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strong> 강동주 기자
9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강동주 기자

 

신당역 사건에 분노하며 9월22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각역에 모였다. 이들은 무대에 올라 발언하고 함께 행진하며 좌절과 연대를 나눴다. 

또 한 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직장 동료였던 남성으로부터 불법촬영과 스토킹에 시달리던 20대 역무원은 결국 가해자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 불법촬영과 스토킹 혐의로 진행된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이었다.  

사건이 알려진 후 사회는 좌절과 분노로 가득했다. 6년 전 강남역 지하철에서 일어났던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신당역 사건, 사람들은 ‘막을 수 있었다’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토킹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신당역 사건'에는 스토킹과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건에 관여할 수 있었던 책임 당사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피해자는 이미 가해자 전주환을 신고 및 고소한 상태였으며, 전주환은 직장에서도 직위해제 됐다. 그럼에도 전주환은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고, 피해자에게 접근 가능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사건 책임자들에 대한 공분이 일었다.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법원, 두 번째 고소 건에 대해 영장조차 신청하지 않은 경찰에 분노했다. 가해자를 직위해제 처리 한 이후에도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던 서울교통공사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한 신당역 화장실 앞에 추모공간을 만들어 애도를 표했다. 추모공간에는 수많은 국화꽃과 고인을 향한 애도사가 붙어 있었다. 신당역 화장실 앞 벽에는 ‘우리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우연히 살았습니다’, ‘강남역 이후 우리는 아직도 안전하지 않다’, ‘막을 수 있었다’ 등의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strong>강동주 기자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강동주 기자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 <strong> 강동주 기자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 강동주 기자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성계와 노동계도 ‘신당역 사건’에 함께했다. 9월22일 오후7시 보신각 앞에서는 여성노동연대회의에서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집회 이틀 전에 집회 공지가 올라올 만큼 급하게 진행된 행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는 약 500명의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 중에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있었다. 박 전 위원장은 자유 발언의 기회를 얻어 무대에 올라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나라는 지속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집회 중에는 흰 끈을 각자의 옆사람과 연결해 묶고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모두에게 안전한 일상이 가능할 때까지 연대하고 연결되자는 의미의 행위였다. 보신각에서 시작해 시청역, 광화문역을 지나 다시 보신각으로 도심 한복판에는 애도와 분노가 뒤섞인 행렬이 이어졌다. 

참여자의 손에는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쓰인 피켓이 있었다. 선두를 이끄는 음향 트럭을 따라 걷는 시민들은 다양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집회를 기획한 단체 중 하나인 한국여성민우회 소속 활동가 행크는 “개인들이 연결성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집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신당역 현장 앞에 추모공간을 만들고 계속 방문하고 흔적을 남기려는 행위가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다 함께 모여서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회를 통해 연대의 힘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활동가 행크는 “슬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추모를 넘어서서 정부에 당당하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자 했다"며 사회가 한 발자국 나아가기를 바랐다.

 

9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집회 참석자들이 플래시를 켜고 흰 끈을 나란히 잡고 있는 모습. <strong> 권아영 사진기자
9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집회 참석자들이 플래시를 켜고 흰 끈을 나란히 잡고 있는 모습. 권아영 사진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부터 광화문까지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표어를 들고 행진했다.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부터 광화문까지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표어를 들고 행진했다. 권아영 사진기자

 

이화에서 이어진 추모의 물결 

본교에서도 피해자를 애도하고 사회에 분노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김예린(문정·22) 씨는 신당역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다녀왔다. 잠시 들러 헌화만 드리고 올 생각으로 방문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보니 눈물이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며 “강남역 사건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추모 공간에 “여성 폭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조차 없는 여성가족부 장관과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도 공범”이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돌아왔다. 

본교 노학연대모임 바위를 비롯한 학내 단체들도 신당역 추모공간을 방문했다. 바위 대표 박서림(체육·20)씨는 학교 안에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신당역까지 가지 못했어도, 이 문제에 공감하는 분들 분명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추모 공간에 방문하지 못한 이화의 구성원들도 사건에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본교 학생문화관(학문관) 1층에는 신당역 사건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 공간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전한 일상을 원합니다’, ‘사회가 공범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추모 공간 옆 게시판에는 9월28일 기준 11개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신당역 사건’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글이 쓰였다. 익명의 이화인이 작성한 대자보에는 ‘여성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며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을 잃어야 하냐’는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익명 대자보는 ‘신당역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짚어내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범죄, 성차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인원감축, 차별이 만들어낸 죽음입니다.”

 

본교 학문관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 공간 <strong> 김지원 기자
본교 학문관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 공간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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