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사용 가게 지도를 만든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  김아름빛 기자
일회용품 사용 가게 지도를 만든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 김아름빛 기자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시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의 긴 싸움 끝에 2018년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금지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2022년, 일회용품 사용 매장에 대한 단속이 1년 늦춰졌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법에 대한 단속이 유예되며 법을 위반한 매장도 과태료를 물지 않고 있다. 법이 강제하지 않으니 지킬 동기도 사라졌다.

‘알맹상점’의 고금숙 대표는 일회용품 사용 단속을 요구하기 위해 정부와 맞서기 시작했다. 알맹상점은 샴푸, 세제 등을 포장 없이 소분 판매하는 한국 최초의 리필스테이션이다. 고 대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가게를 방관하는 정부를 대신해 ‘일회용품 사용 가게 지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기업과 정부의 환경 정책에 저항하며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왔다. 분리수거가 안 되는 병뚜껑 개선을 촉구하고 다국적 정수 필터 기업인 브리타에 요구해 폐필터 재활용 제도를 이끌어 냈다.

 

강제성 없는 법도 법인가요?

일회용품 사용 금지법이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정부에서 단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법 행위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가게도 있었다. 매장에서 먹어도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준다. 고 대표는 정부 대신 시민들과 함께 감시하기로 했다.

그는 먼저 ‘일사불란’(일회용품 사용 불가 안 하냐) 모니터링단을 만들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모아 가게마다 직접 방문해 일회용품 사용 여부를 체크했다. 40일 동안 352명의 시민이 모였다.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가게를 감독하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난 시민들은 1409곳의 가게를 모니터링했다.고 대표와 동료들은 모니터링 결과로 지도를 만들어 각 자치구에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지도에는 조사한 가게의 약 60%가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이 표시됐다.

고 대표는 “아무도 단속을 안 하면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고 말했다. 법을 만들었으면 사회에 뿌리내리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2018년 일회용품 사용 금지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단속이 없어 일회용품이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여러 환경단체의 항의로 시작된 단속의 힘은 컸다. 고 대표는 “일회용품을 쓰는 카페가 80%였는데 (단속 후) 다회용 컵을 쓰는 카페가 80%가 됐다”고 말했다. “한 번 신고되면 정부에서 경고를 보내고 그다음에는 과태료가 나갑니다. 이러면 아주 빨리 바뀔 수 있는 문제예요.”

단속이 유예된 건 일회용품만이 아니다. 식당 내 일회용 물티슈 사용 금지는 올해 시행 예정이었지만 3년간 연기됐고,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또한 12월로 미뤄졌다. 고 대표는 “법을 만들어도 실행을 안 하니까 기업에게 ‘이 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의 위법행위를 묵인하는 셈이 된 것이다.

 

알맹상점 한편에 위치한 화장품을 리필할 수 있는 곳 . 김아름빛 기자

환경 정책에 관한 작은 것 하나를 이루는 데도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 되풀이되는 싸움에 지치지는 않을까. 고 대표는 “세상은 단선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수많은 상승과 하강이 있었다. 그는 긴 운동의 과정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자고 말한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성과를 내기까지 거의 10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의 변화가 없더라도 바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사회를 바꿔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에 맞서 압력을 행사한 것은 시민들이다. 그는 “환경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환경 운동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실용성과 편리함 때문에 텀블러를 애용했기에 부담 없이 환경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

요하다. 그는 “일회용품 플라스틱은 휴대폰의 기본 설정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 설정이 플라스틱이니 텀블러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텀블러를 쓰면 플라스틱 컵보다 보냉, 보온력도 훨씬 좋을 뿐더러 환경에도 이롭다. 불편함을 조금만 참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여러 재활용 제품을 판매하는 알맹상점. 김아름빛 기자

 

작은 실천이 삶의 변화로

고 대표를 포함한 세 명의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알맹상점이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성이 많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여성이 다수다. 여전히 돌봄과 살림을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동물의 생명과 직결된 비건 문제는 여성에게 훨씬 예민하게 와닿을 수 있다. 여성이 삶에 맞닿은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돌봄과 살림의 의무가 여성의 짐이 되지만 동시에 삶의 전환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모두에게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친환경으로 전환하느냐 멸종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편하고 즐거운 것부터 실천하라”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일회용 물티슈를 거절하고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거절하면 된다. 실천이 어렵다면 다른 사람들이 실천하도록 돕는 방법도 있다. 환경 관련 영상이나 글에 함께 실천해 보자고 댓글을 달면 된다. 작은 의견들이 하나씩 모여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끊임없이 정부와 기업에 맞서 싸우는 고 대표의 원동력은 즐기는 데서 나온다. 그는 의무감보다는 재밌게 활동하라고 조언한다. “하루 실천 못 했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즐겁게 함께 실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됩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