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Y2K가 돌아와도, 아날로그가 유행해도 우리는 현재에 머물러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1년 전, 처음으로 핸드폰을 가졌었다. 이제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슬림팬더폰. 그 시절 핸드폰이 으레 그렇듯, 문자와 전화, 유치한 미니게임이 전부였지만 2011년의 12살에겐 첨단의 극이었다. 매일 밤 친구와 몰래 숨죽여 키득이는 전화와 문자의 재미에 빠진 덕분에 늘 배터리와 긴장의 줄다리기를 탔다.

학교가 끝나고 마지막 한 칸의 수명이 다했을 때, 나를 구한 건 지겹도록 낡아빠진 아날로그의 산물이었다. 사실 자주 있던 일이었기에 익숙한 걸음을 옮겨 도착한 버스정거장 옆 공중전화박스에서는 비릿한 녹 냄새가 났다. 코트 주머니, 바지 뒷주머니, 책가방 바닥, 마지막 보루인 신발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찾은 동전 하나면 끝. 어느새 땀이 찬 손을 맴돌던 동전이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수화음이 걸린다. 짜증이 날 정도로 여유로운 클래식, 사이보그가 전하는 몇 번의 안내음성을 지나면 비로소 연결되는 그 끝엔 진심이 기다리고 있다.

“나 친구랑 놀다가 지금 집 가.” 내가 오늘 하루 무얼 했는지,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았는지, 급식에는 뭐가 나왔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지 못하는 10초에 담기는 저 짧은 대화가 철부지 초등학생과 업무에 지친 엄마가 나눌 수 있는 숨 가쁜 진심이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딜 가도 충전이 되고 편의점에서는 일회용 배터리도 파는 편리의 시대 아닌가. 시간과 마음은 비례관계가 아닌대도 가끔은 유독 아날로그로 전하는 안부가, 편지가 더 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평균 스크린 타임 12시간을 자랑하는 주제에 감히 테크의 발전을 탓하는 건 아니다. 다만, 길을 걷다 우연히 낡은 공중전화박스를 마주치는 날에 주머니를 찾아 다이얼을 눌러보자. 어쩌면, 이 공중전화박스의 탈을 쓴 타디스에서 우리는 잊었던 보물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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