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본교는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2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들을 소개한다. 1657호에서는 이주희 교수(사회학과)를 만나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플랫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늘날 노동은 정규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용어는 2005년부터 학계에서 사용돼왔다. 모든 노동 방식 중 정규직과 가장 먼 형태로, 앱이나 웹사이트와 같은 플랫폼을 매개로 고객과 노동자가 연결돼 소득을 얻는 방식이다. 청년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김과외’, ‘배달의민족’, ‘쿠팡이츠’와 같은 방식이 바로 그 예다.

플랫폼 노동은 진입 장벽이 낮은 대신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불확실한 노동환경 속 청년 플랫폼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사회보장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사회보험의 보호망에 속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사회보험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더라도 이를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청년들에게는 플랫폼 노동이 첫 노동 경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년은 플랫폼의 통제하에서 노동하며 사회정책에 대한 태도를 형성한다.

이주희 교수(사회학과)와 박경진(사회경제협동과정 박사수료)씨, 윤자호(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연구 빈도가 낮았던 청년 플랫폼노동자에 주목했다. 이들은 청년 플랫폼노동자 12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질적연구를 통해 그들의 노동 경험과 사회보험에 대한 태도를 알아봤다.

 

이주희 교수는 플랫폼 노동의 지속적 출현에 따라 종합적인 사회보험 정책을 위한 근본적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이주희 교수는 플랫폼 노동의 지속적 출현에 따라 종합적인 사회보험 정책을 위한 근본적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자율성 보장하는 플랫폼 노동의 이면

플랫폼 노동은 자유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위험과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이 교수는 불안정성의 이유를 ‘양면성’으로 설명한다. 플랫폼노동자들은 자율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억압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속박 아래 규칙적으로 일하는 것과 달리, 플랫폼노동자들은 업무 시간과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언제 일할지, 얼마나 일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 언뜻 보면 자율성이 보장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플랫폼노동자는 플랫폼에 의해 과열된 경쟁에 뛰어들면서 시간을 통제당한다. 플랫폼 노동은 진입장벽이 낮고, 낮은 진입장벽은 과다한 노동 공급을 유발한다. 이용자들은 플랫폼에서 단가와 평점을 보고 노동자를 선택하기에 경쟁은 과열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능력주의를 선호하고 기업가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 교수는 “(플랫폼에서) 노동자들이 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차별적 성과 보상을 당연시하게 된다”며 “이는 일감 확보를 위한 경쟁과열로 이어지고 점차 플랫폼노동자는 노동시장에 종속되고 상품화된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노동의 건당 인건비 지급 관행은 실제로 노동자가 장시간 일하도록 통제한다. 일감의 배정을 기다리는 대기시간 또한 노동시간을 불명확하게 만든다. 특히 배달 플랫폼노동자의 경우 모든 연구참여자가 매주 6일간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노동하는 과정에서 일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고, “영업사원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하며 장시간 일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상실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플랫폼 노동의 장점으로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점”을 꼽았다. “플랫폼은 노동자가 원치 않는 일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만들고 장시간 노동과 위험을 감내하게 만들지만 노동자들은 그들이 자율적으로 일감을 선택하고 있다고 착각해요.”(이 교수)

 

청년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사회보험은 필요해

연구 결과 청년 플랫폼노동자들은 사회보험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이들은 국가로부터의 복지 혜택을 경험한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닥칠 질병의 위험성과 노령기 생계 보장의 중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자가 사회보험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진입장벽이 높다고 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노동 환경과 과도한 경쟁 속에 노출된 플랫폼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사회보장은 절실하다. 연구참여자들 또한 사회보험 가입을 희망했으며 사회보험을 플랫폼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고용불안의 경험이 많아 고용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다른 임금노동자들이 받는 실업급여 혜택을 부러워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 연구참여자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보험 종류는 플랫폼 노동의 종류에 따라 달랐다. 노동과정에서 위험도가 높은 경우에는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배달 플랫폼노동자들의 경우, 사고 등 사회적 이슈로 산재보험 가입이 본격화되자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졌다. 청년들이 효능감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은 선호도와 신뢰도가 낮았다.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 사회보험도 변화해야

플랫폼노동자들은 사회 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다. 과거 사회보험과 노동법이 직접고용 정규직 중심으로 체계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사회보험은 한 사업장에 전속해서 근무하였음을 입증해야만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플랫폼노동자들은 한 개의 플랫폼에서 장기적으로 노동하기가 어렵고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현재 포괄적 사회보험 제도를 위해 ◆전속성의 완화나 전국민고용보험과 같은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5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보험료징수법 하위법령을 일부 개정했다. 이로써 2023년 7월1일부터 특수형태노동자와 플랫폼 종사자도 일하다가 다칠 경우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산재보험법은 전속성을 보험 가입요건으로 뒀으나, 개정되며 전속성 요건이 삭제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법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현재 약 80만 명에서 173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의 법규는 새로운 플랫폼 노동형태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현실을 완벽히 포괄하지는 못한다. 이 교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을 통해 플랫폼노동자를 사회보험제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임금노동자와 동일하게 4대 보험을 ‘당연의무적용’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도 제안했다.

“현재 노동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 빠르게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어요. 개별 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사회보험 정책을 위한 근본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 전속성: 하나의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일했는지 보는 기준. 월 노동시간이 93시간 이상이거나 소득이 115만 원 이상이면 전속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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