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2월의 어느 날, 이지선(유아교육과·01년졸)씨는 본교를 다시 찾았다. 대동제 줄다리기로 북적거리던 드넓은 운동장은 온데간데없고 웅장한 ECC가 그를 반겼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처럼 드나들던 중앙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연구실이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약 20년의 세월동안 바뀐 건 학교만이 아니었다. 발달이 느린 아동을 위해 놀이치료를 공부하고자 했던 유아교육과 학생은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그는 본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Boston University)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ColumbiaUniversity)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미국 UCLA에서는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엔 갑작스러운 사고로 40번이 넘는 수술을 받고 당시 3급 장애진단을 받았다. 2023학년도 1학기 본교 교수로 돌아온 이지선 교수(사회복지학과)를 2월28일 ECC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학기에 <장애인복지론>, <1학년세미나(사회대)>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을 좋아하는 그에게 모교로의 교수 임용은 “너무 큰 강도의 행복”이었다. 본교에서의 첫 수업을 이틀 남기고 밝게 미소 짓는 얼굴에서 그의 설렘이 느껴졌다.

이지선 교수는 23년 만에 지도자로서 본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권아영 사진기자
이지선 교수는 23년 만에 지도자로서 본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권아영 사진기자

 

아이들을 사랑하던 샬랄라 공주

이 교수는 그의 학창 시절을 “생각보다 아주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범대학 건물 맨 꼭대기 4층에 위치한 유아교육과 율동실에서 대부분의 수업을 들었다. 지각을 할 때면 교수님을 앞에 두고 조용히 신발을 벗어 율동실로 들어가곤 했다. 공부보다는 놀길 좋아하던 1학년을 지나, 시험기간이면 중앙도서관에 들어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나올 정도로 학업에 매진하는 모범생이 됐다. “중앙도서관에서 항상 고민했어요. 오늘은 여기를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별명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샬랄라 공주’였다. 고민을 겉으로 드러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항상 웃는 표정으로 걱정 없이 살아가는 듯 보여서다.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실제 유치원에서처럼 수업을 준비해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요리 수업을 준비했는데 제 목소리 톤이 높다 보니 아이들이 조심하기보다는 너무 즐거워하더라고요. 그게 고민이었죠.”

4학년 1학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유치원으로 실습을 나갔다. 유치원에서 만난 여러 아이 중에서도 무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발달이 느린 아동들을 위한 유아심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석사 과정을 준비하려던 2000년 여름, 7월30일 그는 사고를 만났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여느 때처럼 본교 후문에서 오빠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이 그에게 돌진했다.

 

도움받은 기억에서 출발한 유학길

여름에 사고를 만난 그는 당연히 크리스마스 전에는 따뜻한 집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몸 상태는 오히려 악화했다. 병원에서 보내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였지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보내온 수십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절망의 순간을 이겨낼 힘을 줬다. 손조차 편히 사용할 수 없던 그는 힘들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벽에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잘 알지 못했던 친구,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동창 그리고 일상의 작은 고민을 위해 찾았던 본교 상담센터 선생님까지. 수많은 사람이 보내온 카드는 병실 벽을 가득 메웠다.

어려운 순간에 받은 따뜻한 도움의 기억은 생각도 못 했던 재활상담학과 사회복지학의 길로 이끌었다. “어떤 형태의 어려움이든 혼자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더라고요. 도움을 이끌어 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시키는 것이 사회복지가 하는 일이에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고된 회복 과정을 견뎌온 이 교수와 달리 병원에는 주변의 어떤 손길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고립된 사람들을 그저 개인의 불행으로 바라봤죠. 이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게 나는 뭘 할 수 있을지를 계속 떠올렸어요.”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돕는 사람이 되고자 일면식도 없던 학문의 길을 걷게 됐다. 때론 지치고, 외롭던 미국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초보 교수의 좌충우돌 성장기

이지선 교수는 23년 만에 지도자로서 본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권아영 사진기자
이지선 교수는 23년 만에 지도자로서 본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권아영 사진기자

“몇 차례나 도시를 옮겨 다니고, 언어로 골머리를 앓는 유학 생활이 12년이나 지속될 줄 알았다면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을까 싶어요.”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한번 떠나보자는 낙천적인 ‘샬랄라 공주’의 성향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아침마다 그를 깨워줄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떠난 유학 생활은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다.

‘짐 싸기의 달인’이 될 정도로 자주 집을 옮겨 다녔고, 실제 클라이언트를 만나 상담하는 재활상담학 실습에서는 단어장에도 없는 낯선 영어단어가 등장했다. “정신장애인들이 복용하는 약 이름인데 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죠.” 긴 유학을 마친 그는 한국에 돌아와 2017년 한동대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교수로서의 첫 수업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1시간15분의 수업을 위해 준비한 내용은 30분 만에 고갈됐다. “저도 제가 이렇게 떨 줄은 정말 몰랐는데 특히나 또 영어 수업이었어요. 한국인들 앞에서 영어 수업이라니요.” 초보교수였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은 그를 잘 따랐다. 스승의 날에는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라며 주의를 끈 학생을 시작으로 다 같이 그를 위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부끄러워 숨어버린 이 교수는 “내가 이렇게 감사한 이벤트를 받을 자격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이 교수에게 감사를 표현하고자 일부러 강연에 찾아오는 졸업생들도 있었다.

 

“아싸라비아!” 꽤 괜찮은 해피엔딩

1월4일, 본교 교수로 채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볼엔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여기저기서 축하 소식이 들려왔고, 아팠던 시절부터 진심으로 그를 응원해온 많은 사람을봐서라도 “정말 더 잘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을 시혜적인 태도가 아닌 사랑하는 이웃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얻길 바란다. “내가 만나게 될 장애인이 내 친구라면, 저 노인분들이 내 할아버지라면…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당장 사회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아싸라비아!” 사소한 기쁨이 생겼을 때마다 이 교수가 외치는 말이다. 그는 일상 속 아주 작은 행복을 인생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요즘 그의 행복은 오빠와 부모님, 조카들과 함께하는 일요일 저녁 식사다. 지난주에는 꼬막 비빔밥을 먹으며 개학을 앞둔 조카들이 교복을 맞춘 얘기 등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 교수가 매일 ‘꽤 괜찮은 해피엔딩’으로 달려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현재처한 상황에서 나의 미래를 속단하지 않고, 일단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교에서 계속될 그의 수업은 잔잔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차오르던 그의 인생을 다시 새롭게 물들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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