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강동주 기자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사건 추모공간. 강동주 기자

여성을 위한 일터는 없었다. 불법촬영과 스토킹에 시달리던 여성 역무원이 신당역 화장실에서 직장동료였던 가해자 전주환에게 살해 당했다. ‘신당역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사는 가운데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던 국가와 기관의 책임이 드러났다. 전주환만이 가해자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 경찰, 법원 그리고 정치인들까지 ‘신당역 사건’ 뒤에는 구조적 차별이 있었다.

 

신당역 비극, 피해자는 최선을 다했다

9월14일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하던 20대 여성역무원이 생을 달리했다. 가해자 전주환은 불법촬영과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피해자를 압박해온 과거 직장동료였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피해자가 불법촬영, 만남강요, 스토킹 등으로 진행한 고소에 대한 재판 선고일 하루 전이었다.

가해자는 2018년부터 피해자에게 만남을 요구하며 피해자를 스토킹했다. YTN보도에 따르면 가해자는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한 후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351차례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하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피해자는 2021년 10월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2022년 1월27일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첫 번째 고소 이후 10월13일 서울교통공사(공사)는 가해자의 직위를 해제했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10월 첫 번째 고소 이후 경찰은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경찰은 112 시스템 등록 등 한 달간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를 취했지만 ‘한 달간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조치를 해제했다.

여성계는 분노했다. 고소 이후 가해자가 “내 인생을 망치고 싶냐”, “원하는 조건이 뭐냐” 등 피해자를 협박하며 합의를 종용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JTBC 보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앎(가명) 활동가는 9월16일 신당역에서 열린 추모집회에서 “피해자의 판단만으로 경찰이 신변보호를 종료한 것이 적절하냐”며 “위험성을 판단할 책임을 피해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변명”이라 발언했다. 이에 대해 정현미 교수(법학과)는 “신고 후 가해자가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선혜 교수(여성학과)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공사 직원이었고 피해자가 일하는 중에 사건이 발생했다”며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 할 수 있도록 공사에서 예방조치를 취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활동가 역시 “사업주는 노동자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공사가 이런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해자가 온라인 공간에서 피해자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문제였다. 직위는 해제된 상태였지만 형사처벌 이전이라 징계 조치가 내려지지 않아 가해자가 공사 인트라넷에 접속 가능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인트라넷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표, 업무 일정 등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활동가는 “직위 해제에도 불구하고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건 공사의 허술한 조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활동가는 “물리적 공간 배제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의 접근 배제도 중요한 문제인데 서울교통공사가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9월22일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시위 모습. 김지원 기자
9월22일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시위 모습. 김지원 기자

 

이면에는 성차별적 직장 문화가 있었다

피해자는 일터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회사에 알리는 대신 경찰에 먼저 신고했다. 배 활동가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은 이유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동생에 따르면 경찰 신고 후 전주환의 직무가 정지되자 직원들은 ‘그 사람(전주환)은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누가 신고했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여성민우회 행크(가명) 활동가는 “사내에 피해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장 동료들은 가해자를 두둔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고, 피해자는 이런 2차 가해에 노출됐던 것”이라며 공사 내부 성차별적 문화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건이 알려진 후 공사가 행한 성차별적 관행들이 재조명됐다. 2019년 서울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는 2016년 채용 과정에서 합격권이던 여성 지원자 6명의 점수를 조작한 바 있다. 또한 공사는 2020년 서울시 유관 기관별 성별임금격차 공시에서 조사한 26개 기관 중 세 번째로 성별임금격차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내부의 성차별적 관행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배 활동가는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 은 회사였다면 피해자가 피해를 회사에 알리고 신변 안전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여성노동자가 가해자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점에 서 공사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신당역 사건 이후 공사는 “여성직원의 당직 근무를 줄이겠다”며 사건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으나 이 역시 큰 공분을 샀다. 김선혜 교수(여성학과)는 “남성노동자를 표준으로 상정하는 관념이 그대로 반영된 발언”이라며 “신당역 사건은 피해자가 남성노동자보다 업무를 못하거나 일할 수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님에도 당직을 줄이는 방식의 대안은 장기적으로 여성채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노동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강화한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성차별을 강화하는 방식을 대안이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당역 사건, 구조적 차별의 방증

“신당역 사건은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 합니다.”

행크 활동가는 신당역 사건에 대한 여성가족부(여가부) 김현숙 장관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장관은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 사건 아닌 스토킹 범죄’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이어 그는 “남성과 여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행크 활동가는 “해당 발언은 젠더폭력을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로 환원해 구조적 성차별을 감추려는 의도가 담겼다”며 분노했다.

김 교수 역시 여가부에 책임을 물었다. 그는 “신당역 사건은 분명한 고용관계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문제이자 구조적 문제”라며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신당역 사건을 여성 혐오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젠더갈등을 유발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김 장관이 여성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책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 ‘신당역 사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상훈 서울시의원의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남자직원이 폭력적 대응을 했다”는 발언, 여가부 김 장관의 발언까지. 김 교수는 “성폭력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에게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성폭력과 성적인 관계를 분리하지 않고 남성 가해자의 관점에서 ‘신당역 사건’을 바라본 것”이라며 “스토킹 범죄 자체에 대한 몰이해”라고 말했다.

 

제2의 신당역 사건 만들지 않기 위해

배 활동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이 여성을 죽인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구조적 차별을 인지하고 정부가 대응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더라면, 이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더라면 ‘신당역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신당역 사건’이 드러낸 뿌리 깊은 여성혐오적 문화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젠더 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사회의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별, 혐오와 관련이 있다”며 “젠더 폭력이 피해를 입은 개별 여성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지 않도록 남성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행크 활동가 역시 “신당역 사건을 가해자의 일탈적 범죄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되며 가해자의 과거 생활에 대한 언론보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어떤 형벌을 받는지 보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여성의 노동 환경과 안전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도 함께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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