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1일 오후5시50분. 제주도 여행 마지막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202번 버스에 탑승했다. 강한 햇빛에 땀은 쉴 새 없이 흘렀고 가야 하는 정류장은 20개가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빠른 택시보다 느린 버스를 택했다.

여행 출발 직전까지 과연 여행을 가는 게 맞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급한 연락이 올까 봐 휴대폰 소리를 최대로 켜놓았다. 마치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만 같아 일종의 죄의식을 가지고 여정을 시작했다. 거대한 마케팅 시장이 만들어놓은 ‘MZ세대’와 ‘갓생’의 이미지가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갓생살기’라고 칭하지만 매일 무엇을 성취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가 됐다. 독서 또는 운동 인증, 블로그를 활용한 주간일기 등 각종 ‘챌린지’가 넘쳐난다.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갉아먹는 치밀한 마케팅이 될 수 있다. 하루 일정을 세우고 공유할 수 있는 앱 ‘투 두 메이트’(to do mate)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지만, 작은 일상까지 비교하게 만들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지난해 한 연구 결과는 다양한 세대 중 Z세대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고 발표했다.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매우 받는다는 응답 비율도 Z세대가 가장 높았다. 내재된 불안감은 이미 쉴 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만든다.

꼭 무언가를 성취하고 기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속도로 나아가면 또 다른 풍경이 나를 마주하고 있다. 가끔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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