드 투어까지 신청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지만 도착해보니 거대한 규모에 30만 구가 넘는 시신들이 안치되어 있어서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가이드가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갔던 날은 노동절이라서 투어 예약이 불가능했다. 아쉬운 대로라도 지도와 인터넷 설명을 보면서 구경했다. 날씨도 좋고 나무도 울창하고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아서 산책하기에도 적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다들 배낭 하나씩을 메고 열심히 지도를 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때로는 처음 본 사람들끼리도 ‘혹시 몰리에르 묘지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방금 제가 다녀왔어요! 이 길로 쭉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돼요.’라며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보이기도 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무덤을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많은 성당 지하와 심지어는 저택 내에 있기도 하다. 가끔 파리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건물 외벽에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고 꽃다발을 그 옆에 붙여 놓는데 이것도 지하에 그 사람의 관을 보관하고있다는 뜻이다.

페르 라셰즈 묘지는 인물 퀴즈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기도, 아이들이 묘비에 적힌 연도를 빼보는 수학 시간이 되기도 했다. 미로같은 오솔길을 걷고 걷다가 발견한 아는 인물의 묘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 중에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와 <행복한 왕자>를 쓴 오스카 와일드를 꼭 만나고 싶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벤치에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드디어 에디트 피아프 묘 앞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꽃을 놓고 있었다. 내 앞에 온 아이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귀여운 그림을 두고 가기도 했다. 한 분은 그녀의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고 있었다. 팬미팅 현장이 따로 없었다! 나도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으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특별하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립스틱 자국을 남기고 갔다. 이제는 극심한 인기에 못 이겨 유리벽을 만들어 놓았지만, 종이에 입술 도장을 찍어 꽃과 함께 유리 벽 안으로 넣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독일에서 오신 마리아나(Mariana)를 만났다. 관광지가 넘치는 파리에서, 특별히 이곳을 방문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의 팬이어서 파리에 오면 이곳을 꼭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이곳에서 산책도 하고, 묘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쉬는 순간을 가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고 하셨다. 나 또한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양한 형태의 묘비들과 아름다운 조각상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마도 묘지 안에서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도 한때는 페르 라셰즈를 걷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을 금기시하고 묘지를 무섭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에 대한 얘기를 안 하기도 하고, 삶과 죽음을 분명히 구분 짓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 이곳을 산책하며 죽음은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일 수도, 죽음 덕분에 살 수 있다는 생각들을 불어넣었다. 죽는 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남기고, 그 추억은 남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조차 실존하는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의 학기가 마무리되고 교환학생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하루하루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페르 라셰즈를 다녀오며 끝이 있기 때문에 현재를 더 열심히 즐기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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