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strong> 강동주 기자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강동주 기자

 ‘평등해야 안전하다’ 9월24일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직장 동료이자 스토커였던 31세 남성 전주환에게 살해당한 이후, 신당역 화장실 앞 추모공간에 붙은 글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는 1.6일마다 한 명의 여성이 남편 또는 애인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했다. 같은 해 UN이 전 세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조사에 따르면 살인 범죄 여성 피해자의 80%는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로부터 살해당했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평등한가, 그리고 안전한가. 

 

여성의 삶은 안전한가

8월26일 여성가족부는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만든 이번 보고서는 여성폭력을 국제적 기준에 맞춰 유형화해 총체적 시각에서 피해를 파악했다. 설문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여성 7000명을 대상으로 약 2달간 진행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생 동안 신체적 폭력과 성적 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한 여성의 비율은 26.4%다. 여성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 것이다. 또한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 중 40.3%는 친밀관계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보고서는 20대 여성이 폭력에 가장 취약함을 시사한다. 폭력을 경험한 이들 중 가장 심각한 성적 폭력 파해가  20세~29세에 발생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1%, 가장 심각한 스토킹 피해가 20세~29세에 발생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5.1%에 달했다. 

보고서는 기존 실태조사에서 파악할 수 없었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과, 스토킹 등 최근에야 가시화 및 공론화되기 시작한 유형의 폭력에 대한 통계를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피해자는 보호받고 있는가 

데이트폭력의 경우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음에도 한국에는 이를 별도로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4월2일 인천에서는 한 여성이 교제 관계에 있던 남성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 5시간 동안 감금돼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이별 통보를 번복한 뒤에야 폭행을 멈췄고, 피해자는 병원에서 전치 4주 판정을 받았다. 갈비뼈 5대가 부러지거나 금이 갔고, 온몸에 멍이 가득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떠난 직후 경찰에 신고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 문이 잠겨있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체포하지 않았다. 사건 2주 뒤에야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가해자가 초범이며 주거와 가족관계 등이 확실하다는 점’을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현재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가 신고·접수된 후 경찰이 법원에 신청해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긴급응급조치를 취할 경우 피해자에 최대 1개월의 접근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잠정조치를 취하면 접근 금지 명령이 2개월간 지속되며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최대 6개월까지 연장 가능하다. 가해자를 구치소에 유치하는 것은 잠정조치에서만 명령 가능하며, 이는 최대 1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

인천 데이트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긴급응급조치로 1개월 접근금지를 명령받았다. 하지만 해당 조치가 만료되자마자 피해자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에게 십여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며, 집 앞에 찾아오기도 했다.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를 무시하는 사례도 많다. 그중 하나는 2021년 11월 김병찬이 피해 여성을 5개월간 스토킹하다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김병찬은 잠정조치 처분을 받아 피해 여성에게 접근 금지를 명령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피해 여성에게 접근해 살해했으며 경찰은 이를 막지 못했다. 

현재 접근 금지 조치는 별도의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며 피해자에게 제공되는 스마트워치가 피해자 보호의 전부다. 하지만 이 스마트워치는 피해자의 행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지적되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여성폭력실태조사 연구원들 역시 보호 조치의 실효성 문제에 공감했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긴급임시조치와 잠정조치를 위반했을 경우 ‘형사처벌 규정의 도입 등의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방안’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현재 제도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재차 접근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는 그 기간이 짧아서 피해자를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어려움’을 지적하며 피해자 보호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명령을 제정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정현미 교수(법학과)는 스토킹 범죄가 살인 등의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인 잠정조치를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현행 제도마저 적극 활용되지 않고 있다. 정 원장은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경찰, 검찰, 법원 관계자들의 경각심을 고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법원이 스토킹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을 빠르게 캐치하지 못하고 이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스토킹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법원이 공개한 ‘주거관계가 확실'하다거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등의 사유는 범죄와 전혀 상관 없는 문제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만 스토킹을 저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를 잘 다니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법원이 얕은 통찰로 반복적으로 관련 범죄 구속 영장을 기각하는 것을 비판했다. 

경찰 역시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정 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경우 다른 범죄와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더 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유치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스토킹 사례에 잠정조치 중 유치제도가 가해지는 경우는 매우 적다. 

잠정조치 처분을 통해 가해자는 1개월 간 구치소에 유치될 수 있다. 유치제도는 가해자를 사회에서 일정 기간 격리하기 때문에 기간이 짧더라도 이 자체가 가해자에게 주는 타격이 클 수 있다. 정 교수는 “스토킹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만큼 미리 예방하려면 조금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경찰이 방어적 태도로 낮은 수준의 처분을 요청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앞으로 스토킹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좀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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