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녀가 있다. 뜨개질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딸은 어린 시절부터 뜨개질을 접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취미였던 뜨개질로 사업을 시작했다. 실을 유통하고 뜨개 용품을 판매하다 보니 사업이 점점 커졌다. 24세가 된 딸은 엄마가 뜨개질로 20년 동안 키워온 기업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국내 뜨개 용품 1위 기업 ‘바늘이야기’의 이야기다. 바늘이야기의 송영예 대표와 김보겸 대리(경영·18년졸)를 화상으로 만나봤다.

 

바늘이야기의 송영예 대표(왼쪽)와 김보겸 대리  박성빈 사진기자
바늘이야기의 송영예 대표(왼쪽)와 김보겸 대리 박성빈 사진기자

 

엄마가 일군 기업에 딸이 함께하기까지

“뜨개를 뜨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인데 실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송 대표가 취미로 뜨개질하던 당시 남성 위주의 뜨개질 유통업계는 뜨개인들이 원하는 실의 색감과 디테일을 잘 알지 못했다. 뜨개인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모순적인 일이었다. 송 대표는 일찍이 접했던 유럽이나 일본의 뜨개질 책에서 다양한 색상의 실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한국 뜨개 시장 발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2001년부터 실을 직접 수입하고 유통해 통신 판매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키워온 회사는 국내 1위 뜨개용품 기업이 됐다.

송 대표가 바늘이야기를 20년 넘게 경영해오던 어느 날, 회사에 젊은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당시 구직 중이던 딸 김 대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송 대표의 제안으로 김 대리는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 가서 바늘이야기의 SNS를 관리하게 됐다. 김 대리는 그때부터 4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는 “내가 조금 더 하면 회사에 도움이 되고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대리의 입사는 바늘이야기의 전환점이 됐다. 회사에 젊은 바람이 불었다. 직원 연령대가 높았던 바늘이야기에 20~30대 직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소통하자 젊은 고객층도 잇따라 늘었다.

김 대리가 SNS를 관리한 것도 한몫했다. 유튜브 채널 ‘김대리의 바늘이야기’는 목도리부터 시작해서 양말, 모자, 가방 등 다양한 뜨개 용품을 짜는 영상을 올린다. 유행을 시시각각 반영하는 영상들과 아름다운 영상미는 26만 명 구독자의 마음을 얻었다. 김 대리는 유튜버로, 그리고 마케터로 일하면서 “뜨개질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데 가장 집중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의 뜨개 키트에는 설명서 하나만 나가는 경우가 많다면 바늘이야기의 뜨개 키트에는 필요한 도구, 실, 기법, 동영상까지 모두 제공한다.

“충분한 정보 제공을 통해 바늘이야기는 소비자에게 무척 친절한 기업이라는 인상을 많이 주려고 노력해요.”

 

뜨개질로 연결되는 모녀

모녀가 같이 일하는 기업인 만큼 함께한 추억도 많다. 그동안 수많은 뜨개 작품을 만들어온 송 대표와 김 대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미니스퀘어 가방’을 꼽았다. 바늘이야기의 미니스퀘어 가방은 둘의 합작품이다. 송 대표가 가방을 디자인하고 김 대리가 그 도안을 기반으로 가방을 뜨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다. 해당 영상 조회수는 약 164만 회를 기록했다.

김 대리는 “미니스퀘어 가방을 뜨는 게 정말 어려웠다”며 “영상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끄고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다”고 전했다. 본인이 힘들었던 만큼 영상에서 가방을 뜨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덕분에 미니스퀘어 가방은 최고 매출을 낸 효자 상품이 됐다. 송 대표는 “내가 도안을 가지고 고객들을 찾아가며 영업했다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대리의 영상이 상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연희동에 위치한 ‘바늘이야기’ 매장 에 진열된 뜨개 가방 박성빈 사진기자
연희동에 위치한 ‘바늘이야기’ 매장 에 진열된 뜨개 가방 박성빈 사진기자

뜨개질을 매개로 엄마와 딸은 다시 한번 연결됐다. 송 대표는 딸과 함께 기업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연희점 매장을 개업했을 때를 꼽았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바늘이야기 연희점은 5층 규모의 뜨개 전문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에 위치한 대규모 매장인 만큼 개업하는 데에 큰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다. 송 대표는 “어린 딸이 고생하는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같이 했기에 힘듦과 감동이 함께했다”며 연희동 매장 개업 첫날을 추억했다.

 

시간과 인생을 엮는 뜨개질

뜨개질은 흘러가는 시간을 엮는 행위예요.

김 대리는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작품 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을 뜨개질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남들은 그냥 TV를 볼 때 저는 동시에 뜨개질하면서 창작물을 만들 수 있어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거죠.” 털실 뭉치와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 대리는 뜨개질을 ‘자전거 타기’와 비교하며 “뜨개질은 하다가 틀려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도 않는다”며 “너무 겁먹지 말고 쉽게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취미로 시작한 뜨개질을 사업까지 확장한 송 대표는 뜨개질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다른 취미와는 달리 뜨개질은 언제나 결과물이 남기 때문이다. 송대표는 “이것보다 더 빠져들어 갈 수 있는 게 뭐가 있었을까 싶다”며 인생에서 뜨개질이 가지는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송 대표는 1세대 여성 창업가로서 창업을 준비하는 이화인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만의 아이템,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됐다면 언제든지 실행하라”며 “다만 그 실행의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 대표는 자주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원을 받는 것도 좋지만 너무 기대지 말고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른 문도 두드려보세요.”

송 대표와 김대리는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바늘이야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바늘이야기의 강점인 유통 시스템을 더욱 체계화하고, 콘텐츠 비중을 늘려 콘텐츠 기업으로도 성장하는 게 목표다. 기업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온라인 강의 사이트도 준비 중이다. 김대리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젊고 능력 좋은 직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송 대표는 “바늘이야기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것들을 굳건하게 지키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려고 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과 바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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