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큰 그림을 그려야, 잔잔바리는 금방 죽어"

서울시 구로구의 한 건물에 위치한 켐토피아 경영이사실에 들어서자 새하얀 화이트보드 위 빨간 보드마커로 강조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산업 전반을 이끌어가겠다는 대표의 당찬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2002년 어머니 집 방 한 칸을 빌려 직원 한 명과 시작한 켐토피아는 20년이 지나 직원 수 150명을 훌쩍 넘긴 기업으로 성장했다. 처음엔 기업이 위험한 화학물질을 배출하지 않도록 심사하는 컨설팅 기업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환경·안전·보건 영역까지 발을 넓혔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에 위험한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근로자들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첨단기기를 통해 감독한다. 대기의 오염물질을 감지하는 특수 드론도 제작한다. 

작은 2인 기업에서 시작해 20년동안 큰 발전을 이룬 기업 ‘켐토피아'의 대표 박상희씨. 탄탄한 기술력에 가능성을 믿는 실행력이 합쳐져 켐토피아는 더욱 성장할 예정이다. <strong> 이자빈 사진기자
작은 2인 기업에서 시작해 20년동안 큰 발전을 이룬 기업 ‘켐토피아'의 대표 박상희씨. 탄탄한 기술력에 가능성을 믿는 실행력이 합쳐져 켐토피아는 더욱 성장할 예정이다. 이자빈 사진기자

켐토피아만의 차별점은 기존의 근무환경감독 방식에 스마트 기술을 접목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만 중점을 뒀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대표적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다. 심혈관 질환이 있거나 음주를 한 사람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웨어러블 기기는 자동으로 ‘삑삑’ 소리를 내며 근로자에게 경고한다.  안전 장비 미착용도 실시간 영상 모니터링을 통해 즉시 잡아낼 수 있다. 별도의 감독 인력 없이도 편하고 정확하게 근로자들의 일상이 안전하도록 관리한다.

쉴 틈 없는 일정으로 식사를 거르는 게 태반이지만 일이 가장 재미있다는 켐토피아 대표 박상희(화학∙94년졸)씨를 만났다. 그는 본교 화학과를 1994년에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화학과 석사(물리화학)를, 연세대에서 보건학 박사(환경보건)를 취득했다.

 

경영자로서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다

켐토피아 설립 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평가원으로 근무하던 박씨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케미컬 컨퍼런스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 운영하는 1인 기업이 화학 법규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학법규 컨설팅은 기업의 화학물질 법규 준수 여부를 관리하는 일로, 회사 부서 중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외국에서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한국에서의 화학 법규 준수는 최소한의 법 조항만 지키는 정도에 그쳤다.

해외의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박씨는 2002년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화학물질 규제 업무가 산업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이끈 것이다. “연구원 외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내 지식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죠.” 창업 초기에는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주를 이뤘으나 가습기 살균제, 불산 누출 등의 사건이 이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국내 기업 역시 화학물질 규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개업 후 사무실은 쉴 틈 없이 울리는 전화와 주문을 의뢰하는 팩스 소리로 항상 시끌벅적했다. 승승장구하던 중 그에게 뼈아픈 성장통이 찾아왔다. 신뢰하던 직원이 회사계약을 본인 몫으로 몰래 채간 것이다. 직원들을 믿었던 그는 기본 계약서 한 장조차 쓰지 않았기에 어떤 법적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박씨는 경영자로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아픔을 발판 삼아 그는 인사관리를 비롯한 기초적인 경영지식과 법무 절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어나더레벨'을 꿈꾸는 켐토피아. <strong> 이자빈 사진기자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어나더레벨'을 꿈꾸는 켐토피아. 이자빈 사진기자

 

안하면 0, 하면 +1이라면 어느 쪽을

박씨는 경영자로서의 삶이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보지도 않고 다들 왜 안된다고 할까요? 안 하면 0이고, 하면 +1인데 말이죠.” 제품 사용자들이 화학물질로 위험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안전 정보 제공문서인 ◆MSDS를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서를 작성하려면 한 사람이 꼬박 5일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특히 수만 가지의 제품이 있는 페인트의 경우 문서 작성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씨는 짧은 인생이 고작 문서작성에 묶여있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고 문서작성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돌입했다.

그 결과, 5일이 걸리던 문서작성은 3분으로 단축됐고 켐토피아는 MSDS 자동 생성 시스템을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수출하게 됐다. 그는 뭐든지 일단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결과물로 보여줘야 해요. 그러면 반대하던 팀원들도 다시금 쳐다보게 되고, 그렇게 참여하고 개선되면서 제품이 탄생해요.”

요즘에는 사람이 아닌 드론이 공장을 날아다니며 공기오염을 측정한다. 박씨는 드론을 활용한 모니터링에 적극 찬성했으나 드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실제로 드론의 날개가 돌아가며 생긴 바람은 공기농도를 희석시켰고 제대로 된 공기오염도 측정을 방해했다. 박씨는 해당 드론으로 얻은 데이터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드론 개조에 뛰어들었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 일을 민간기업이 주도할 필요가 없다는 몇몇 반대에도 주변 공기의 희석을 유발하는 ◆와류현상이 최소화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개발팀과의 협력 끝에 드론 개조에 성공했다.

공기오염도 측정을 위해 시료를 채취하는 켐토피아 드론의 모습. 제공=켐토피아
공기오염도 측정을 위해 시료를 채취하는 켐토피아 드론의 모습. 제공=켐토피아

 

기초는 나의 힘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술에 융합하는 박씨만의 비결을 묻자 그는 ‘기초’라고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를 믿고 사랑하며 다른 기술과 융합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쪽 업계는 대부분 기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화학과 환경을 전공해서 드론개발에서 공기가 희석되는 과정을 알아챌 수 있었고 이렇게 환경 질을 감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의 인생 목표에 관해 묻자 그는 업계 1위를 넘어 켐토피아를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어나더 레벨’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흔히들 상장을 성공의 끝처럼 생각하는데 제게는 출발이에요.”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빨간색으로 쓰여 있던 문구의 의미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놓인 성공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닌, 전체 생태계를 진두지휘하는 목표로 달려가는 박씨였다.

박씨는 후배들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보편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뭔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사람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대생들은 항상 남들과 달라 기대가 됐죠.” 화학과 후배들을 향한 응원도 덧붙였다. "화학공부가 때로는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에 나와 보니 우리가 공부했던 내용들이 사회에는 정말 필요하더라고요." 그는 앞으로도 당연함에 물음표를 달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기업의 안전을 책임져 나갈 예정이다.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 물질안전보건자료.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기재한 문서. 

◆와류현상: 공기나 물 따위가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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